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가드닝 일기 - 나는 생초보 가드너다
2022년 역대급의 긴 가을이 계속되고 있다. 11월 중순을 넘어 12월의 시작을 앞둔 지금 한낮의 기온은 15도. 마당에는 아직도 꽃들이 남아 있다.
지난 9월 초 꽃시장에서 데리고 온 가우라 바늘꽃은 11월 말까지 세 달 동안 꽃을 보여주고 있다. 가우라의 마지막 꽃들은 겨울을 앞둔 꽃등에들의 소중한 먹거리. 꽃등에들이 얼마 남지 않은 가우라 바늘꽃의 마지막 꽃잎 사이로 분주하게 날갯짓을 하고 있다.
지난여름 끝무렵부터 피기 시작한 메리골드는 마치 지금이 제철인 것처럼 올해의 마지막 정원을 환하게 밝혀주고 있다. 생명력이 대단한 이 메리골드는 햇볕이 잘 들지 않는 지금의 자리에서 스스로 자연발아를 쓱쓱 했었다. 그 후 초가을을 지나며 몸집을 불리더니, 정원의 색깔이 무채색으로 변해가는 지금, 선명한 주황색 빛깔로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너무 흔한 꽃이라고 무시하지 말라고”라고 당당하게 말하면서.
화분에 심어져 있는 안젤로니아와 로벨리아 그리고 펜타스와 일일초의 일년초들도 아직 생존해 있다. 이들은 중간중간 적절히 순지르기를 해주면 다음 해부터는 봄부터 가을까지 꽃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정원의 꽃들이 겨울을 앞두고 마지막을 불태우고 있는 와중에 내년 봄의 정원을 위한 준비도 진행 중이다. 튤립과 수선화 구근은 이미 지난 10월 중순에 모두 심었지만 얼마 전 동네에서 튤립 구근을 새롭게 나눔을 해 주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우리 집 쌍둥이 아들들과 한번 더 심었다. '내가 심은 튤립 구근들은 꽃이 안 피어도 좋으니 둥이들이 심은 건 꼭 피어나게 해 주세요'라고 혼자서 살짝 주문을 외우기도 했는데, 둥이들이 내년 봄에 실망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구근들을 심고 나서 알게 된 것인데, 구근은 '가을의 끝'이라는 순간을 잘 낚아채어 정원의 땅이 얼기 직전에 심는 것이 최선. 그런데 올해는 역대급의 따듯한 가을이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10월 중순이라는 비교적 이른 시기에 멋모르고 심은 구근들의 싹이 스멀스멀 올라올까 봐 한 달이 넘도록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다행히 가을이 거의 끝나가는 지금까지 새로운 싹은 보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이제 곧 12월. 손바닥만 한 정원이긴 하지만 식물들의 월동 준비는 해두어야 할 것 같아 일단 소나무 바크로 멀칭 (Mulching)부터 시작했다. 멀칭은 나뭇잎, 나무의 껍질, 식물의 잔해 등으로 땅 위를 덮어 주는 것. 식물들의 월동 준비로 멀칭을 하는 이유는, 맨살이 드러나는 땅이 한기에 직접 노출되는 것을 막아 땅 밑 식물들의 뿌리가 얼지 않게 이불을 덮어 주는 것이 첫 번째 이유.
하지만 멀칭을 하는 보다 중요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멀칭 재료 밑의 땅이 햇빛과 바람에 직접 노출되지 않고 소나무 바크, 왕겨 등과 같은 멀칭 재료가 서서히 땅속의 미생물에 분해되면서 적절한 습기와 유기질을 가진 보슬보슬한 땅으로 바뀌게 되는 것. 이처럼 식물들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최적의 땅을 만드는 데 있어 멀칭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멀칭에 목숨을 거는 가드너들을 종종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올해 봄에 처음으로 수국과 장미 밑에 소나무 바크로 멀칭을 해주었다. 여름과 가을을 거치면서 멀칭을 해준 곳과 해주지 않은 곳의 땅을 직접 비교해 볼 수 있게 되었다. 멀칭을 한 곳은 마치 산속 낙엽 밑에 있는 땅처럼 진한 갈색의 적절한 습기와 부드러움을 머금은 폭신폭신한 땅으로 변해 있었다. 단 반년 만에도 우리 집 마당의 땅을 극적으로 변화시키는 멀칭의 효과라니!
다음 월동 준비는 엔들리스 섬머 수국. 당년지 개화 수국이라 특별히 월동 조치를 하지 않더라도 새로 난 가지에서 꽃이 피는 품종이다. 그래도 겨울의 맹추위를 피해 꽃눈을 조금이라도 더 살려 풍성한 꽃을 보고 싶은 욕심에 월동 조치를 해주었다. 부직포로 감고, 낙엽을 채우는 걸로 과연 꽃눈이 얼지 않을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지만 그래도 해줄 수 있는 것이 이것밖에 없으니 최선을 다해 수국을 꽁꽁 싸매 본다.
장미들은 비교적 간단히 월동 준비를 해주었다. 뿌리 위 접목 부분에 왕겨를 뿌려주고 두툼히 멀칭을 해주는 것으로 끝. 올해 새로 심은 어린 헤르초킨 크리스티아나와 노발리스는 어느 포탈의 장미 키우기 카페에서 한 회원분이 추천한 후 최근 핫한 식물 월동 아이템이 된 커피 마대를 씌워 주었다. 여기저기 검색을 해서 커피 마대를 좀 싸게 구입하면 잠복소나 부직포 보다 오히려 비용이 적게 들어가는 효과도 있고, 재활용도 가능할 것 같다.
멀칭을 하고, 수국을 감싸고, 어린 장미에 커피 마대를 덮어 주면서 이렇게 손바닥 정원에 소소한 겨울 옷을 입혀 주는 것으로 월동 준비를 어설프게 끝냈다. 그리고 한낮 15도에 육박하던 길었던 가을이 11월의 마지막 날을 기점으로 영하 10도, 갑자기 길고 긴 겨울이 찾아와 버렸다. 커피 마대를 살짝 들어 보니, 며칠만 더 따듯하면 필 것 같았던 노발리스의 어린 꽃봉오리 두 개가 결국 얼어 버렸다. 이것으로 생초보 가드너의 좌충우돌 1년 차 마당일도 슬슬 끝나가고 있다.
나도 우리 집 마당의 꽃들과 함께 긴 겨울잠을 자고 싶다. 그리고 눈을 뜨면 초록초록 새싹들이 다시 하나둘 올라오는 봄날의 따듯하고 포근한 계절이면 좋겠다.
그럼 만화의 가드닝 일기. 오늘은 이만.
(2022년 11월 16일~ 11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