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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노아 Noah Jang Dec 19. 2023

마젠타와 오키드

극장의 반구형 지붕은 스테인드 글라스로 만들어져 있었다. 검은 하늘에 총천연색 빛이 찬란하게 퍼졌다. 가까이 가보니 규모가 상당했다. 대지진 때도 파괴되지 않은 아주 오래된 건물 같았다. 옐로는 언젠가 책에서 보았던 아름다운 옛 성당들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건물 꼭대기에는 십자가로 보이는 부러진 금빛 기둥이 남아 있었는데, 이젠 무지개색 애드벌룬이 매달려 흔들리고 있었다. 거대한 천막 두 채와 트레일러 세 대, 버스 두 대, 낡은 자동차 여러 대가 건물 뒤편 공터에 있었다. 주차장에는 '마지막 호텔'처럼 고급 차들이 주차되어 있고 중무장한 보안요원들이 커다란 개를 끌고 돌아다녔다. 끝이 보이지 않게 높이 자란 침엽수가 건물 전체를 요새처럼 둘러싸고 있었다.


옐로는 레드 카펫이 깔린 계단을 올라가 극장 입구로 갔다. 매표소 안의 두 여자가 바짝 붙어 앉아 수다를 떨고 있었다. 십 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쌍둥이였다. 극장 문은 활짝 열려 있고 안쪽에 붉은 벨벳 커튼이 내려져 있었다. 입구 양쪽에 하얀 정장을 입고 하얀 장갑을 낀 안내요원 두 명이 서 있었다. 한 사람은 마르고 키가 컸고 다른 한 사람은 작고 뚱뚱했다. 키가 큰 안내요원이 옐로를 보더니 저리 가라는 손짓을 했다.


극장 입구 옆 광고판에 '오늘의 무지개쇼'가 소개된 포스터 네 장이 걸려 있었다. 옐로는 바이올렛도 잘 볼 수 있도록 몸을 옆으로 돌리고 들여다보았다. 첫 번째 포스터에는 검은 천으로 눈을 가린 여자가 허공에 두 손을 내밀고 있는 사진이 인쇄되어 있었다. 광고 문구는 '눈이 달린 손'이었다. 두 번째는 털옷을 입고 채찍을 든 소녀가 수사자의 등에 앉아 있는 사진이었다. ‘고릴라의 딸’이라고 적혀 있었다. 세 번째와 마지막은 화려한 장식체로 '특별 공연'이라고만 쓰여 있었다. 공연은 하루 2회, 90분, 오후 7시와 9시에 시작되었다.


옐로는 매표소 앞으로 갔다. 쌍둥이는 데칼코마니처럼 똑같이 생겼는데, 한 여자만 오른쪽 눈 밑에 바코드 같은 붉은 문신이 있었다. 쌍둥이가 옐로를 힐끔 보더니 모른척하고 계속 대화를 나눴다. 가슴에 단 명찰을 보니 바코드의 이름은 마젠타였고 다른 여자는 오키드였다.

"안녕하세요."

옐로가 인사했다.  

“9시 표 끊을 거야?”

쌍둥이가 동시에 말했다. 매표소 벽에 걸린 시계가 8시 22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옐로는 주머니에서 작게 접은 광고지를 꺼냈다. 쌍둥이가 목을 길게 빼고 옐로를 구석구석 훑어보았다.

“등에 달린 건 뭐야? 동생이야?”

마젠타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바이올렛이 몸을 움츠렸다.

"엄청 비싼데 돈 있어?"

오키드가 물었다.

“돈 없으면 꺼져.”

쌍둥이가 머뭇거리는 옐로에게 소리쳤다.


그때 극장 앞에 검은색 자동차가 정차했다. 뒷좌석에서 검은색 연미복을 입은 젊은 남자와 금빛 드레스에 검은 담비 목도리를 두른 50대 여자가 내렸다. 그들은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계단을 올라왔다. 여자의 하이힐이 너무 높아서 한 계단 한 계단 조심하느라 시간이 꽤 걸렸다.

