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가드닝 일기 - 나는 3년 차 가드너다
7월의 대단했던 폭염을 겪은 후로, 예년 같으면 더위의 절정이어야 할 8월 초중순이 오히려 조금은 살만해진 기분이다. 펄펄 끓는 기온 때문에 성장을 멈추고 숨을 죽이고 있던 꽃과 식물들도 다시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그러나 7월 폭염의 후유증으로 나의 사랑 자주해란초 (리나리아 퍼퓨리어) 캐넌 웬트가 무지개다리를 건너갈 모양새다. 잎과 줄기가 시들 거리더니 하나 둘 말라가고 있다. 제발 뿌리만은 살려 달라고 땅의 신에게 기도를 올리지만, 상태를 보아하니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다행히 모체로부터 씨앗으로 번식된 아이들이 그늘 쪽에 살아남아 있어서, 다음 해에도 대를 이어 갈 수는 있을 듯.
아스타를 퇴출했다. 3년 전 모종으로 데리고 온 첫 해에 꽃을 조금 본 후 작년까지 한 번도 꽃을 못 본 녀석이다. 매년 흰곰파이병, 마름병 등으로 비실 데기만 했다. 하지만 월동은 또 기가 막히게 잘해서, 매년 봄 새순을 팍팍 올리며 '올해는 과연?' 이런 기대감을 주지만, 장마철부터 여지없이 잎과 줄기가 망가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8월 이맘때면 상태가 완전히 엉망. 그래서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 퇴출을 결정했다. 아스타를 퇴출한 자리에는 포트에서 땅으로 옮겨지기를 기다리고 있던 파종둥이 메리골드를 심었다.
역시 3년을 넘게 키운 오이풀도 퇴출했다. 우리 집 마당 가운데, 에키네시아 뒤에 자리 잡고 있던 오이풀은 쑥쑥 잘 크고 꽃도 잘 올라왔지만 너무 쑥쑥 커버린 게 문제였다. 이 녀석은 꽃 필 때가 되면 내 키보다 조금 작게 꽃대가 쑤욱 올라온다. 마당 한복판에서 이렇게 큰 꽃대가 떡 하니 버티고 있으니 눈에 아주 거슬렸다. 빨간색의 열매 같은 꽃도 그늘에 묻혀버려 존재감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 우리 집의 손바닥 정원과는 인연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몇 번을 망설이다가 결국 퇴출해 버렸다.
오이풀을 정리하고 난 뒤에 마당의 전체적인 풍경이 좀 간결해지고, 새로운 선도 잡힌 것 같아, 정원을 비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깨우친 요즘이다. 하지만 깨우친 건 깨우친 것이고, 꽃 욕심은 꽃 욕심이다. 새롭게 키우고 싶은 꽃들은 수도 없이 많다. 그래서 올해 봄부터 여름까지 새롭게 데리고 온 아이들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귀여운 모자를 눌러쓴 쫑쫑거리는 아이들이 보고 싶어서 멕시코 모자 '라티비다 옐로우'. 샛노란 동글이들이 사랑스러움으로 가득한 '마트리카리아 골든볼'. 마당에 경쾌한 파란색 풍경을 만들어 보고 싶어 '히솝'과 '용머리'. 델피늄 정도는 마당에서 자라고 있어야 인정이지, 그래서 '델피늄 라이트 블루버터플라이'. 공작 아스타 위치를 이동하고 그 자리를 채울 '여뀌 다즐링 레드'. 반음지의 빈 공간을 완벽하게 책임질 것 같은 '긴산 꼬리풀'. 마당에 조금은 특이한 보라색을 추가해 보고 싶어 서양 당귀꽃 '안젤리카 실베스트리스 애보니'. 화단 앞쪽을 장식할 강렬한 붉은색이 필요해서 '포텐틸라 서베리 모나크의 벨벳' 등등.
