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가드닝 일기 - 나는 생초보 가드너다
여름이 거의 끝나고 가을바람이 솔솔 불기 시작하면서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내년 봄과 여름에 풍성한 꽃들을 보려면 이제 슬슬 어린 모종을 심어야 하는 시기.
가드닝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완전한 초보였던 작년 가을에는, 마당에 씨앗을 주르륵 뿌리는 것으로 올해의 정원을 준비했었는데 그 결과는 처절했었다. 건진 꽃이 단 하나도 없었던 올해의 봄과 여름.
그래서 이번 가을에는 마음을 다잡고, 통장을 좀 비우더라도 다양한 모종들을 사서 심기로 하고 본격적으로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서 주문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떤 꽃의 모종을 주문해야 할지는 언제나 선택과 고민의 시간. 특히 우리 집 코딱지 마당은 삼분의 이가 그늘이라 선택에 애로사항이 많았다.
물론 정원 음지식물의 대명사 호스타나 맥문동 같은 아이들을 심고 키워도 되겠지만 그래도 뭔가 그늘에서도
하늘하늘 여리여리 하게 꽃이 피는 그런 녀석들을 키우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1번은 부처꽃. 가드닝 고수들의 유튜브 영상에 꼭 등장하는 이 꽃은 종이질감의 작은 꽃들이 긴 꽃대에 주렁주렁 매달려 일직선으로 쭈욱 피는데, 분홍색의 부처꽃이 대세. 그런데 때마침 방문한 인터넷 꽃가게에서 흰색의 부처꽃을 발견, 냉큼 장바구니에 집어넣고 분홍색의 부처꽃과 함께 주문을 했다. 이 아이들은 정원 끝 그늘진 부분과 정원 중간의 그늘진 부분에 각각 두 개씩 심었는데 키가 1미터까지 자란다고 하니 다른 키 작은 꽃들 뒤쪽으로 배치하면 될 듯하다.
다음 반음지 식물 2번은 터리풀. 에키네시아까지는 그래도 해가 좀 들어와서 어느 정도 자라주고 있는데 에키네시아 뒤로는 그늘이 많이 지는 편이다. 그래서 에키네시아 뒤쪽의 빈 그늘을 채워 보려고 음지 식물을 찾다가 터리풀이란 녀석을 발견했다. 먼지 떨이개 같은 하얀 꽃들을 가득 피워내는 우리나라 토종꽃의 이 아이는 키가 1.5미터 내외로 자라는 키다리라고 하니 분홍색 에키네시아 뒤에서 그늘을 하얗게 밝히면서 무럭무럭 커 주기를 기대해 본다.
반음지 식물 3번은 아스트란티아. 밤하늘의 빛나는 별 같기도 하고 바늘꽂이에 바늘을 가득 꼽아 놓은 모양 같기도 한 묘한 매력의 이 꽃은 모종 한 개가 다른 모종 3, 4개를 합친 가격인 높은 몸값의 녀석이다. 일단 소심하게 흰색의 아스트란티아 두 개만 주문했는데 분홍과 진빨강의 색깔도 있으니 정원 중간의 그늘에서 잘 자리 잡고 크면 다른 색깔의 녀석들도 조금 더 주문해서 키워보고 싶은 신비한 꽃이다.
다음으로 주문한 반음지 식물 4번은 오이풀. 레드 와인 색의 길쭉한 사탕 같은 모양의 꽃을 피우는 이 식물은 꽃 하나하나가 '와 이뻐!'라고 말할만한 녀석은 아니다. 하지만 정원의 그늘진 빈 곳에서 알망 알망 한 꽃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으면 뭔가 자연스럽고 빈티지한 정원을 연출하기에 좋은 아이인 듯하다. 자주 보는 가드닝 유튜버의 영상에 등장해서 '아앗! 바로 이 녀석이야!'라고 점찍어 두었는데, 마침 반음지에서도 잘 자란다는 정보가 있어서 바로 주문을 해버렸다.
반음지 식물 5번은 추명국이다. 꽃이 상대적으로 큰 녀석인데도 반음지에서 잘 자란다고 하는 이 녀석은 모종으로 구입을 할까 했는데 올해 꼭 꽃을 보고 싶어서 꽃망울이 달린 아이로 직접 구매해 왔다. 보들보들 보드라운 질감을 보여주면서 소박하고도 단아한 한복 같은 느낌이 가득한 이 레트로 한 꽃은 대상화라고도 불린다. 가을을 밝히는 꽃, 서리를 기다리는 꽃이라는 이름처럼 가을을 대표하는 꽃 중 하나이다.
마지막 반음지 식물은 벼룩이울타리. 토종 우리 꽃이라고 하는 이 녀석은 아시아 북방계 식물이라고 하는데 그라스 종류인데도 하얀 꽃을 가득 피워주는 독특한 매력의 녀석이다. 최근 우리 집 마당에 수크령과 그린라이트 그라스를 심었는데 그라스 종류를 조금 더 심고 싶어서 찾아보던 중 우연히 이 녀석을 발견, 마침 반음지에서도 무난하게 자란다 하여 냉큼 주문하게 되었다.
그 외에도 작년과 올해 봄 그늘에 숙근을 심어서 키우고 있는 아스틸베와 다양한 색깔의 잎들이 매력적인 휴케라 등이 반음지 식물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이들은 다른 일기를 통해서 따로 소개를 한번 할 예정이다.
이제 얼추 내년을 위한, 반음지에서 잘 자란다고 하는 야생화류 식물들의 구입이 정리가 되어 가고 있다. 이제는 몇 그루의 장미를 구입하기 위해 9월 하순 로즈팜이라는 장미 던전으로 새로운 장미 아이템 확보를 위해 파밍 갈 일만 남아 있는 상황.
이렇게 코딱지만 한, 또 대부분이 그늘인 마당이지만 그럼에도 그 와중에 하루 종일 햇빛이 드는 곳도 있어서 그곳은 장미들을 위한 공간으로 아껴 두었다.
꽃을 심으면 심을수록 더 큰 마당을 꿈꾸게 된다. 그래도 지금 당장은 한 뼘의 마당이라도 있어서 내가 직접 꽃과 식물을 심을 수 있고 이 아이들이 가드닝 생초보의 모자란 보살핌을 받고도 무럭무럭 자라나서 꽃을 피워 주는 것에 감사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렇게 어린 식물들을 심으면서 내년의 정원을 다채롭게 채워줄 꽃들을 상상하다 보면 오래간만에 느껴 보는 설렘이 가득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계절 계절 그 사람과 함께 할 순간들을 그려 보는 것과 같은.
그럼 만화의 가드닝 일기. 오늘은 이만.
(2022년 8월 16일~ 8월 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