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구근은 다음의 봄

좌충우돌 가드닝 일기 - 나는 생초보 가드너다

Dec 6. 2022

낙엽이 하나 둘 떨어지고 찬바람이 불어오면서 가을이 깊어져 가고 있다. 그리고 드디어 기다리던 순간이 되었다. 바로 수선화와 튤립 구근을 심는 순간.

올해 3월과 4월, 꽃 하나 없는 썰렁한 정원을 바라보며 마음이 허전하기는 했지만 봄의 시작은 원래 당연히 그런 줄 알았다. 내가 알고 있는 초봄의 꽃은 목련, 매화, 개나리 같은 나무에서 피어나는 꽃이고, 우리 집에는 그런 나무가 없으니 자연스럽게 이른 봄의 꽃은 포기했었다.

그런데 3월이 되면서 가드닝 유튜버들이 올리는 영상에 슬슬 초화류의 알록달록한 꽃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아니 이렇게 쌀쌀한 초봄에도 노지에서 피는 풀꽃들이 있다고?

그렇다. 3월과 4월 초에 겨울의 언 땅을 뚫고 땅에서 힘차게 새싹이 나와 꽃을 피워 내는 아이들. 그건 바로 수선화와 튤립. 네덜란드의 상징 튤립은 가드닝 초보라고 해도 바로 떠올릴 수 있는 꽃이었지만, 수선화는 이름만 들어 봤지 어떻게 생겼는지 도무지 기억이 안나는 꽃. 하지만 설령 튤립과 수선화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고 해도 이들이 언제 피고 지고, 어떻게 태어나서 자라고 같은 꽃들의 생태와 관련된 것은 전혀 모르는 나였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렇게 늦게나마 가드닝의 세계로 입문하면서 튤립과 수선화를 키워 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 아이들에 대해 조사를 해보고 그 생태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게 되었다는 것. 수선화와 튤립은 알뿌리, 즉 구근 식물로 3~4월 초봄에 꽃이 피며, 꽃이 지고 난 후 열심히 잎으로 햇빛을 흡수해 그 영양분을 땅속의 뿌리로 보낸다. 그리고 다시 그 영양분을 바탕으로 구근을 키우고 그렇게 구근에 축적된 힘을 아껴 두었다가 다음 해에 또 꽃을 피우는 그런 녀석들.

수선화와 튤립의 구근들

여름 장마 전에 튼실해진 구근을 캐내서 시원한 곳에 따로 보관을 했다가 땅이 얼기 전 늦가을 즈음에 다시 구근을 심는 것이 구근 식물을 키우는 일반적인 방법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이 귀찮으면 구근을 여름 동안 그냥 땅속에 놔두어도 장마에 썩지만 않는 환경이라면 다음 해에 다시 또 꽃이 핀다고 한다.

하지만 소모성의 수입 튤립 구근들은 캐내지 않고 땅속에 놔두고 키우는 경우 해가 갈수록 꽃이 작아지다가 결국에는 꽃이 피지 않고 그 생명을 다하게 된다. 그래서 소모성 구근 식물들은 3,4년 주기로 땅속의 구근을 교체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 가드닝 선배들의 충고.

이렇게 초봄에 우리 집 마당을 밝혀줄 수선화와 튤립에 대한 기대감과 설렘으로 구근 주문 완료. 그리고 도착한 구근을 마당에 심었다. 심는 방법은 구근 크기의 2-3배 정도 깊이로 땅을 파고, 구근을 넣고 다시 땅을 덮고 물을 흠뻑 주면 끝.

사실 구근을 심고 물을 주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몰라서 찾아봤는데 정답은 물을 흠뻑 한번 주면 된다고 한다. 땅속에 있는 구근은 완전히 잠을 자는 것이 아니라 내년 봄의 개화를 위해 서서히 움직이는데, 수분이 전혀 공급되지 않으면 구근 안에 저장되어 있는 수분을 모조리 소모한 후 말라 버리게 된다.

마당에 수선화와 튤립 구근을 심고 있다

올해 가드닝을 시작하면서 꼭 해보고 싶었던 위시 리스트 중 하나였던 구근 심기를 이렇게 완료했다. 다음의 봄은 이번 가을 구근 심기의 결과물들을 바탕으로 행복하게 출발할 수 있을까? 어느 가드너가 말했다. 가을에 조금만 더 부지런하면 다음 해의 일찍부터 풍성한 정원을 맞이할 수 있다고. 수선화와 튤립 구근을 심고 나니 나도 왠지 부지런해진 듯한 느낌이다. 그리고 구근 심기는 정원 일의 마지막이 아니라 시작인 것 같은 느낌도.

한 가지 더, 차이브를 심었다. 이런저런 정보를 보다 보니 마늘 또는 부추과의 식물들을 장미 주위에 심으면 병해충 방지에 좋다는 이야기를 보았다. 특히 키우기 쉬운 부추과의 여러해살이 풀인 차이브의 독특한 향이 장미에게 유해한 벌레들을 몰아낸다고 많은 가드너들이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말을 믿고 서둘러 차이브 모종을 주문해서 장미 주위에 심어 주었다. 비록 내년에 장미에 달려드는 벌레들을 막아 주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차이브의 보라색 꽃도 보고 잎도 뜯어서 요리에 넣고, 정원도 더 많은 식물들로 풍성해지고 왠지 이득인 것 같은 느낌.

장미 밑의 차이브로 벌레들을 쫓아내 보자

10월의 중순이 넘어가고 차가운 공기가 가득, 햇살도 점점 낮고 무거워지고 있다. 이렇게 올 한 해 함께 했던 꽃들을 서서히 보내야 하는 아쉬운 마음 가득하지만 가을이 있고 겨울이 있어야 다시 내년의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에 꽃들이 새롭게 필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게 되었다. 그래서 조금만 아쉬워하고 내년의 새로운 계절을 설렘 가득 기다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