"늙다리 남친이 또 바뀌었네."

마젠타가 콧방귀를 뀌었다.

"와! 대박! 잘생겼다."

오키드가 남자를 훔쳐보며 감탄했다.

그들이 매표소 앞을 지나가자 쌍둥이는 공손하게 눈을 내리깔고 고개를 숙였다. 옐로는 여자가 어깨에 두른 담비가 눈을 깜박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포대기 안의 페루가 머리를 내밀고 담비를 향해 캬! 소리를 냈다. 담비도 위협하듯 입을 벌렸는데, 이빨이 하나도 없고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자세히 보니 발톱도 없었다. 옐로의 존재를 알아챈 여자가 기겁하며 비틀거렸다.

"꺼져! 더러운 것들!"
남자가 옐로의 허벅지를 구둣발로 세게 찼다.

"세상에! 이게 무슨 냄새람!"

여자가 코를 막으며 기절할 듯 눈을 뒤집었다.

반쯤 쓰러진 여자를 얼싸안은 남자는 무게에 눌려 다리를 후들거리며 지나갔다.


그들이 극장 안으로 사라지자 쌍둥이가 여자의 몸짓을 흉내 내며 코를 막았다.

"세상에! 이게 무슨 냄새람!"

오키드가 말했다.

"표 안 살 거면 꺼져!"

마젠타가 소리쳤다.

옐로가 광고지를 매표소 안으로 밀어 넣었다. 짜증 난 표정으로 광고지를 들여다보던 쌍둥이가 서로 마주 보고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아~ 오디션 보러 왔구나."

쌍둥이가 동시에 말했다.

"너 노래 잘해?"

마젠타가 짐짓 진지하게 물었다.

"얘가 잘해."

옐로가 몸을 돌려 바이올렛을 보여주었다.

푸하하하! 쌍둥이가 한참을 웃어댔다.

"잠깐만 기다려."

마젠타가 웃음을 꾹 참으며 무전기를 켰다.

오키드와 한 문장씩 번갈아 말하며 누군가에게 상황을 전했다.


금장 앵커가 달린 청회색 베레모를 쓴 남자가 극장에서 나왔다. 스물 후반 정도로 보였고 키가 크고 수영 선수처럼 어깨가 넓었다. 그는 양손을 청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옐로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볼이 발그레해진 오키드가 그를 쳐다보며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마젠타가 어깨로 오키드를 툭툭 치며 키득거렸다. 그는 짜증 난 표정으로 바닥에 침을 퉤 뱉고는 매표소로 와서 창을 세게 두드렸다.

"장난쳐? 가수 지망생이 어딨어?"

"진정해, 그레이."

마젠타가 입을 비죽거렸다.

"죽고 싶어?"

그레이가 주먹을 쳐들었다.

"저기 있잖아."

오키드가 옐로를 가리켰다. 그레이는 인상을 팍 쓰고 옐로를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갑자기 가면에 손을 뻗었다. 옐로가 훌쩍 뛰어 물러섰다. 그레이가 피식 웃고는 바닥에 침을 탁 뱉었다.

"걔 말고 뒤에 있는 애야!"

마젠타가 말했다.

바이올렛이 등 뒤에서 눈만 빼꼼 내밀어 그레이를 쳐다봤다. 그가 다가가려고 하자 바이올렛은 옐로의 등에 얼굴을 숨겼다. 그레이가 잠시 생각하다 베레모를 고쳐 썼다.

“따라와.”

그레이가 손가락을 까딱하고 극장 후문 쪽으로 향했다.

쌍둥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로 쳐다보았다.

"그레이! 얘들 쫓아버려!"

마젠타가 소리쳤다.

그레이는 들은 척도 않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옐로는 주머니 속에 있는 총을 만져 보았다. 시네러스는 왜 이게 필요할 거라고 했을까. 옐로는 숨을 한번 크게 쉬고 그레이 뒤를 따랐다. 겁에 질린 바이올렛이 몸을 바르르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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