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 북서부 시애틀 기행
7월 20일 해가 머물러 있는 늦은 오후 시애틀에 도착해 공항인근의 West Coast Hotel을 정하고 저녁 무렵 시내버스를 타고 [다운타운]으로 향했다. 비자 발급사무소의 위치를 파악한 후 보슬비가 내리는 어둑한 길가를 따라 한인식당을 찾아 다녔다.
이곳저곳 한참을 찾아 헤매다, 결국 베트남 식당에 들어가 한인식당의 위치를 알게 되었다. 미국에 도착해 나흘만에 맛보는 설렁탕 뚝배기와 깍두기 김치에 몸살기가 녹아내리며 몸은 개운해졌지만 설렁탕 한 그릇 먹자고 비싼 비용 치루며 시애틀까지 날아왔다는 우스꽝스런 생각마저 드는 저녁이었다.
시애틀 다운타운 한인식당 시애틀의 7월 하순 밤공기는 매우 쌀쌀했다. 여름비가 내리는 밤거리 행인들은 계절에 관계없이 제각기 반팔부터 겨울점퍼를 입고 다니는데, 유독 남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희한하게 느껴지는 광경이었다.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다운타운 길의 문 닫힌 상점들 모퉁이에는 여기저기 노숙자들이 쓰레기통을 뒤져 버려진 피자 언저리를 먹으며 서성이고 있었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로 가뜩이나 을씨년스러운데, 황급히 내딛는 발걸음 뒤에서 혹시 노숙자들이 몽둥이로 내리치지 않을까 섬뜩해 했던 시애틀의 밤거리였다.
다음날 늘어진 잠에서 깨어보니 어느새 11시가 되어 있었다. 늦잠에 놀라 아침도 거른채 서둘러 버스에 올라 다운타운으로 가는데 미항공기 제조사인 [보잉社]가 보인다. 미국은 다인종 국가지만 시애틀이 속해있는 워싱턴州에는 흑인 구성비가 적은반면 아시아의 이민후예들이 백인다음으로 많다고 한다.
시애틀 보잉 항공사 [다운타운]에 도착해 간단히 햄버거로 식사를 마치고 오후1시에 맞춰 비자발급 사무실에 들어섰는데 업무시간이 종료됐으니 내일 다시 방문하란다. 이게 뭔 날벼락인지...
우리는 이곳의 업무 마감시간을 전혀 알지 못한 채로 멀리 스포케인에서 왔기 때문에 오늘 꼭 비자를 받고 돌아가야 한다고 애처로운 모습을 연출하며 사정을 해봐도, 그들은 원칙만 되풀이하며 개인사정에는 귀를 기울여주지 않았다.
상황을 지켜보던 나는 인솔자에게 최후 방법으로 급행료를 슬쩍 건네주면서 통사정을 해보라고 귀띔을 해주며 시도를 해봤지만, 결국 등 떠밀려 나오고 말았다. 미국은 법을 준수하는 나라이자 편법이 통하지 않는 사회였다.
당시경험을 통해 새삼스레 미국이 강대국일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별 수 없이 나는 스포케인으로 혼자 되돌아가고, 인솔자는 시애틀에서 하루 더 머무르며 비자를 발급받기로 결정한 다음, 저녁 비행 예약시간에 맞춰 남는 오후시간에 시내관광을 했다.
시애틀 모노레일 □ 시애틀 센터/ Space Needle Tower
서둘러 [Seattle Center] 行 모노레일에 올랐다. 이곳의 모노레일은 1962년 운행을 시작해 지금껏 지구 100바퀴 거리를 주행했다하니 시애틀과 함께 지난 역사를 함께 달려온 열차임에 틀림없다.
Space Needle Tower 시애틀 센터에는 모노레일이 운행되던 해 함께 건립된 [Space Needle Tower]가 있는데 밖에서 바라본 184m의 대형 타워는 시애틀의 상징인 듯 느껴진다. 타워 전망대에 오르면 4.8Km 높이로 우뚝 솟아있는 눈 덮인 레이니어(Rainier) 산을 볼 수 있다.
우주선을 빼닮았다는 타워는 시애틀 박람회기념으로 지었는데, 시애틀의 야경은 꼭 [스페이스 니들 타워]에 올라봐야 비로소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을 느껴볼 수 있다 한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은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이 출연한 영화로 OST에 삽입된 When I fall in love가 익숙한 곡이다.
[시애틀]은 당초 원주민들이 살던 땅으로 1851년 오리건 州 포틀랜드에서 북쪽으로 올라온 무리가 대거 몰려와 서쪽지역의 알카이 해변에 정착했다. 그들은 수쿼미시족을 만났는데, 족장 이름이 시아스(Sealth)였다. 시애틀이란 지명은 그에게서 비롯됐다고 한다.
