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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서 Nov 13. 2023

7. 김소연 <수학자의 아침>

막차의 시간 / 엄마의 시간

버스가 출발의 형식으로서

우리를 지나쳐버렸다

 

멀어졌지만

저것은 출발을 한 것이다

 

멀어지는 방식은 모두 비슷하다

뒷모양을 오래 쳐다보게 한다

 

버스는 한 번 설 때마다 모두의 어깨를 흔든다

집에 갈 수만 있다면 이 흔들림들은

아무것도 아닌 일이다

 

아침이면 방에서 나를 꺼냈다가

밤이면 다시 그 방으로 넣어주는 커다란 손길

은혜로운 것에 대하여 생각한다

 

고구마를 키운 이후로

시간도 얼마나 무럭무럭 자라는지를 알게 되듯

슬픔 뒤에 더 기다란 슬픔이 오는 게 느껴지듯

 

무언가가 무성하게 자라지만

예감은 불가능해진다

 

휙휙 지나쳐 가는 것들이

내 입김에 흐려질 때

 

차가운 유리창을 다시 손바닥으로 쓰윽 닦을 때

불행히도 한 치 앞이 다시 보인다

 

몸이 따뜻해지는 일을 차분하게 해 본다

단추를 채우고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둔다

 

김소연, ‘막차의 시간’, <수학자의 아침>

 


 

동대구역에서 부산행 기차를 기다린다

엄마를 태우고 갈 기차는 7분 연착

 

이번 기차 말고 다음 기차를 타야 한다고 크게 말하고

대기실에 늙은 엄마를 두고 돌아선다

 

입추라 해서 국화를 들인 이후로

시간이 지금, 여기 있다는 것을 알게 되듯

슬픔 뒤에 더 커다란 슬픔이 오는 게 느껴지듯

 

무언가가 조심조심 피어나지만

추측할 수 없다

 

휙휙 지나쳐 가는 열차 객차들이

내 귀를 쩌렁하고 울릴 때

 

전광판에 서울행 4분 연착이라고 뜰 때

다행히도 엄마는 살아있다

 

외로움의 둑을 막을 수 있는 일을 찾아본다

아침 국화가 얼마나 피었는지 들여다본다


윤서, '엄마의 시간'


* 금요일, 퇴근하고 대구에 갔어요. 공짜 숙박권이 생겨 엄마와 만났어요. 호텔이라는 곳에서 목욕도 하고 맥주도 마셨어요. 120년 된 계산 성당에 가서 엄마와 사진을 찍었어요. 비 오는 성당 마당을 보며 커피를 마셨어요. 엄마는 "이제 아버지도 편안한 곳으로 가고 나는 걱정이 없대이. 손주들도 자기 밥벌이하며 살겠지. 착하니까. 그런데 기후 위기가 걱정이다. 우리가 지구를 너무 막 써 가꼬. 애들이 살 지구가 걱정이라" 했어요. 지구도 걱정이지만 당장은 배고픈 위장이 걱정이라 또 120년은 되었을 한옥에서 홍합밥을 먹었어요. 바로 옆집인 '마당이 깊은 집' 문학체험관에서 길남이도 만났어요. 엄마는 물끄러미 내 얼굴을 보며 행복하다고 했어요. 동대구역에 엄마를 두고 돌아서는데 마음이 기차 소리에 묻혔어요. 시집을 꺼내 읽었어요. 슬픔의 둑이 무너지지 않았어요.


2022.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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