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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주 May 15. 2018

꺼지지 않는 등불


오월은 많은 기념일이 있는 달이지만 나는 일찍 부모를 여윈 탓인지 살아계신 옛적 은사를 찾아뵙는 일이 또 다른 보람으로 남는 오월인 듯하다. 나는 중학교 진학으로 1968년 서울에 올라오기 전까지 수원에서 태어나 자랐다.


초등학교 4학년을 마친 나는 서울 명문중학에 가야한다는 부모님의 성화에 눌려 진학률이 높다는 이웃학교로 전학을 했는데 당시 5학년 담임이 지금껏 잊지 못할 남다른 스승으로 남아있다. 등교 길이 바뀌며 낮선 교정이었지만 항상 스승의 배려와 관심 속에 구김 없는 학교생활을 해낼 수 있었다.



내가 졸업한 초등교는 가톨릭 교구에서 설립한 학교였기에 교장신부를 중심으로 각 학년이 한 반(班)으로 구성돼 줄곧 6년을 같은 친구들과 함께한 학교였다. 당시 많은 친구들이 5, 6학년 때 전학을 왔기에 70명이 넘는 친구들이 졸업했는데 선생님은 지금껏 50년 넘은 제자들을 대부분 기억하고 계신다.


제자들에 대한 스승의 남다른 사랑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중고교와 군복무 시절에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면 집과 부대로 친필답장을 보내주셨던 선생님의 열정과 사랑은 남달리 오래도록 꺼지지 않는 등불로 내 가슴에 남아있다.



2018년 스승의 날을 맞아 서울시 교육청은 네티즌을 대상으로 서울에 재직 중인 초·중·고교 학창시절 스승 찾기를 진행한다고 한다. 하지만 2016년 청탁금지법이 시행되며 교사와 학생 간에 선물을 전할 수 도 없다보니 스승의 날에 카네이션 논란이 일며 교사에 대한 사회적 존중과 교권 추락 등이 맞물려 이런저런 말들이 나온다.


국민권익위원회가 허용된다는 선물은 학생대표가 스승의 날에 공개적으로 제공하는 카네이션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졸업 후 은사를 찾아뵙고 선물하는 것은 인정된다고 하니 나중에라도 스승께 감사의 선물을 할 수 있는 길은 열려있는 셈이다. 사제지간 스승의 고마움을 새기며 정을 나누는 일이 퇴색돼 가는 것이 다소 안타까워 보인다.



그 옛날 천방지축 철부지시절 수시로 혼쭐나가며 회초리를 맞고 자랐지만 이순을 넘긴 나이까지 스승과의 정리(情理)가 남아있음은 제자로서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존경심과 스승으로서 청출어람(靑出於藍)을 간직한 사제 간의 믿음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일부 동기는 스승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데 난 지금도 맞담배를 도저히 할 수가 없다. 간혹 짓궂은 친구가 내게 담배피기를 강요할 때면 선생님 말씀이 건방지게 스승 앞에 콧수염을 기르고 나타났는데 담배를 피우지 못할 까닭이 없다며 환한 웃음을 지으신다.


2017년 7월

스승의 권유에도 차마 면전에서 담배를 피울 수 없는 까닭은 젊은 시절 결혼식에도 참석해 주셨던 선생님이 내 마음속에는 꺼지지 않는 등불이요 영원한 길잡이였기 때문일 게다. 마지막 근무를 고향에서 마감할 수 있었기에 원천동지점에 머물며 몇 번이나마 스승을 찾아뵐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라 여겨진다.


스승의 날은 세종대왕 탄신일로 “한글을 창제하신 겨레의 가장 큰 스승” 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스승의 날을 맞이해, 교권이 추락한 요즈음 스승이 존경받는 풍토가 되살아나고 미래의 주역인 학생들이 바르게 성장하는 교육환경이 이 땅에 뿌리내리기를 소망해보며 노(老)스승께서 내 젊은 시절 등불을 밝혀주신 귀한 말씀을 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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