Seattle Center 시애틀은 서울 1/3의 작은 도시(면적 217㎢)로 볼거리는 5㎞안에 모여 있다. 보잉 본사는 2001년 시카고로 이전했지만 S/W 업체인 마이크로소프트 社가 약 25㎞ 떨어진 레드먼드에 본사를 두고 있고 미국에서 가장 큰 인터넷 서점이자 전자상거래 회사인 아마존의 중심지도 시애틀이다.
시간에 쫓겨 오래 머물지 못하고 다시 시내로 되돌아 나와 태평양바다에 접해있는 Public Market Center 가게를 들러보았다. 이곳은 마치 가락시장과 남대문시장을 합쳐놓은 듯한 한국 재래시장 모습이었다.
들러보는 곳마다 밝게 맞이하는 상인들 덕분에 짧은 시간동안에 부담없이 둘러볼 수 있었던 시애틀은 도시분위기가 화려하진 않지만 빈티지(vintage)한 느낌이 가득했던 도시로 기억되고 있다.
Public Market Center 서둘러 시애틀공항으로 나와 인솔자를 등지고 비행기에 올랐다. 시애틀에서 스포케인 거리는 약 470Km로 비행시간이 1시간가량이니 김포공항에서 제주공항 거리정도로 가늠된다.
스포케인으로 향하는 비행기에는 탑승객이 별반 없어 호젓이 돌아오는데, 한순간 머리 속이 온통 하얘졌다. 공항에서 호텔로 가는 길과 교통편을 전혀 모른 채, 숙소 전화번호조차 없이 인솔자만 믿고 따라 나섰는데 아무 생각 없이 홀로 비행기에 오른 것이다.
걱정을 끌어안고 공항에 도착해보니 날은 저물어 주변은 어두운데 유난히 공항규모가 작고 이용객이 적은 소도시의 공항대합실 밖에는 셔틀버스뿐만 아니라 택시조차 보이질 않았다. 공중전화가 보이긴 하지만 호텔 전화번호도 모르고 우왕좌왕하는 동안에 대합실 안은 인적마저 사라지고 결국 나 홀로 남게 되었다.
미국에선 절대 혼자 거리를 돌아다니지 말라고 했는데 아무도 없는 공항대합실에서 야밤에 쥐도새도 모르게 객지에서 가슴에 구멍 뚫리는 건 아닌지, 어찌 해야할지 당황스러웠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주위를 둘러보니 Guide Bureau위에 인터폰이 보였다.
이리저리 궁리(窮理)를 해보니 인터폰으로 호텔을 호출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급히 달려가 인터폰을 들고 헬로우를 연발하니 상담원이 연결되며 뭐라 얘기하는데 당황한 나머지 말이 귀에 들어오질 않기에, 무작정 Red Lion Hotel을 연결해 달라 했더니 그곳을 떠나지말고 잠시 기다리라 한다.
연결을 기다리는 순간 일각(一刻)이 여삼추(如三秋)란 말이 실감났던 것 같다. 이내 신호벨과 함께 호텔이 연결돼 호텔 버스를 보내주겠다고 하는데 함께 머물고 있던 한국인들을 바꿔 달라하니 잠시 후, 룸에 머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한다. 저녁식사 후 연수일행 모두가 놀러나간 듯 싶었다.
□ 스포케인/ Riverfront Park
긴장이 풀리면서 공항대합실 의자에 앉아 잠시 졸고 있었는데 누군가 어깨를 두드려 화들짝 놀라 쳐다보니 호텔 운전기사가 나타났다. 미니버스의 조수석에 앉아 가는데 그는 자녀 교육에 관심을 보이며 한국의 교육비에 대해 물어온다.
Riverfront Park 얼떨결에 한국(92년) 기준으로 과외과목당 300$을 지불한다고 하니 이해할 수 없다던 그 친구의 모습이 떠오른다. 알아듣는지 모르는지 Konglish를 지껄여대는 동안 호텔에 도착해 팁을 건네주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정말 아찔한 경험을 했지만 덕분에 5일간 세미나를 3일간으로 줄여 지루함을 모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틀간 세미나 불참으로 인해 귀국 후 연수부에 제출해야 될 리포트 자료를 챙기느라 남은 일정을 분주히 보낼 수밖에 없었다.
스포케인에 도착한지 6일째 되는 날은 오전 ISC 관련 Olivetti Company 견학을 마치고 점심식사 후 세미나일정을 끝냈다. 다음날, 스포케인에 머물던 마지막 날인 7월 24일은 숙소에서 멀지않은 곳에 있는 Riverfront Park를 들러보았다.
공원에는 1909년 지어졌다는 회전목마가 나이를 잊은 채 돌고 있고 공원을 상징하는 시계탑이 있다. 맑은 하늘아래 펼쳐진 자연경관이 아름답고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아기자기한 도심의 한적한 공원을 산책해 보는데, 마주치는 스포케인 지역민들 표정에는 한껏 여유로움이 배어있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