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가치는 죽음과의 관계 속에서 매겨진다.”(주디스 버틀러, <비폭력의 힘>, 101쪽)
애도가치, 어떤 생명이 지켜질 만하고 소중하고 애도받을 만한가? 버틀러의 이 말은 세월호에서 목숨을 잃은 304명의 생명을 떠올리게 하고, 이태원 참사로 생명을 잃은 159명의 목숨을 떠올리게 한다. 그들은 충분히애도받았는가? 그들을 충분히 애도했는가?
나는 소프라노, 나무는 테너 파트에 앉았다. 우리가 연습하는 곡은 가만히 있으라, 네버엔딩 스토리, 화인,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잊지 않을게,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이렇게 6곡. 나무도, 나도 노래를 잘하는 편이 아니다. 올해 4월 16일은 세월호 참사 10주기이다. 나무에게 합창을 함께 해 보겠냐고 제안했다. 사실 나무는 악보를 잘 보지도 못하고, 합창으로 노래를 해 본 경험이 없다. 그래도 해 보겠다고 했다.
우리는 주말이면 자유로를 거슬러 올라갔다. 그리고 이사오기 전 이웃들과 둘러앉아 노래 연습을 했다. 감기에 걸려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날도 있었고, 모처럼 노래를 부른 까닭에 돌아오는 길에 피곤이 몰려오기도 했다. 나무는 처음에는 연습시간에 앉아 있지를 못했다. 악보를 보고, 함께 노래를 부르는 게 낯설어서 그랬는지, 노래를 못 불러서 긴장이 되었는지, 연습에 집중하지 못하고 왔다 갔다 했다.
이웃들은 그런 나무를 모른척해 주었다. 그리고 틈틈이 노래를 가르쳐 주었다. 그다음 연습에는 앉아있는 시간이 길어졌고, 그다음에는 더 길어졌다. 노래를 잘하진 못하지만 연습에 참여하는 것은 점점 나아졌다.
나무는 2014년 열아홉 살에 일본에서 자전거 정비 공부를 하겠다고 했다. 의사는 말렸고, 나무는 해보겠다고 했다. 그는 3일 만에 짐을 싸서 도쿄에 갔다. 일본어학교를 다니면서 주말에는 자전거학교 특강에 참여할 때였다. 기숙사 짐을 정리하러 간 날 새벽에 땅이 흔들렸다. 지진이었다. 난생처음 지진을 경험한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침에 일어나 나무에게 집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세월호 친구들은 수학여행 가다가 죽임을 당했잖아요. 나는 아프지만 살아있고, 살아있어서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러 왔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
나무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부끄러웠다.
합창곡에 이런 가사가 있다. "한 슬픔이 다른 슬픔에게 손을 주고". 그 마음으로 손을 건네고 싶다. 다른 슬픔에 마음이 닿기를 바라면서 노래를 부른다.
10년 전, 세월호 참사가 있었을 때 너무 슬펐고, 화가 났고, 그리고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이런 나라에서 태어나고 자라게 해서. 이번 합창은 일종의 애도 시위이다. 잊지 말자는, 국가 폭력에 대한 비폭력 시위.
“모두의 생명에서 평등한 애도가치가 인정된다면, 경제적 제도적 생명의 거버넌스와 관련된 사회적 평등의 인식 안에 새로운 형태의 평등이 들어오게 된다.”(주디스 버틀러, <비폭력의 힘>, 134쪽)
버틀러의 이런 주장이 나이브하게 들릴 수 있다. 현실을 모르는 안일한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자. 아니 현재 지구를 들러보자. 전쟁은 계속되고 있고, 애도가치가 없는 생명들은 치워지고 있다. 폭력에 폭력으로 대응할 때 더 큰 폭력이 생기고 있는 것을 목도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새로운 상상을 해야 한다. 합창을 하면서 애도 시위를 하고, 비폭력 전략으로 혐오에 저항하고, 생명을 서로 돌보고, 그렇게 싸워야 할 것이다.
*** 나무는 세월호 10주기 합창공연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4월 8일부터 동료활동가 교육생에 선발되어 출근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무대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함께 연습한 그 시간과 함께목소리를 모은 그 공간은 나무에게 귀한 경험이 되었다. 함께 한 단원들, 이웃들 덕분이다. 감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