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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까지 피어 있는 꽃들

좌충우돌 가드닝 일기 - 나는 생초보 가드너다

by 장만화

가드닝의 세계에 입문하고 처음 맞이하는 가을. 꽃과 식물에 대해 여전히 많은 것들이 낯설고 신기하지만, 최근의 새로운 발견은 11월이 코앞인 지금도 마당에 꽃들이 피어 있다는 사실이다.


나의 머릿속에는 추석 전후에 보이기 시작하는 코스모스와 국화가 그 해의 마지막 꽃들이었다. 그래서 10월 중순이 넘어가면 낙엽들만 가득하고 꽃들은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고정관념이 지배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 집 작은 마당의 벚나무에서 낙엽이 떨어져 쌓이고 있는 지금, 그 고정관념을 깨뜨리며 아직도 꽃들이 꿋꿋하게 피어있다.


먼저 추명국. 9월 초, 꽃봉오리가 하나둘 터지기 시작할 때 이 아이를 꽃가게에서 데리고 왔다. 추명국은 9월 중순에 본격적으로 개화를 시작하더니 10월 말까지 거의 두 달 동안 한복 같은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추명국의 다른 이름이 '대상화(待霜花)'인데, 이 이름처럼 서리가 내릴 때까지 꽃을 보여줄 기세다.

가을을 밝혀주는 꽃 추명국


가우라 바늘꽃도 마찬가지다. 이 녀석은 꽃이 활짝 피어 있는 상태로 데리고 왔는데, 두 달이 넘어가도록 꽃이 피고 또 피고 있다. 가우라 바늘꽃은 그동안 행잉 화분에서 자라고 있었는데, 내년에도 마당에서 오래도록 꽃이 보고 싶어 가을이 더 깊어지기 전 땅으로 옮겨 심었다. 하지만 옮겨 심고 검색을 해보니 이 왜성 바늘꽃은 월동이 잘 안 된다고 한다. 월동 한계 온도가 영하 10도 정도. 멀칭과 짚 등으로 보온 조치를 좀 해주고 내년 봄에 다시 땅에서 새순을 내주길 기대해 봐야겠다.

나비가 날아가는 모양과 닮았다고 하는 가우라 바늘꽃


작년 가을, 마당에 무심코 뿌려두었던 메리골드의 씨앗은 혼자서 자연발아를 척척 해내더니 8월 중순쯤부터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첫 꽃이 9월 초에 피었는데 찬바람이 부는 지금까지도 주황색의 선명한 꽃을 계속 보여주고 있다. 너무 흔한 꽃이라 오히려 과소평가를 받고 있는 메리골드. 하지만 이 꽃은 정원 토질의 개선뿐만 아니라 병충해의 방지 등에도 효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가을의 끝까지 오래도록 화사한 꽃을 가득 안겨주고 있으니, 왜 정원사들의 사랑을 받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흔하지만 정원에 꼭 필요한 꽃 메리골드


다음은 층꽃. 이 녀석도 꽃이 막 피기 시작하는 9월 초에 데리고 왔는데 10월 말이 돼서야 꽃이 하나 둘 지기 시작했다. 둥그런 공 같은 꽃을 층층이 달고서 하늘하늘 바람에 춤을 추기도 하고, 거친 바람에 몸을 잘 가누지 못해 지지대를 필요로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꾸역꾸역 두 달 가까이 정원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멋진 녀석이다.

층층꽃이 한창인 어느 가을날


화분에 심어 놓은 일년초들도 가을의 끝을 함께 하고 있다. 여름 중간에 순지르기를 한번 해준 로벨리아와 안젤로니아 이 두 녀석은 영원히 지지 않을 기세로 꽃을 보여주고 있다. 또 다른 일년초 펜타스와 일일초는 비록 지금 꽃들을 거의 올리고 있지 않지만 오랫동안 함께할 수 있는 꽃들임을 이제는 알게 되었다. 이 녀석들은 모두 가성비 최고의 일년초로 입증된 만큼, 내년 봄의 시작부터 화분에 심어 1년간 함께할 예정이다.


가을의 마지막까지 일년초들이 피어있다


이렇게 11월이 코앞인 지금, 여전히 피어 있는 마당의 꽃들에 놀라고 감사하고 있는 와중에 또 하나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이 있다. 봄의 여왕인 줄만 알았던 장미꽃이 10월 말까지도 필 수 있다는 것. 만약 올해 가을에 새로 심은 헤르초킨 크리스티아나와 노발리스, 그리고 작년 가을에 심은 퀸 오브 하트와 벨렌 슈필이 내년 내후년 무탈하게 잘 커주기만 한다면 우리 집 마당에서도 10월에 가을 장미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마당에 빈자리가, 그리고 채우고 싶은 꽃들이 계속 보인다. 가을꽃 추명국과 아스타가 있긴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한 듯싶어 구절초를 구입해서 심었다. 그리고 구절초를 구입할 때 홀린 듯이 같이 산 여름꽃 가일라르디아도 샤스타데이지를 몇 개 뽑아내고 그 자리에 심었다. 자리도 없는데 사고 싶은 꽃은 많고 또 자리가 없다 해도 빈자리가 보이고. 이렇게 욕심은 늘어만 간다.


가을이 깊어져 가고 있다. 마당에 꽃들이 보이니 떠나보낼 수밖에 없는 가을을 더 붙잡고 싶어 진다. 그래도 마당의 화분들을 하나둘 집안으로 옮기며 겨울의 좋은 점을 생각해 본다.


그래, 이렇게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면 우리 집 마당의 꽃들이 내년엔 더 크고 튼튼하게 활짝 필 거야. 그리고 겨울이 없다면 내년 봄의 튤립도 수선화도 없겠지. 조금 더 일찍 가드닝의 세계로 들어왔다면 조금 더 많은 세월 동안 꽃들을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늦지 않았다. 아직도 보내야 할 계절들이 충분히 남아 있으니까.


그럼 만화의 가드닝 일기. 오늘은 이만.

(2022년 10월 16일~ 10월 31일)


10월 하순의 우리 집 미니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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