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아래서 입원하다
나무의 도전, 나무의 재발
2014년 3월이었다. 대안학교 고등과정을 마치고 홈스쿨링 아닌 홈스쿨링을 하고 있던 학교밖 청소년 나무는 어느 날 갑자기 일본에 공부하러 가겠다고 했다. 자전거전문학교가 도쿄에 있다는 기사를 보고 도전해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지방도 아니고 바다 건너 외국에 공부하러 가겠다고? 이제 겨우 치료제를 정하고 조금씩 안정되고 있는 중인데? 무리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나무의 생각은 완강했다. 아프다고 하고 싶은 걸 포기할 수는 없다고, 실패하더라도 해 보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자전거전문학교 한국담당자와 소통했다. 우선은 일본어가 준비되어야 한다고. 당장 등록할 수 있는 일본어학원을 알아보고, 유학생 비자를 알아보고, 대출을 받았다. 계속되는 입퇴원으로 재정은 바닥이 난 상태였다. 그래도 나무가 하고 싶은 공부에 지원하기로 했다.
병원 진료를 하고 담당 교수님과 의논을 했다. "어머니도 같이 가는 건가요?" 교수는 물었다. "아뇨. 돈 벌어야죠." 나는 말했다. 교수는 나무의 도전을 반대했다. 하지만 나무는 해 보겠다고 했다. 우리 부부는 나무의 의견에 동의했다. 담당교수와는 3개월에 한 번씩 한국에 와서 진료받기로 약속했다.
나무는 사흘 만에 짐을 싸서 도코 행 비행기를 탔다. 어학교의 3평짜리 기숙사 방을 정리해 주고 살림살이를 챙겨주었다. 부산쯤 간 걸로 생각하기로 했다. 나무는 파주에서 타던 자전거를 분해해서 가져갔다. 도쿄 시내를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베트남 친구, 독일 친구, 중국 친구들과 함께 일본어를 배웠다. 우리 부부는 한 달에 한 번씩 번갈아가며 도쿄에 가서 나무의 상태를 확인하고 청소를 하고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나무는 3개월에 한 번씩 진료를 받기 위해 한국에 들어왔다. 그렇게 1년 가까이 지냈다.
결국 나무는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오기로 결정했다. 일본어 공부를 한 것, 병원 생활 하는 동안 경험하지 못한 넓은 세상을 경험한 것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나무가 돌아오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귀국 보름 전, 일하는 중에 일본어학교에서 다급하게 전화가 왔다. 나무가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비행기 티켓팅을 했다. 우리는 나무를 도쿄의 어느 경찰서에서 찾았다. 나무는 자신의 상태를 낙관했고, 자의적으로 단약 했다. 나무는 재발했고, 일본 현지 병원에 입원했다. 조선의 마지막 왕녀 덕혜옹주가 입원했던 마츠자와 병원이었다.
나무가 입원했을 때는 도쿄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던 3월이었다. 벚꽃이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