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준비하며 나는 조금씩 성장했다.
신자씨, 내일 봐요!
퇴사 통보를 하고 근무기간이 2주 정도 남았을 무렵 직장동료는 요새 이상한 소문이 돈다며 내게 다가와 물었다. 그러고선 새로운 별명 하나를 스스로 만족스럽다는 듯이 붙여주었다.
성은 배씨요, 이름은 신자.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의리 없이 먼저 퇴사를 고해버린 탓에, 순식간에 '배신자'가 되어 있었다.
조직에서 억지로 짜지어 낸 퍼즐 조각에, 가까스로 끼워 맞춰 일하는 듯한 느낌을 받은 지 벌써 1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4번째 직장이자 마지막 직장이었던 그 회사는 사실 썩 유쾌하지 않은 근무환경이기도 했었다.
예를 들면, 남자화장실이 고장이 났다며 여자화장실 열쇠를 달라고 하고는 환풍기도 없는 그곳에서 담배를 피워대던 다른 사무실 남직원의 이해 못할 행동은 나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비슷한 예로, 사장의 지인으로 보이는 손님조차 남자화장실인지 여자화장실인지 확인도 안 하고 그냥 여자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 닫지도 않은 채 볼 일을 보는 비위생적인 행동들은 적잖은 스트레스를 가져다주었다.
여직원은 나 혼자뿐이라 그들이 저질러놓은 모든 뒤처리는 내가 다 감수해야 했고, 얘기해도 공감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냥 그러려니,
제일 퇴사의 욕구가 가장 강력하게 느껴졌을 때는 그 남초 회사에 입사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같이 일하던 나와 비슷한 또래의 직원이 이름만 대면 알만한 회사로 이직하게 됐다며 '하루 만에' 퇴사를 통보했었다. 일순간 당황하긴 했지만, 마지막 가는 길 훈훈하게 보내주고자 덕담을 하던 그때.
모두가 모인 점심식사 자리에서 한 상사가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 장주임은 능력 없어서 저런데 못 들어가지?
그 한마디에 나의 자존심은 그대로 뭉개졌다. 그동안 참고 있었던 서러움이 복받치듯 밀려와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결국 들고 있었던 밥숟가락을 딱- 내려놓고 아무 말 없이 그대로 식당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어떠한 감정의 동요 없이 받아쳐버리면 그만 이었을 텐데, 그때의 나는 훨씬 더 예민해져 있었고 흔히 말하는 내공이 부족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일부러 곤란한 상황에 빠뜨려 나의 반응을 살피며 즐기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 이후로 면담을 요청했으나 별 소득 없이 끝이 났고, 직장 내에서 지나치게 진지한 사람으로 각인되어있었다.
어떻게든 버텼다.
자그마한 고정수익이 매달 통장에 입금된다는 것에 익숙해질 새도 없이 새로운 파이프라인을 만들어서 어떻게든 이곳을 벗어나기 위해 퇴근 후 시간을 활용하려고 무던히도 애를 쓰기 시작했다.
직장에서의 불편한 일들이 점점 쌓이면 쌓일수록, 눈에 불을 켜고 자기 계발과 퇴사 준비를 하는 데에 온 집중을 다했다.
오기로라도 퇴근 후 시간을 허투루 보낼 수 없도록 뭔가를 실행할 수 있는 힘이 생기게 하는 원동력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불합리한 일을 겪었을 때, 습관처럼 여성비하를 서슴지 않을 때, 나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나를 제멋대로 판단하고 평가하려 할 때, 더욱 퇴사에 대한 욕구가 넘쳐흐르게 되었다.
직장생활에 안주를 하려야 할 수 없는 그런 근무환경이었고, 오래 다닐 수 없는 곳임을 진즉에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뒷일 생각 안 하고 바로 직장을 때려치워버리는 무모한 사람은 되지 못하는 사람임을 스스로가 잘 알고 있다. 그럴 수도 없었고.
나는 그렇게 최대한 말을 아끼는 무표정의 단답형 직장인이 되었고, 조용히 퇴사 준비를 해가기 시작했다. 마치 물밑에서는 열심히 발차기를 해나가지만,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물 위에 떠있는 고고한 자태의 백조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