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태솔로
"이 여자분은 누구야? 나 소개시켜 주면 안 돼?"
"얘를 소개해달라고?"
"응, 안 돼?"
"아니, 안 되는 건 아닌데. 그럼 나중에 같이 밥 먹을 때 오빠도 불러줄게."
26년 동안 연애를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나는 우연히 아는 동생의 프로필 사진을 보다가 함께 찍혀있던 여자가 눈에 띄었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끌렸고 그 사람에 대해 알고 싶었다. 친구들은 여자애를 소개받는다고 하자 탐탁지 않은 시선으로 쳐다봤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비록 내가 보는 눈이 없더라도 일단 만나보고 싶었다.
지금껏 공부만 하며 살아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다른 남자들에 비해 키도 작고 평범하게 생겼으니 학벌이라도 좋아야 했다. 성격이 좋다고도 할 수 없다. 우유부단하고 좌고우면 해서 놀림감 되기 딱 좋은 성격이었으니깐.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미워졌다. 거울 속에 내 모습은 자신감을 잃게 하고 타인의 시선은 자존감을 갉아먹는다. 변화가 필요했고 그래서 사랑을 하고 싶었다.
소개받았던 여자와 같이 밥을 먹으며 이상형을 물어봤다. 키와 외모는 신경 쓰지 않지만 성격이 좋고 말이 잘 통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 뒤로 우리는 자주 만났고 썸을 탔다. 분위기가 좋았다. 짜릿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에 전율이 흐르고, 마치 한 번도 깨지 못한 게임을 깬 듯한 느낌이었다.
"우리 사귀는 거야?"
4살 차이. 궁합도 안 본다는 우리는 연상 연하 커플이 됐다. 처음이다. 연애도, 사랑도, 곁에 함께 있어주는 사람과의 추억도. 아버지한테 자전거 타는 법을 처음 배웠을 때처럼 모든 것들이 새로웠다. 친구의 연애를 부러워하면서 지냈는데 이젠 나도 커플들이 하는 흔한 데이트를 여자 친구와 함께 하니깐 행복했다. 비록 데이트 비용은 오로지 내 몫이었지만 말이다.
벌써 일 년을 함께 했다. 처음 사귀는 거치곤 오래 사귀지 않았는가? 나의 부족한 부분까지 사랑해주는 여자 친구는 나와 꼭 결혼하겠다고 한다. 나도 이 여자와 결혼할 것이다. 사랑이란 감정을 여자 친구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으니 결혼의 감정도 지금의 여자 친구를 통해 알아가고 싶었다. 어딜 가도 나를 사랑해 줄 여자는 이 사람밖에 없을 것이다. 서로의 사랑을 느꼈고 우리의 추억이 증명을 해준다. 영원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여자 친구의 행동이 이상해졌다.
"이 남자 누구야?"
바람을 폈다. 아니, 이별만 안 했지 환승 연애를 당했다. 상대는 여자 친구와 같이 일하는 남자애였다. 전부터 어떤 남자와 단 둘이 만난다는 건 알고 있었다. 이해했다. 내가 공부하느라 시간이 없어 만나지 못하니 친구랑 놀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진심으로 나를 사랑한다고 했고 나밖에 없다고 했으니까.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지? 배신감이 몰려왔다.
"이렇게 된 거 우리 헤어지자."
그녀는 당당했다. 왜지? 당당할 거면 네가 바람피운 이유라도 알려줬으면 좋겠다. 왜 나를 버렸는지, 왜 내가 아니고 저 남자인지. 이제 나를 사랑해 줄 사람이 없는데 난 어떻게 지내라는 거지? 헤어진 후 그녀에게 듣고 싶었던 말들을 정리해서 톡을 보냈다. 답장은 없었고 이유도 들을 수 없었다. 그녀는 단지 새로운 남자에게 끌렸을 뿐, 그뿐이었다.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너에게 썼던 감정, 너를 위해 썼던 돈, 너만을 위해 썼던 시간, 모든 게 후회된다. 술을 마시면 눈물밖에 안 나온다. 그때의 감정마저 거짓이었을까 봐. 난 모든 시간들이 진심이었는데. 억울해서 미련이 남는다. 이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똑같이 그리워하고 있다. 술을 마시지 않아도 추억이 날 괴롭힌다. 이별이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랑을 한 번이라도 겪었던 사람이라면 사랑이란 감정이 인생에서 얼마나 대단한 비중이 있는지 알고 있다. 처음으로 사랑을 해보니 알겠다. 존재만으로 힘이 된다는 사실을. 그리고 처음으로 이별을 해보니 알겠다. 생각만으로 아플 수 있다는 사실을.
*글의 편의성을 위해 1인칭 시점으로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