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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달 May 19. 2022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나를 좋아한다

사는 이야기

매니저로 일하고 있을 때 키가 작은 여자 아르바이트생(A라고 부르겠다)이 있었다. 노란색 머리의 곱슬기가 있었던 A는 알고 보니 나와 동갑내기 었다. 목소리가 유독 튀었던 A는 말하는 것을 좋아해서 여러 명이 말하고 있어도 그녀의 목소리만 귀에 들릴 정도였다. 친화력도 남달라서 다른 아르바이트생들과도 쉽게 말을 놓고 친해지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보다 일을 잘했다. 업무 처리 능력이 좋아서 센스가 있었고 실수하는 사람에게는 나 대신 잔소리도 해줬다. 물론 A가 실수를 하게 되면 나도 잔소리를 하지만 그래도 A 덕분에 근무자들을 관리하기가 수월했다. 그러던 어느 날 A가 고백을 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술집에 갔던 적이 있다. A를 포함한 4명이 자리에 앉는데 세상에는 암묵적인 규칙(두 번째로 들어온 사람은 처음 앉은 사람 맞은편에 앉아야 하는 것)이 있다. 술집에 들어올 때 내가 먼저 들어가서 앉게 되었고 당연히 내 뒤에 사람은 맞은편에 앉겠지,라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A는 규칙을 어기고 내 옆에 앉았다.

 

A가 나한테 대하는 행동이 달라졌다는 것은 예전부터 느꼈다. 오해겠지,라고 생각을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오해는 사실이 되었다. 사람은 술이 들어가면 본능에 충실해진다. 맨 정신으로는 시도하지 못했던 행동들을 비로소 술과 융합해야 저지른다. A는 스마트워치를 착용하고 있던 내 손목을 보더니 신기한 듯 터치를 해보면서 구경을 하고 있었다. 신기할 수 있지,라고 생각하고 있던 와중에 A가 갑자기 내 손을 움켜 잡았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맞은편 동료들은 웃음을 참으며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A가 무슨 행동을 하고 있나 봤다. 스마트워치를 보니 심박수가 측정되고 있었다. A는 자신과 손을 잡으면 심박수가 얼마나 올라가는지 스마트워치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자신과 손을 잡으면 심박수가 올라갈 것이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했나 보다.


"10번만 만나줘요. 그 뒤에 결정해줘요."


그날 이후로 A는 지난번보다 더 적극적으로 변했다. 우회적인 언어의 사용 없이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직접적인 단어와 문장을 통해 좋아한다고 표현을 했고 나는 A의 마음을 거절했다. 전부터 계속 거절을 했지만 포기를 모르는 사람이었다. 나를 좋아해 주는 건 정말 고마웠다. 고맙지만 마음은 받아줄 수가 없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니까.




이성을 만나다 보면 본능적으로 나와 좋은 흐름으로 이어질지 그저 지나가는 한 사람으로 될지 알 수 있다. 간혹 본능의 오차가 생기긴 하지만 본능이 맞을 때가 더 많다. 이러한 본능이 매섭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중요한 결단력을 주기도 한다. 난 A를 처음 봤을 때부터 알았다. 어차피 내 인생을 스쳐갈 한 사람이라는 것을. 아마 내가 좋아했던 사람도 나를 그렇게 생각했겠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나를 좋아하지 않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내가 좋아하지 않는다. 누군가 법으로 정해놓은 것처럼 통용되고 있다. 흔히 이것을 짝사랑이라고 부른다. 나도 누군가를 좋아해 봤지만 그 사람은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리고 누군가 나를 좋아해 줬지만 내가 좋아하지 않았다. 


사랑을 시작한 이들을 보면 부럽다. 세상의 법칙처럼 통용되고 있는 규칙을 깨고 서로를 만났으니 말이다. 이래서 사랑은 타이밍이라는 말이 존재하는가 보다. 서로가 서로를 좋아할 타이밍.



*글의 편의성을 위해 1인칭 시점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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