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려면 어때, 잘 지내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명동성당에 간다. 아들과 한 약속은 무조건 지켜야 한다. 약속을 할 때는 아무리 짧은 순간이라도 신중해야 한다. 일요일에 명동 나가는 것쯤이야 가능하다. 그의 컨디션만 좋다면.
날씨도 푹하고 해서 성당 마당에서 기다리기도 괜찮았다. 성모동산에 가서 기도를 하고, 큐알을 찍고 손 소독제를 바르고 성전에 들어선다. 미사는 1시간 넘게 진행되었다. 아름다운 공간에 성가가 울려 퍼지는 그 자체로 좋았다.(성가를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아들은 자꾸 내 손을 만지고, 몸을 흔들고, 성가대를 돌아보기는 했지만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입퇴원을 반복하던 아이는 15살 때 세례를 받았다. 기도문도 제대로 외우지 못하는 아이에게 신부님은 속성으로 세례를 주었다. 아들이 오늘, 이곳, 명동성당에서 미사를 드릴 수 있을 만큼 좋아진 것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고비고비마다 고마운 사람들이 기억난다. 신부님도 그중에 있다. 어린이병원 의료진, 중학교 3학년 담임 선생님과 대안학교 선생님, 자전거를 가르쳐 준 동네 아저씨, 나의 친구들,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 이모, 삼촌, 숙모. 아이는 사랑을 많이 받았다. 질병이 자신의 일부가 될 때까지 많은 사람들이 그를 믿고 응원해 주었다. 약으로만 좋아진 것이 아니다.
미사를 마치고, 명동교자에 가서 칼국수와 만두를 먹었다. 줄 서서 기다렸다가 식사하는 것도 오랜만이다. 아들과 남편은 사리를 하나씩 추가했다. 돌아오는 길,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는 '융태행'에서 월병도 사 왔다. '융태행' 아르바이트생은 우리에게 어떻게 알고 찾아왔냐고 물었고, 아들은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우리는 인스타를, 그녀는 칭다오를 이야기했다.
아들은 오늘 미사가 좋았단다. 앞으로 종종 가자고. 다음에는 하동관에 가서 곰탕을 먹자며 메뉴도 정해 두었다. 미사를 드리고 싶은 건지, 맛집 순례를 하고 싶은 건지. 아무려면 어때. 잘 지내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또 일주일, 열심히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주말이 오고, 아이와 맛있는 걸 먹을 수 있으니까.
2022년 1월 23일 일기에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