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미노 출발을 위한 순례자 여권 준비
그라나다에서 10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오후 1시경 세비야에 도착했다. 세비야는 '은의 길'이 시작되는 곳이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도보로 Via de la Plata 사무실로 직행해서 벨을 눌렀으나 묵묵부답이다. 그제야 일요일이라는 것을 알아채는 무딘 감각으로 1,000km라는 긴 순례길에 도전하다니 무모한 건 아닌가 하는 자책을 해 본다.
세비야의 순례자 전용 숙소 격인 Hostel Triana Backpackers에 체크인을 하면서 순례자 여권을 2유로를 주고 구입했다. 온라인으로 순례자 협회에 등록을 마치고, 이번에는 세비야 대성당에 가서 세요(스탬프)를 찍어주는 곳을 찾아 나섰다. 순례하듯 한 바퀴를 돌아 관람객들이 입장하는 남문에 가서 직원에게 세요를 받았다.
과달키비르 강가에 있는 황금의 탑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마침 일요일이라 강가에는 오후의 늘어진 햇빛을 즐기는 사람들로 붐빈다. 각자 앉거나 누워서 쉬기도 하고 산책을 즐기거나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이 꽤나 여유로워 보인다. 과달키비르 강은 한강에 비하면 강폭은 아주 좁은 편이나 유람선이 오가는 것으로 보아 수심은 꽤 깊어 보인다. 하기는 500년 전에 콜럼버스가 스페인 이사벨 여왕의 재정 지원을 받아 항해를 출발한 곳이 이 강 아니던가. 황금의 탑 앞에는 마젤란이 타고 세계 최초로 항해했다는 빅토리아 호(1519~1522)가 정박해 유람선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500주년을 맞이해 빅토리아호 관람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유료로 개방을 하고 있다.
강은 역사다. 긴 역사의 숨결을 간직하고 유유히 흐른다. 과달키비르 강은 콜럼버스의 의욕 넘치던 그 모습을 흘려보내지 않고 있으리라. 이사벨 여왕의 과감한 지원 결정에 힘을 얻어 신대륙 발견이라는 세기적인 성공을 하고 돌아온 콜럼버스의 모습도 기억하리라. 신대륙을 발견하고 돌아온 콜럼버스는 그리 환영받지 못했다. 시기와 질투로 사람들은 그를 맞이했다. 그 정도는 누가 못하겠어? 나도 할 수 있어! 하는 식이었다. '콜럼버스의 달걀'이란 말이 나오게 된 사연이다. 세비야 대성당 안에는 콜럼버스의 관이 있다. 바닥에 묻혀 있지 않고 공중에 부양되어 있다. 자신의 성공을 질투해 마지않던 이들에게 하도 시달려 결코 스페인 땅에 묻히기를 싫어한 그의 입장을 배려한 것이라고 한다. 이사벨 여왕의 콜럼버스 지원을 찬성했던 레온 왕과 카스티야 왕은 콜럼버스의 관을 앞에서 의기양양하게 받치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반대 의사를 보였던 아라곤 왕과 나바라 왕은 뒤에서 머리도 들지 못한 채 관을 떠받치고 있다.
한 사람의 성공과 실패는 결코 모든 사람이 떠안아야 하는 몫이 될 수도 있다는 역사의 교훈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