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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쌤 Dec 16. 2020

나의 죽음을 슬퍼해 줄 당신에게(만) 드리는 글

6.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기

"In case I don't see you.
Good afternoon,
Good evening,
and Good night."  

- 혹시라도 못 볼 수 있으니 미리 인사드리죠! 좋은 오후, 좋은 저녁, 그리고 좋은  보내세요!

(트루먼 버뱅크(짐 캐리), 트루먼 쇼 중에서)



  나는 내 병을 받아들이는 환자 생활의 첫 번째 행동을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으로 정했다. 그 구체적 실천으로 유서를 쓰기 시작했다. 이 글은 요즘까지 고치고, 또 고치는 글 중에 하나이다. 한 번은 쓴 내용을 모두 지우고 다시 써보기도 하고, 아예 새로운 내용을 쓰고 합쳐보기도 하는 그런 글이다. 그래서 유서라고 거창하게 쓰기보다는 내가 죽은 시점에서 남겨진 사람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적은, 편지라고 생각하고 쓰기 시작했다. 그래서 제목이 "나의 죽음을 슬퍼해 줄 당신에게(만) 드리는 글"이다.


나의 죽음을 슬퍼해 줄 당신에게(만) 드리는 글

  난 죽었습니다. 이 사실을 직시해 주세요. 나는, 죽었습니다. 죽기 직전도 아니고, 원인은 이미 많았으니까요. 백혈병이 주원인이 아니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사고였다면, 나만 죽는 사고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여럿 죽는 사고에 내가 끼어있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어떻게 죽었는지 모르지만, 당신은 알고 있으리라 짐작합니다. 내가 바랬던 건 집에서 조용히 자다가 삶을 마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니면 적어도 뭔가 뜻있게 죽고 싶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습니까? 나 괜찮게 죽었나요? 컴퓨터 키보드에 손도 못 댈 정도로 아프다 죽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내 삶은 어땠습니까? 괜찮은 삶이었나요? 가진 기억의 조각이 서로 다를 수밖에 없을 겁니다. 내 이야기를 모두 들은 사람은 한 명도 없거든요. 내 슬픈 이야기를 들었던 사람은 많겠지만 내가 기뻤던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기억에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항상 내 삶에는 어둠이 감돌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직접 만든 어둠이 7할이었으니까요.


  스스로 늪에 빠져드는 삶이었습니다. 내가 불편함을 감수하는 미련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나는 언제나 내가 편한 길을 택해왔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해왔고. 그래서 나를 욕하고 싶은 사람도 꽤 많을 거라고 짐작됩니다.


  아이들은 그래도 이 사실을 몰랐으면 합니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이라면, 나를 아는 아이들이라면 적어도 내 죽음을 지금 앎으로서 그 아이들이 흔들리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아이들은 지금 죽음을 알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죽음을 알았던 그때가 초등학교 5~6학년 때였기에 그걸 조금은 늦게 알아도 될 나이라는 것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아이들은 그것보다 더 가치 있는 것들을 알기에도 부족한 시기입니다. 삶의 즐거움을 알아야 하고, 꿈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시기입니다. 그냥 오랜 병가쯤으로 이야기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내가 끝까지 책임지지 못한 아이들에게 사과를 전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거창하게 시작했는데 여기까지라서. 요즘 조금 힘들었습니다, 사실.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은 많은데 해야 하는 일들이 하고 싶은 일을 잠식하고 있습니다. 할 일 들을 하고 나면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의욕이 바닥을 치고 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제가 하지 못한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늘 받고 있습니다. 뭐 언제는 안 그랬겠냐 싶지만은.


  제가 계속 고쳤다고 해서 거창한 글이 있을까 생각하셨겠지만, 뭐 별거 없습니다. 이게 사람 사는 거잖아요. 소소하게 살고 싶었습니다.


  제 오랜 소원이 지켜졌으려나 모르겠습니다. 죽기 전에 제 장례식을 미리 하는 거요. 여러분과 한 명 한 명 인사를 나누는 시간이 나에게 허락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랬으면 참 좋았겠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이 글로 인사를 갈음하겠습니다.


(이 사이에는 나의 얼마 되지 않는 돈에 관한 이야기가 들어있어 여기엔 굳이 쓰지 않았다.)


  사랑합니다. 모두들. 아니지, 사랑했어요. 안녕!


2015. 12. 02. 처음 쓰고, 2020. 12. 16. 마지막으로 고침.

여러분의 친구, 동료, 지인, 그리고 죄인이 보내는 마지막 편지.


 잠깐!

  참고로 걱정을 크게 하실 분들께 전하지만 나는 병을 알게 된 2015년 이후로 5년째 교사 생활을 잘하며 살고 있다.

  이 글은 내 삶이 힘들고 고될 때, 내가 앞으로 나아가는 방향성을 잃으려 할 때 이 글을 보고, 고치며 다시 내 방향성과 목표를 찾아가는 글이다. 절대 우울한 마음에, 삶을 포기하기 위해 쓴 글이 아니다.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직시함으로써, 나로 하여금 삶을 다시 돌아보게 하려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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