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주 May 05. 2018

푸르른 오월 오일


대체공휴일이 시작되는 오월 첫 주말은 어린이날이다. 대체공휴일은 주말과 법정공휴가 겹치면 다음 평일에 대체 공휴일을 만들기 위해 2013년부터 시행한 법이다. 최근 어려운 한국경제 속에서 청년층의 취업선호도는 안정적인 보수와 정년이 보장되는 직장을 선호하는 현상이 증가되고 있다. 또한 월급이 적더라도 자신의 여가를 즐기는 삶을 선호하고 있다고 한다.


즐기는 문화에 편승해 황금연휴로 이어지는 대체공휴일은 젊은 층에게 각광받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1980~90년대 지난세월 수출한국을 이끌던 패기에 찬 베이비부머들을 떠올려 다. 향기로운 라일락 내음이 전해지는 오월 어린이날은 1923년 방정환 선생에 의해 제정됐지만 한국전쟁 폐허 속에 자라난 베이비붐 세대들은 자신의 유년기를 돌아보면 다소 생뚱맞게 느껴지기도 한다.    



방정환 선생은 1919년 도쿄 도요대학(東洋大學) 아동미술과에 입학한 뒤 아이들이 사회에서 제대로 보호를 받지 못하는 현실을 보면서 당시 소년운동을 펼쳤는데, 이때부터 아이들도 한 사람의 인격체로 대해야 한다는 의미로 1920년 방정환 선생이 “어린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원래 우리나라 고유한 말의 늙은이, 높은이, 젊은이라는 낱말처럼 “이”라는 글자는 “분”과 같은 높은 사람에 의미를 가지고 있다한다. 이희승(李熙昇) 선생이 엮은 [국어대사전(1981)]에는  “어린이란 어린아이를 높여서 부르는 말로서 나이가 어린 아이란 뜻이다.”라고 적혀 있다. 방정환 선생은 1923년 색동회(色動會)라는 단체를 만들고 [어린이]라는 잡지를 창간했다.


  

어린이 인권운동을 전개한 한국최초의 어린이 문화운동단체인 색동회는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정하였으나, 1927년부터는 어린이날 행사를 5월 첫째 일요일에 열어 동화와 동요 대회, 미술 전람회 등에 행사를 열었다. 하지만 일제는 어린이날 행사가 민족의식을 높일 것을 우려해 1937년부터 어린이날 행사를 금지시켰다.  


광복(光復) 이듬해인 1946년 [어린이] 잡지가 다시 발행되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어린이날이 5월 5일로 바뀌어 시행되었다. 하지만 어린이날 행사는 8·15 광복이후에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다가 1970년 어린이날이 공휴일로 지정되면서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따라서 검정고무신에 코흘리개로 1960년대 유소년(幼少年)기를 보냈던 베이비부머들은 부모가 되고나서야 비로소 어린이날에 의미를 알게 되었다.

 


1980~90년대, 어린이날이면 어린자식을 등에 메고 여기저기 찾아다녔던 추억이 아련하건만  어느새 그 자녀들은 성인(成人)이 되어버렸다. 이미 고인이 되신 부모과 함께 그 시절 어린이날 나들이를 나섰던 기억을 애써 떠올려보는데, 세월이 흘러감에 어린이날 행사는 어느덧 손자들과 함께하는 시니어 연배(年輩)의 내 삶에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 戊戌(2018)年 오월 초닷새

매거진의 이전글 무릉도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