이렇게 새롭게 데리고 온 손가락만 했던 어린 모종들이 올해의 엄청난 여름을 견뎌내며 조금씩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보니, 나도 같이 힘내서 올해의 남은 여름을 견뎌내 봐야겠다고 기합을 넣어본다. 어린 모종들뿐만이 아니다. 여름의 꽃들은 씩씩하고 강건하게 여전히 마당을 빛내고 있고, 가을의 꽃들은 슬금슬금 부지런히 다음의 계절을 사부작거리고 있다.
장마를 피하기 위해 늦게 파종한 백일홍이 본격적으로 피기 시작했다. 작년보다 종류를 절반 넘게 줄였지만, 조금 더 강렬한 아이들인 백일홍 '배너리 자이언트 와인', 백일홍 '퀴니 레몬피치', 백일홍 '자하라 더블 화이어'가 마당에서의 존재감이 묵직하다. 백일홍이 피기 시작하니 여름의 정원이 완전하게 채워진 느낌. 동시에 가을 정원의 향기가 조금씩 풍겨 오고 있다. 백일홍은 일년초지만 여름과 가을의 정원에서 빠지면 안 될 필수 꽃이다.
아메리칸 블루가 요즘 물이 올랐다. 매일 아침 새롭게 피어나는 블루의 향연이다. 눈을 떠 마당에 나가보면 오늘 또 새롭게 핀 아메리칸 블루가 여름의 더위를 밀어내는 상쾌한 파랑으로 아침 인사를 해온다. 이 사랑스러운 아이는 추위에 약하기 때문에, 봄부터 가을까지 화분에서 키운 후 겨울이 되기 가지를 짧게 쳐서 베란다 또는 집안으로 들여서 계속 키우면 된다.
아메리칸 블루는 겨울 동안 실내에서 다시 또 쑥쑥 성장하며 몸집을 키운다. 봄이 되어 마당에 나갈 때 한 번 더 짧게 정리하면, 7월 중하순부터 매일 새롭게 선명한 파란색 꽃을 피우는 아메리칸 블루를 만날 수 있다.
많은 정원지기들이 올해 여름 역대급의 목수국꽃이 피고 있다고 한다. 아마도 극도로 짧았던 장마 기간 때문에 목수국 꽃이 개화 후 습기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정원지기들의 흥분이 전해지는 가운데, 우리 집은 6월 초 목수국 2차 전정으로 인해 가을 개화를 기다리는 중이다. '여름 목수국으로 대동단결'은 아니게 되었지만, 그래도 라임라이트 목수국이라도 한 주 피어 있어 그나마 허전함을 달래고 있다.
큰산 꼬리풀은 2차 개화를 하며 마당 끝에서 연파랑을 띄우고 있고, 에키네시아는 온 세상이 회색 빛이 되어도 컬러컬러의 밝음을 여름 끝까지 유지할 모양새다. 플록스는 어느덧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지만, 6월 여름의 시작부터 지금까지의 성실함을 떠올리면 이젠 내년을 위해 쉬어 달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다. 운남소국은 매일매일 전성기를 갱신하며 절정의 순간을 맞이할 가을을 기다리고 있다.
한 송이만 피고 올해를 마감할 것 같았던 1년 차 하늘바라기가 풍성해지고 있다. 더 많은 꽃을 올릴 새순과 꽃봉오리가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자 순식간에 돋아 나오고 있다. 기대하지 않았는데도 이렇게 불쑥 찾아오는 꽃들의 춤사위를 마주하고 있으면, 오늘도 어제와 다름없이 마당에서 흘린 땀방울로부터 마법 같은 선물이 주어지는 느낌이다.
여러모로 역대급의 여름이었다. 그러나 이 독했던 여름도 끝을 향해 가고 있다. 다음 해의 여름이 얼마나 더 독해질까 두려움이 가득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꽃을 키우고 정원을 가꾼다. 나에겐 예닐곱 평의 마당이 있다. 마당의 초록은 오늘도 새롭게 태어나고 있으며, 올해의 지독한 여름에도 꽃들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그럼 만화의 가드닝 일기, 오늘은 이만.
(2025년 8월 1일~8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