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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달 Jun 01. 2022

이별은 만남이란 전제가 존재하기에_1편

연애 수필집

몇 달 전 그녀에게 DM이 왔었다. 3년 만인가.

그리고 더 이상 연락하지 말라고 했다.

3년을 사랑한 그녀가 3년 만에 연락이 오고 30일 뒤에 그녀를 정리했다.




성인이 되었을 때는 물론 그전부터 나는 연애에 관심이 없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성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고 할 수 있다. 남자가 어떻게 이성에 관심이 없을 수가 있냐고? 예쁘다, 귀엽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이성에 반응하는 마음은 동일하게 있었다. 하지만 저 여자를 가지고 싶다, 사귀고 싶다, 고백하고 싶다, 이런 생각까지는 들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연애를 해본 적이 있어야지. 사랑으로 얻는 행복을 알지 못하니 욕심이 없었던 거다.


21살이 되고 낙엽이 떨어질 때 즈음 문득 돈을 벌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이 필요했던 거는 아니지만 남는 시간에 일이라도 하면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처음으로 인터넷을 찾아보며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시작했고 시내에 있는 초밥뷔페에 지원했다. 시급은 5,580원. 그리고 며칠 뒤에 문자가 왔다.



[OO월 OO일 OO시까지 이력서 작성해서 가게로 면접 보러 오세요.]


홀 알바로 일하게 됐다. 규모가 있는 가게라 일하는 직원들이 많았다. 주방에서 일하는 분들은 나이가 있어 보였고 나처럼 홀 쪽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전부 나이가 어렸다. 나와 비슷하거나 더 어린 사람들도 있었다. 처음으로 해보는 아르바이트라 긴장을 많이 했다. 혼나지는 않을까, 실수하지는 않을까.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어려움은 없었고 오히려 매니저에게 칭찬을 들으며 근무를 했다.


그로부터 2주 뒤에 나와 같은 시간대에 새로운 여자 아르바이트생이 들어왔다.


드라마에서 카페나 주방에서 일을 하는 장면이 나오면 여주인공은 늘 사고를 치고 혼나는 게 일상이다. 혼자 시무룩해져서 힘들어하고 있으면 같이 일하는 남자 동료들이 곁으로 와서 위로를 해준다. 드라마 속 남자들이 그러는 이유는 단순하다. 여주가 일을 못하더라도 이쁘니까. 위로는 조연들에게 받고 결국 남주와 눈이 맞아 사랑을 한다. 이런 뻔한 클리셰 같으니라고.


어딜 가든 일을 못하는 사람은 존재한다. 보고 있으면 하루에 한 번씩은 꼭 혼나는 사람. 그래서 눈길이 가고 관심 가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새로 들어온 여자 아르바이트생이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늘 혼나고 있다. 얼굴만 봐도 쉽게 상처받을 사람처럼 생겼다. 그만큼 순수해 보였다. 괜찮으세요,라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오지랖 부리는 거 같아 매번 속으로 삼켰다. 어차피 그녀는 이뻐서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챙겨줄 거니까 신경 쓰지 않았다.


홀 알바의 주된 일은 음식이 놓여있는 테이블을 깨끗이 하고 음료나 아이스크림을 채우기도 하며 손님이 먹고 간 자리를 치우기도 한다. 점심시간에 손님이 몰리면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렇게 정신없이 일을 하다 보면 어느새 시간은 오후 3시를 가리키고 있다.


하루는 그녀와 안쪽에 위치한 테이블을 정리하고 있었다. 접시를 치우고 음식물을 모아서 같이 버리고 있는데 식탁 아래에 검은색 봉지가 눈에 띄었다. 아줌마들이 쓰레기를 모아놓았나, 하고 봉지를 풀어봤는데 코를 자극하는 냄새가 풍겨져 나왔다. 자세히 보니 아기 기저귀가 들어있었고 황당한 나머지 다른 테이블을 치우고 있던 그녀에게 말했다.


"이거 보셨어요?"

"이게 뭔가요?"

"아기 기저귀네요···."

"헐, 세상에 이런 사람도 다 있네요···."


지금까지 서로 인사한 거 빼고는 이야기를 나눠본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양심 없이 쓰레기를 두고 간 사람들 덕분에 대화할 수 있는 명분이 생겨서 기분은 좋았다. 우리의 대화는 짧았지만 설렘은 길었다.




오후 5시가 되면 마감조 사람들과 인사를 하며 오픈조는 퇴근을 한다. 초밥뷔페는 5층에 위치해서 운동한다는 명분으로 계단으로 내려가지 않는 이상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야 한다. 퇴근이 같은 그녀와 항상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1층으로 내려가는 잠깐의 시간은 어색한 침묵만 흘렀다.


밖으로 나왔다. 가는 길이 달라서 인사를 하고 그녀 쪽을 바라보면 그녀는 어떤 남자랑 같이 가고 있다. 어제도, 이틀 전에도 똑같은 사람인 걸 보니 남자 친구인가 보다. 하긴 이쁘장하게 생겼는데 남자 친구가 없는 게 이상하지.


