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가드닝 일기 - 나는 생초보 가드너다
여름의 기운이 거의 끝나고 가을의 기운이 본격적으로 가득해진 9월 하순. 여름이 끝나감과 동시에 내년의 풍성한 정원을 기대하면서 폭풍 식쇼핑과 함께 각종 야생화들을 마당에 잔뜩 심었다. 하지만 아직 남아 있는 마지막 두 개의 식쇼핑 아이템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장미, 그리고 튤립과 수선화 구근.
이 두 아이템들은 9월이 시작되면서 본격 재판매의 시즌에 돌입했지만, 기온이 조금 더 떨어지는 10월 중순쯤 사려고 계획하고 있었다. 그런데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그동안 위시 리스트에 넣어 두었던 독일 장미들이 하나 둘 품절 표시가 뜨기 시작했다. '이러다간 위시 리스트를 하나도 못 채우겠어!'라는 생각이 들어 서둘러 채비를 하고 집에서 가까운 독일 장미의 성지, 일산의 로즈팜 농원으로 향했다.
장미 키운 지는 1년도 안된, 그것도 달랑 두 그루의 장미를 키우고 있지만 왠지 마음의 고향 같은 이곳. 농원 가득한 장미들에 괜스레 뿌듯해하며 위시 리스트에 적어 두었던 노발리스, 헤르초킨 크리스티아나, 그리고 덩굴장미 보니를 구입하는 데 성공했다.
이중 노발리스와 헤르초킨 크리스티아나는 장미 집사들의 집집마다 하나씩은 다 있다는 국민 장미. 두 장미는 각종 병충해에 강할 뿐만 아니라, 노발리스는 쉽게 볼 수 없는 매혹적인 보랏빛 컬러, 헤르초킨은 청초하고 향기 가득한 하얀 빛깔로 장미 집사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있는 품목이다.
또 우리 집 손바닥 정원의 벽에 덩굴장미를 올려 보고 싶은 로망에 구입한 보니는 반복 개화를 하지 않고 한철 피기에 그치는 소륜의 장미다. 하지만 한철 피기와 소륜이라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꽃들이 다글다글 포도송이처럼 피어나고 특유의 빈티지한 핑크빛을 가지고 있어 '덩굴장미를 키운다면 이 녀석이지!'라고 개인 취향 가득 담아 찜해 놓았던 그런 장미다.
아무튼 이렇게 3종의 장미를 구입, 마당에 심으려고 하는데 이미 자리를 잡고 자라고 있는 장미 퀸 오브 하트와 벨렌 슈필의 새순들이 대부분 다시 또 쭈글쭈글 거뭇거뭇한 상태가 되어 버렸다.
장미들이 이렇게 되는 원인을 찾기 위해 장미 전문 카페에 가입도 하고 여기저기 검색도 해보았더니 다음과 같은 결론으로 모아졌다. 첫 번째는 총채벌레. 장미의 새순들이 쪼그라들면서 검게 되는 것은 총채벌레의 대표적인 증상 중 하나. 두 번째는 비료풍. 어린 장미에게 비료가 조금 과할 경우 새순들이 생육에 문제를 일으켜 쭈글쭈글 거뭇거뭇 해진다고.
그래서 몸 크기가 0.6mm에서 1.2mm 정도 되고 잎을 쪽쪽 빨아먹어 식물을 괴사시키는 총채벌레가 있나 돋보기를 끼고 장미 잎을 뒤져 보았는데 찾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워낙 작은놈들이 활개치고 다니니 잎들이 다 이런 거 아니겠어?'라고 벌레가 있는 것으로 자기 최면을 건 후 "총채벌레는 무조건 화학 약을 쳐야 됩니다"라는 로즈팜 사장님의 충고를 들어 볼까 했다.
그런데 화학 살충제는 아직까지 마음의 준비가 안되어 있어서 얼마 전에 구입한 천연 살충제 님오일로 내년까지 예방 방제를 더 열심히 해보고 결과를 살펴보기로 했다. 비료풍도 역시 내년에 시기를 잘 맞춰 장미에게 적합한 정량의 비료들을 주고 다시 한번 더 관찰해 보는 것으로 타협.
이렇게 총채벌레와 비료풍의 위협 속에서도 또다시 새로운 독일 장미들을 키우고자 마음먹고 본격 장미 심기 작업에 돌입했다. 먼저 덩굴장미 보니를 위해 라벤더 옮기기. 라벤더 심을 자리의 잔디를 들어내고 지난여름 동안 길게 자랐던 라벤더의 머리를 싹둑 잘라주고 이사 완료.
그리고 헤르초킨을 심을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그동안 너무 치렁치렁하고 애벌레 먹기 대마왕인 러시안 세이지와는 작별하기로 하고 세이지를 결국 모두 뽑아내어 버렸다. 그렇게 노발리스를 심고 헤르초킨을 심고 덩굴 장미용 지지대를 설치하고 와이어를 어닝과 연결한 후 보니를 세워 주었다.
단 세 그루의 장미를 심었을 뿐인데 온몸이 뻑적지근. 허리와 팔다리 몸상태가 삐그덕 거리지만 그래도 내년 5월 우리 집 손바닥 정원을 가득 채워줄 장미들을 생각하면 뿌듯하고 행복한 기대감이 가득하다.
이 마음, 이 행복감, 이 기대감으로 오늘 아침도 정원을 둘러보고 또 다른 할 일을 찾는 것일까? 이렇게 생초보 가드너는 오늘도 점점 더 벗어날 수 없는 가드닝, 그리고 정원의 마력에 듬뿍 빠져들고 있다.
그럼 만화의 가드닝 일기, 오늘은 이만.
(2022년 9월 16일~ 9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