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가드닝 일기 - 나는 생초보 가드너다
우리 집 손바닥 정원에서 키우고 있는 두 그루의 독일 장미 벨렌 슈필과 퀸 오브 하트는 모두 작년 늦가을에 마당에 심은, 아직 1년 차도 안 된 어린 장미다.
그렇게 어린 퀸 오브 하트는 지난봄에 쑥쑥 자랐고 장미 키우는 보람을 느껴 보라는 듯 주황색의 꽃을 한가득 선물해 주었다. 그 꽃을 자른 후 다시 새순이 금방금방 올라와 2차 개화를 했고, 두 번째 데드 헤딩 후에 또 한 번 건강한 새순이 올라왔다. 그리고 가을이 시작되는 지금 3차 개화까지 보여주려 하고 있다.
퀸 오브 하트의 우량아 같은 모습과는 반대로, 벨렌 슈필은 지난봄에 조금 자라난 후 성장을 멈추어버렸다. 그 후 퀸 오브 하트가 1차 개화를 모두 끝내고 나서야 꽃봉오리 세 개를 겨우 겨우 올린 정도였다. 하지만 그마저도 제대로 피우지 못하고 져버려서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이렇게 퀸 오브 하트가 '장미 집사님, 나의 이 왕성한 성장이 대단하지 않나요?'라고 말하고 있는 와중에도 벨렌 슈필은 어렵게 피운 꽃봉을 데드 헤딩한 후 한참 동안 새순이 올라올 낌새가 없었다. 그래서 이 아이에 대한 기대는 내년으로 미루고 있었다. 그런데 초가을 바람이 불어오는 어느 순간, 벨렌 슈필이 꼼지락꼼지락 굵고 단단한 새순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새순에서 새로운 잎과 가지를 올리더니 말 그대로 파죽지세, 순식간에 키를 거의 10센티가 넘게 키우면서 아직도 하루가 다르게 쭉쭉 자라는 중이다. 누군가가 벨렌 슈필은 짐승 수세가 있다고 말했는데 그 저력을 가을의 시작과 함께 슬슬 보여주는 듯하다.
한편 지난 7월 초 딱 한 송이 꽃을 피워냈던 클레마티스 리틀 머메이드는 그 꽃이 지고 난 후 줄기의 가장 윗부분부터 시들어가기 시작했다. 잎들은 다 말라가고 있고, 싱싱한 초록빛을 보여주고 있어야 할 8월에 이런 모습이라 시든 줄기를 잘라내 버릴까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가드닝 유튜버의 클레마티스 관련 영상을 보게 되었다.
"기다리면 다시 새순이 나올 것이니 시든 줄기를 쳐내지 마세요" 그 유튜버의 말을 믿고 시든 줄기를 그대로 놔두고 기다렸다. 그리고 어느 순간 시든 잎 사이로 새순이 돋아나기 시작하더니 폭풍 성장을 하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하지만 지난봄과 달라진 점이 있다. 지난봄에는 클레마티스의 단일 줄기가 위로 올라가면서 그 줄기에 두 개의 잎을 나란히 만들고 계속 키를 키우면서 위로 또 위로 올라가는 그런 모양이었다. 반면 지금은 줄기를 위로 올리기보다는 잎들을 한 군데에서 많이 만들면서 새로운 성장점을 개척하고 있는 모양새다. 아마도 내년 봄에도 이런 모양으로 시든 잎들 사이로 새로운 가지와 잎들이 나오면서 꽃들을 잔뜩 물게 될 것으로 예상해 본다.
그리고 또 하나의 클레마티스 더치 오브 에든버러도 역시 멈추었던 성장을 재가동, 새로운 잎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마치 무더웠던 여름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이제 슬슬 다시 움직여 볼까?' 이런 느낌.
여름이 끝나고 가을에 접어들면서 식물들이 한해의 활동을 슬슬 마감하고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전 이 세상의 모든 굴레와 속박을 벗어던지고 씨앗과 뿌리로 돌아가겠습니다" 이런 분위기인 줄 알았다. 하지만 웬걸, 클레마티스도, 장미도 가을의 시작과 함께 싱싱한 잎들을 가득 내어주고 있다. 아마도 이렇게 10월 초까지 몸집을 조금 더 키우고 영양분을 많이 흡수한 후 겨울을 맞이할 준비에 들어가게 될 것 같다.
9월 초에 심었던, 꽃봉오리만 잔뜩 달려 있던 추명국이 2주를 기다리고 나니 꽃이 한 송이씩 피기 시작했다. 수크령은, 올해는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새로운 우리 집 마당에 잘 적응했는지 시간이 흘러 흘러 이삭들을 올리고 있다.
모종을 심을 때는 필 것으로 생각하지도 않았던 하얀색 부처꽃이 하늘하늘 마당에서 춤을 추고 있다. 작년에 심었던 메리골드가 지난가을 자기 혼자 씨앗을 마당에 떨구고 겨울과 봄을 지나 자연 발아를 했다. 그리고 여름을 지나 꽃을 피우며 선명한 주황색으로 우리 집의 초가을 마당을 밝혀주고 있다.
그렇게 안절부절 기다리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무심히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여름 가을 겨울 봄, 다시 봄과 여름의 시간이 흘러가더니 초가을 우리 집 마당에는 새로운 꽃들, 더 풍성하고 튼튼한 잎과 줄기가 신비한 마법처럼 자라나고 있다. 그래, 정원지기 선배들의 말씀처럼 가드닝은 기다림과 설렘, 기대하지도 않았던 기쁨과 감동 그리고 세월이다.
그럼 만화의 가드닝 일기. 오늘은 이만.
(2022년 9월 1일~ 9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