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고백, Me Amo

by 장석규

프랑스 길 6일 차 / 9월 13일(수), 맑음

로스 아르코스 ~ 로그로뇨 / 28.1km, 누적 거리 155.1km


Me Gusta, Me Gusta

Me Amo, Me Amo

Me Amo de Verdad

나는 내가 좋아, 그런 내가 좋아

나는 나를 사랑해, 나를 사랑해

그런 나를 정말 사랑해


이제 나는 나를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나를 업신여기고 비하했던 지난날을 청산하고 비로소 나 자신을 사랑하기로 다짐한다.


새벽 5시 30분, 알베르게 문을 열고 출발했다. 해가 뜨는 7시 30분까지 두 시간여 어둠 속을 걸었다. 배낭 깊숙이 넣어두었던 헤드램프를 꺼내 착용할까 망설이다가, 하늘에 총총한 별빛에만 의지한 채 걸었다. 광활한 대지에 퍼지는 미명에 길의 윤곽이 어슴푸레하게 드러났고, 나는 오롯이 감각에 의존해 나아갔다. 가끔 얼굴을 들어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무수한 별들이 아직 날이 밝기도 전에 홀로 걷는 나에게 집중하여 빛을 비춰주는 듯했다. '그렇지, 내가 굳이 날이 밝기 전 어두운데도 길을 나서는 이유가 바로 이런 순간 때문이지.' 별들의 안내를 받으며 걷는 것은 참으로 상쾌한 경험이다.

두 시간 만에 산솔(Sansol)에 도착해 바르에서 초콜릿 빵 한 개와 카페 콘 레체 한 잔으로 빈속을 채우고 곧장 다시 길을 나섰다. 산솔 마을을 지나 언덕에 오르니 동쪽 하늘에 해가 떠오른다. 스페인의 해는 우리나라보다 좀 느긋한지 8시 반이 지나서야 완전히 떠오르는 것 같았다.

오늘 지나온 길은 대체로 걷기에 수월한 편이었다. 오르막 내리막 경사도 심하지 않았고 길도 잘 정비되어 있어 헷갈리는 갈림길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어제보다 다리나 발 컨디션도 괜찮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나를 괴롭히던 근육통이 사라지고 발도 많이 편해졌다.

카미노 800km는 '자학의 길'일까, 아니면 '자애의 길'일까. 내가 다시 카미노에 가겠다고 했을 때, 아내와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 대부분이 말리는 편이었다. 평소에도 다리가 아프다고 하면서 왜 그 먼 길을 다시 가려 하느냐, 나이 들어 왜 무리하려 하느냐, 일부러 고행하려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들 모두 나를 위해 하는 말이었지만, 나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15년 전 무릎 연골판과 십자인대 이식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 점차 수술 효과가 떨어지는지 통증이 심해져서, 병원에 가면 인공 관절로 교체하는 것이 좋다고 권유할 정도였다. 그런 사정을 잘 아는 아내는 더욱 심하게 반대했다. 그때마다 나는 아내에게 늘 이렇게 말했다. "무릎이 아파서 죽는 일은 없어요. 다리가 아파서 걷지 못하면 기어서라도 가면 되잖아요.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결국 아내는 나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순례길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람이 걷는 프랑스 길만 해도 800km나 된다. 이 먼 거리를 한 달 이상 계속해서 걷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하루 평균 25km를 걷는다고 해도 30일이 넘게 걸리는 거리다. 단 하루 25km를 걷는 것도 쉽지 않은데, 한 달 넘게 쉬지 않고 매일 걸어야 도달하는 거리이니 수반되는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물론 개인차가 있긴 하지만, 발이 까이거나 물집이 잡혀 고생하는 것은 기본이다. 게다가 무거운 배낭을 짊어져야 하니 어깨와 허리 통증, 다리 근육통도 만만치 않다. 더불어 매일 잠자리와 물을 바꾸는 데서 오는 어려움도 극복해야 한다. 때로는 미끄러져 넘어지는 등 예기치 못한 사고를 당하기도 한다. 아무리 체력이 좋고 건강한 사람이라도 이러한 고통과 어려움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로그로뇨(Logroño)로 진입하는 길가에 작은 돌무덤이 하나 있었다. 그 위에 그려진 노란 화살표와 함께 누군가가 써넣은 글귀, ‘Love yourself’. 흔한 말이다. 하지만 오늘 하루 종일 걸으며 순례길을 걷는 것이 '자기 사랑'이냐, '자기 학대'냐 하는 것을 묵상했던 나에게는 정곡을 찌르는 한마디였다. 'Love yourself는 곧 Love myself가 아닌가.' '그래, 바로 나를 사랑하는 거야. 모든 것은 자기 사랑으로부터 시작되는 거지.' '갖은 고통이 따르는 순례길을 걷는 것은 자기 사랑의 행위이며, 진정 자기를 사랑해야만 이겨낼 수 있는 거야.' 이제부터 더욱 나를 사랑하기로 마음을 다진다.

그리고 고백했다. "장석규, 나는 너를 사랑한다. 사랑해. 석규야!" 마침 앞뒤로 아무도 없어서 큰 소리로 외쳤다. 하늘을 향해 두 팔 벌리고 감사 기도를 올렸다. 내 카미노의 노래 '주기도송'은 더욱 힘차게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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