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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주 Sep 21. 2016

이별의 승화

이별의 昇華

사랑하는 것과 이별해야하는 순간, 사람들은 사랑했던 시간만큼이나 이별 앞에서 그 추억을 미련 없이 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육순을 넘기며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며 가슴 아렸던 기억은 숙환(宿患)으로 인한 선친과의 이별과 피치 못할 병환으로 세상을 등진 몇몇 지인의 경우가 전부였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색깔에 맞는 사랑을 한다고 하니, 만 명의 사람에게는 만 가지 사랑이 있을 것이고 그 사랑 앞에 이별 또한 만 가지라 할 수 있겠다.

      

오늘 나는 만 가지 사랑 앞에 더 이상에 구차한 미련을 남기지 않고, 수십 년 지기(知己) 애장품과 마침내 작별을 고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 이별을 결정하는 순간, 어쩔 수 없이 가슴이 먹먹해지며 추억어린 애정의 흔적들이 주마등같이 스쳐간다.

    


내게는 40년이 넘은 낡은 기타가 하나 있었다. 이 물건은 오랜 세월을 함께 해오며 매번 주변사물을 정리할 때마다 버리고자 했지만, 그 옛날 잊지 못할 추억과 숱한 사연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나의 동반자였기에, 차마 헤어지지 못하고 늘 서재구석 한 귀퉁이에 처박혀 있었다.

      

나는 지나온 세월 간 3개의 기타를 구입했었는데, 처음 악기를 배우기 시작했던 콜롬비아 기타는 1970년 겨울 청계천의 중고책방 인근 가게에서 2천원에 구입했었다. 이후 고교졸업 후 꿈에 그리던 수제(手製) 기타를 갖게 되었다.


1974년 통기타 가수들이 서소문 MBC 방송국 모퉁 악기점에서 기타를 구입한다는 소문을 듣고 모친졸라 1만원에 수제 기타를 구입다.  그 시절 커피 값이 40원, 자장면이 50원으로 기억되니, 요즘 가격으로 환산하면 스무 살 나이에 100여만 원의 거금을 들여 구입한 것이다.


현재 소장하고 있는 어쿠어스틱(acoustic) 기타를 2007년 60만원에 구입했으니, 40년 전 구입한 수제기타는 꽤나 고가에 구입한 셈이다. 때문에 당시 수제기타는 나의 보물자산 1호이자, 무대 위에 오를 꿈을 내게 심어주며 그 희망이 이루어지도록 도와줬던 애인과 다름없었다.

     

은행 입행 후 25년간 악기를 손에서 놓고 살다가 지점장시절 덱스타(Dexter) 기타를 새로 장만하며 수십 년간 간직했던 기타는 자연스레 먼지 쌓인 고물로 전락하게 되었다. 요즘 기타는 지판(指板) 뒷면에 봉을 넣어 지판이 휘는 일이 없지만, 옛날 악기는 기타 줄의 장력(張力)으로 지판이 휘어졌기 때문에 지판 윗자리에서 코드를 잡기가 매우 불편했다.     


통기타를  둘러메고  무대에서  활동했던  옛 시절 (1974년)

몇 년 전 종로 낙원상가에 들러 수리를 의뢰했지만 수리비가 구입비용만큼 나온다 해 포기하고 말았다. 이후 낡은 수제기타를 버리자니 너무 아쉽고, 보관하자니 공간만 차지하는 것이 부담스럽던 중에 어느 책에선가 구질구질한 이별이라도 좋은 추억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는 글귀에 힘입어, 40여년 추억을 간직한 정든 애장품을 비로소 정리하기로 결심하였다.


함께해 온 세월이 애틋할 진데 이별에도 최소에 예의가 필요한 듯하여 눈앞에서 사라질 수제기타 사진 몇 장을 남겨두고, 더 이상에 미련을 갖지 않기로 했다.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기도 하지만 완벽한 사랑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항상 정답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니, 만 가지 사랑만큼 이별 또한 만 가지 모습일 것이라는 생각을 굳히며 짧은 글로나마 40년 손때 묻은 애장품에 대한 미안함을 덜어보고자 한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기타를 들고나가 경비원에게 물어보니, 쓰레기 처리기준의 종량제 규격봉투에 넣어 버리되 봉투에 다 안 들어가니 망치로 몸통일부를 잘라 넣으라 한다. 순간, 사람과의 이별이 가슴 아플 진데 생명력 없는 미물과의 이별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비실 옆 탁자에 기타를 잠시 놔두고 아침산책을 마친 뒤, 돌아오는 길에 50리터 봉투를 사들고 오는데 기타가 보이질 않는다. 한 택배원이 일보러 왔다가 버려진 기타를 가져갔다며 경비원이 전해준다.


40년을 함께한 정들은 낡은 기타가 다행히도 부서지지 않고 필요한 사람에게 전해졌다 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세상 모든 것들이 어떠한 사랑을 했든지 이별은 누구에게나 힘겹고 어려운 과정이기에 상처 없이 이별을 하기란 결코 쉽지 않지만, 오늘 40년 지기 기타와 이별을 하며 지나온 세월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승화시켜본다.

  

 - 甲午年 시월 어느 날


버려진 40년 지기 수제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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