그녀가 남자 친구가 있든 없든 달라지는 건 없었다. 원래부터 나는 연애에 관심 없었으니까. 신경 쓰지도 않았다. 그렇게 2주가 흘렀고 어느 날부터 그녀를 보니 혼자서 집에 가기 시작했다.



탈의실은 매장 위층에 있다. 옷을 갈아입고 나와 계단을 내려가던 중 같이 일하고 친하게 지내고 싶은데 번호 정도는 물어봐도 되지 않을까? 어차피 일하면서 계속 볼 사이고 문제가 생기면 연락 정도는 할 수 있으니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에이 됐다, 물어보지 말자. 아니, 그녀가 1분 안에 탈의실에서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러 간다면 물어보자. 근데 번호 달라는 말을 어떻게 하지? 에이 몰라, 일단 말이나 해봐야겠다.


1분을 기다렸다. 1분이 지난다면 나는 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갈 것이다. 그녀의 번호는 굳이 필요 없으니 1분이 지나도 상관없다. 아니지. 그래도 마음먹은 김에 얼른 내려왔으면 좋겠다. 어? 내려온다···! 그녀에게 다가갔다.


"저기.. 너 휴대폰 번호가 뭐야?"

"아, 제 번호요?"


말했다. 이제 엎질러졌으니 다시 주워 담기는 불가능하다. 왜 떨리지? 남자 친구도 있는 사람인데? 그래도 선뜻 주는 걸 보니 이 아이도 나와 친하게 지내고 싶었나?


"여기 제 번호예요!"

"고마워, 이건 내 번호고 심심하면 연락해도 돼. 진짜로."


방금 멘트는 거지 같았다. 심심하면 연락해도 된다니. 그래도 번호를 교환했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고 그녀는 남자 친구와 함께 멀어져 갔다. 등을 마주한 채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길을 걸으며 생각 없이 건물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롯데리아 벽면에 신메뉴가 나왔다는 홍보물이 붙여져 있다. '모짜렐라 인 더 버거'? 맛있겠네, 나중에 먹으러 가야겠다.



[아아, 저 심심해요!!]


집에 도착하니 푸른 달이 나를 맞이해주었다. 방 안에서 휴대폰을 하고 있는데 그녀에게서 카톡이 왔다. 심심하다고? 밀당이고 뭐고 없이 바로 읽었다. 심심하다는데 놀아줄 사람이 없다고 한다. 그래, 카톡 정도는 할 수 있지. 대화가 끊기지 않고 잘 자, 라는 말과 함께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녀와의 첫 연락이자 첫 설렘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밖을 나와보니 비가 내리고 있다. 다행히 출근하기 전에 미리 날씨를 확인해서 우산을 챙겨 왔다. 우산을 펴고 가려는 순간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오빠, 같이 가요!"


그녀의 목소리였다. 우산을 못 가져왔다고 같이 쓰자고 한다. 원래 낯가림이 없는 아이였나?


"퇴근했는데 이제 뭐하세요?"

"나? 오늘 롯데리아에 새로 출시한 햄버거 먹어보려고."

"아, 진짜요? 저도 같이 갈래요!"


갑작스러운 동행이었지만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이유가 있어도 거절하진 않았을 거다. 롯데리아에 도착했다. 모짜렐라 인 더 버거 세트 두 개를 주문하고 나란히 마주 앉아 먹었다. 이 아이는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남자 친구가 있는데 나랑 사이좋게 햄버거를 먹어도 되려나? 감자튀김을 한 곳으로 모아 웃으며 나눠먹어도 되려나? 문제가 생겨도 그들만의 문제겠지. 신경 쓰지 말자.


지잉- 지잉-, 진동이 울렸다. 그녀의 휴대폰에서 나는 소리였다. 그녀는 발신자를 확인한 뒤 전화를 받았다. 


"응, 나 지금 ○오빠랑 롯데리아에서 햄버거 먹고 있어. 아, 같이 먹자고?"


그녀는 나와 눈빛 교환을 시도했다. 와도 상관없다는 제스처와 함께 눈빛을 보내고 그녀는 '그래, 롯데리아로 와.'라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남자 친구인가? 그녀에게 물어보니 우리와 같은 시간대에 일하고 있는 남자애라고 한다. 이번에는 갑작스러운 합석이 되었다.


"안녕하세요, 저도 배고파서 햄버거 먹으러 왔어요."


마치 오해하지 말라는 듯한 말투로 말한 것 같았지만 사람은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감각이 있다. 예를 들면 이 사람은 햄버거가 먹고 싶어서 온 게 아니라는 거라던가 나를 견제하려고 일부로 찾아왔다던가. 확실했다. 이 남자애는 그녀를 좋아하고 있다. 그렇지 않은 이상 내가 불편함을 느낄 리가 없지.


햄버거를 먹고 그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말 햄버거만 먹으러 온 건가. 아니면 나를 굳이 견제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했나. 나도 꽤 매력적으로 생겼는데···. 남자애가 밖으로 나간 걸 확인하고 나서 그녀가 말했다. 일이 끝나면 남자애가 집도 데려다주고 연락도 자주 온다고. 역시 그녀를 좋아하고 있었군.


롯데리아에서 나와 그녀가 버스를 탈 때까지 기다렸다. 우산은 하나니깐. 근데 남자 친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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