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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서 May 07. 2024

재발 이후, 귀향까지 7개월

돌아왔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무는 도쿄 마츠자와 병원에 입원했다. 일본 경찰이 절차를 밟았다. 이때 어학교 선생님들의 도움이 컸다. 선생님들은 경찰과 병원에 나무의 상태를 설명하고, 나무가 입원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일본은 우리와 다르게 경찰서에 있는 사람을 가족들이 만나지 못한다. 변호사를 통해서만 만날 수 있다. 그 역할을 어학교 교사들이 해 주었다.


병원도 시스템이 달랐다. 마츠자와 병원은 아시아에서 근대병원을 최초로 도입한 일본 답게 잘 정비되어 있었고, 의료시스템이 고도로 발달해 있었다. 유학생이 경찰을 통해 긴급입원하는 경우 입원비와 치료비 일체가 무료였다.


낯선 일본땅에서 재발한 나무를 위해 우리는 팔방으로 뛰어다녔다. 어학교와 소통하고, 지인을 통해 한국 대학원생 통역의 도움을 받았다. 하루하루가 판단과 결정의 연속이었다. 누구와 소통할 것인지, 어떤 조치를 내릴 것인지. 나무와 연락을 취할 수 없는 상황에서 속은 타들어갔고, 정신은 바짝 차리고 있어야 했다.  


나무의 자취방 짐을 정리하고, 도쿄 성당에혼자 미사를 드리고, 흐드러지게 핀 우에노 공원 벚꽃 아래를 걸으면서도 울지 않았다. 울면 안 된다, 감정에 휩싸이면 안 된다고 주문을 외웠다. 그래도 자취방에서 혼자 쪽잠을 잘 때면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드디어 병원에 입원해 있는 나무를 면회할 수 있었다. 불안한 눈빛, 보름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아서 갑자기 말라버린 몸, 예상치 못한 상황에 압도당한 표정이었다. 엄마에게 이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는지 왜 왔냐고 물었다. 집에 가야지, 집에 데려가려고 왔지, 나는 대답했다.


우리는 일본 의료진에게 기존 처방전과 복용약을 보여주고 그대로 진행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마츠자와 병원에서는 난색을 표했다. 이 용량까지 올리면서 안정되려면 최소 6개월이 걸린다고. 대신 전기충격치료(ECT)로 급한 증상을 잡고 비행기를 탈 수 있는 정도가 되면 한국에 가서 치료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6개월이라... 말도 통하지 않는 도쿄에서 지내기엔 무리였다. 우리도 계속 왔다 갔다 해야 하고. 그래서 전기충격치료에 동의했다. 나무는 16번의 전기충격치료를 받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탔다. 환자석에 앉아 오는 내내 양쪽으로 엄마 아빠 손을 꼭 잡고 있었다. 김포에 착륙한다는 안내방송에 가슴이 울렁거렸다. 무사히 돌아왔구나 하는 안도감 때문이었다.


나무는 원래 다니던 병원에 자리가 없어 협력병원인 경기도 이천에 있는 전문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넓은 잔디가 있는 병원이 좋아 보였다. 서울대병원이 아니면 어때, 여기도 치료를 잘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입원하고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다 되어가도 별 차도가 없었다. 담당의와 만났다. “어머니, 제가 의사 하면서 이런 경우는 처음인데요. 나무 씨 치료에 자신이 없습니다. 다른 방법을 찾아보셔야겠습니다.”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화가 났고, 기가 찼다. 의사는 소아청소년 임상 경험이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다시 팔방으로 알아봤다. 나무의 주치료제인 클로자핀의 전문가로 알려진 서울대병원 교수가 퇴임하고 일산 동국대병원에서 진료를 보고 있다는 정보를 알게 되었다. <클로자핀의 임상사용의 실제>라는 책을 통해서 알게 된 정보다. 그 병원이라면 집에서도 가깝다. 당장 전원 절차를 밟아 일산 동국대병원에 입원했다. 담당교수는 전기충격치료를 병행하자고 했다.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 결정은 쉽다. 전기충격치료 덕분에 한국 오는 비행기를 탈 수 있었던 우리는 전기충격치료에 동의했다. 12번의 전기충격치료를 하면서, 클로자핀 용량을 조금씩 올렸다. 그리고 통원치료를 하기로 하고 퇴원했다.  


도쿄에서 사라진 뒤,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7개월이 걸렸다. 이때가 2015년 10월이었다.


다 괜찮았다. 나무가 돌아왔으니. 나무를 잃어버리지 않았으니, 나무가 살아있으니. 모든 것이 감사했다. 쓰러지면 또 일어나고, 한 매듭을 지었으면 다시 시작하면 되니까 말이다.


그렇게 우리의 새로운 시즌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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