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형
원래 나는
학교 근처 아파트에는 놀이터가 있다. 하교 시간이 되면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서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거나 피시방에 간다. 그리고 가끔은 놀이터에서 논다. 초등학교 남학생들이 놀이터에 가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경찰과 도둑을 한다거나, 두 번째는 싸우러 간다거나. 놀이터에 싸움을 구경하러 가든 경찰과 도둑을 하러 가든, 혹은 피시방에 가든 언제나 옆에는 친구들이 있었다.
집에 오면 동네 동생들과 놀았다. 난 흔히 말하는 골목대장이었다. 대장이라고 해서 특별하진 않다. 애들보다 나이만 한 두 살 많았을 뿐. 남들이 봤을 때 또래 애들과 잘 어울리는 활발한 아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춤을 좋아했던 나는 열여섯 살 때 댄스 학원을 보내달라고 했다. 학원에서 가르치는 장르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방송 댄스반으로 들어갔다. 30명 정도 되는 사람들과 함께 수업을 진행했고 남학생은 유일하게 나 혼자였다. 이로써 확실해진 것은 지금 시대에는 남자보다는 여자들이 춤을 더 좋아한다. 수업은 어쩔 수 없이 여자 그룹의 춤을 배우게 됐다. 가끔씩 다른 그룹의 춤을 배우긴 했어도 좋아하는 일 앞에서는 낯가림이 없었다.
사람을 좋아했다. 관중들 앞에서 공연을 하면 행복했다. 그리고 고등학생이 된 나는 사람을 피하게 되었고 두려워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 10월에 미국으로 두 달간 어학연수를 갔던 적이 있다. 미국에 도착해서 시차 적응을 하고 미국 음식에 입맛을 맞췄다. 환경의 적응하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일어나서 수업 준비를 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고 친구들과 같이 씻으러 가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음식도 맛있다. 어학연수를 간지 한 달 정도 지났을까. 그때부터 몸의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원인
얼굴에 여드름이 생기기 시작했고 빠른 속도로 이마부터 턱 끝까지 빨갛게 익어 흉측할 정도로 심해졌다. 세수를 하고 물기를 닦으면 수건에는 언제나 피가 묻어 나올 정도였다. 앞머리는 이마에서 터진 여드름 때문에 달라붙어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라고 생각을 하면서 자신을 달래 보았지만 어림없었다. 거울 속에 비친 얼굴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두근 된다. 설렘 같은 호의적인 두근거림이 아니다. 긴장하고 불쾌할 때 뛰는 두근거림이다.
그래도 괜찮았다. 나아지겠지. 바르는 화장품을 좋은 것으로 쓰면 된다고 생각했다. 친구들은 토너와 로션 정도로 끝나지만 나는 얼굴에 바르는 것만 6개 이상을 썼다. 세안을 꼼꼼히 해도, 화장품을 좋은 거를 써도 나아지질 않았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베개에 피가 묻어있다. 자는 동안 여드름이 터져 핏자국이 남았던 것이다.
반사되는 모든 것들을 싫어했다. 그것들은 내 얼굴을 마주 보게 만들었는데 저 얼굴을 쳐다보기 싫었다. 그러다 보니 남들도 내 얼굴을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을 마주치면 얼굴이 더 붉어져 눈을 피하게 되었고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불안에 떠는 얼굴을 누가 보여주고 싶겠나. 특히 여자 애들 앞에서는 더 싫었다. 수치스러웠으니깐.
아무렇지 않게 피부가 많이 안 좋아졌다고 말하는 선생님들과 친구들의 물음에 괜스레 화가 났다. 피부라는 말만 들어도 짜증 나고 울컥했다. 부모님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곱슬머리인 것도 서러운데 피부까지 안 좋으니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이 치밀었다. 피부과에 가서 관리를 받아도 나아지질 않았다.
죽고 싶었다
사람은 나에게 두려운 존재가 되었다. 나를 보며 징그럽다고 속삭이고 고개 들며 살지 말라고 하는 것 같았다. 나에게 관심을 가지지 말아 줬으면 좋겠다. 없는 사람으로, 투명 인간으로 대해줬으면 좋겠다. 사춘기 시절의 학생은 외모가 인생에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외모가 이렇게 되니 자신감은 떨어지고 죽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피부는 나아지질 않고 대인기피증은 점점 심해져만 갔다.
대인기피증은 8개월 정도 지속됐다. 8개월 동안 내 정신 상태는 누구보다도 좋지 않았다. 만약 더 심해졌다면 우울증으로 이어졌겠지.
이겨냈던 방법은
사실 나도 잘 모른다. 분명 힘들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괜찮아졌다. 한 가지 기억나는 게 있다면 사람과 얼굴을 마주 보면 불안하고 긴장했던 시기에 무대 위에서 공연을 했다. 그것도 많이. 내 얼굴은 카메라로 줌인이 되었지만 수치스럽지 않았다. 그 순간만큼은 말이다. 불안했던 감정, 타인의 생각들로 인한 공포심, 고개를 들 수 없던 순간들은 무대 위에 설 때만큼은 잊어졌다.
정면으로 맞붙어 싸웠다고 하는 게 맞겠지. 공연을 하고 내려오면 주변에서 칭찬을 끊임없이 해줬다. 그게 좋았다. 칭찬. 부정으로 에워싼 트라우마가 서서히 녹아들었다. 아무리 나 스스로를 칭찬하고 긍정적으로 생각을 하려고 해도 되지 않았는데 주변 사람들의 말을 통해 바뀌었다.
얼굴을 마주 봐도 아무렇지 않게 되었다. 눈을 쳐다보면서 다시 대화를 할 수가 있었고 불안하지도 않았다. 피부로 인해 생긴 트라우마가 지금은 오히려 자신을 가꾸는 계기가 되었다. 남들보다 더 관리하고 신경 쓰다 보니 어려 보인다는 말도 많이 듣게 되었다.
곱슬머리가 트라우마라면 헤어숍을 통해 머리를 가꾸면 된다. 여드름이 트라우마라면 남들보다 관리를 많이 하고 피부과에서 시술을 받으면 된다. 돈이 문제라면 물이라도 많이 마시면 된다. 키가 작은 게 트라우마라면 운동을 통해 몸을 관리하고 패션 공부를 통해 본인에게 맞는 스타일을 통해 자존감을 높이면 된다. 말은 참 쉽지 않은가? 그렇다고 이겨내려는 행동 없이 남들을 피해 숨어 다니거나 약에 의존을 하는 것들이 더 비참할 것이다.
극복하지 못하는 트라우마는 없다. 극복하지 못하게 하는 생각만 존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