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만남의 은혜

1일 차:2.24(월) 맑음, 기온 10~20도

by 장석규

Sevilla ~ Guillena 21.75km(부엔 카미노 앱 기준) + 호스텔에서 대성당까지 1.6km 23.35km


세비야 대성당 앞에서 간단히 기도를 올리고 8:20 경 순례길 출발, 오후 1시 30분경 기예나 Guillena에 도착해서 공립 알베르게에 체크인했다.


오늘 걸어온 길은 아주 평이한 길이었다. 세비야 시내를 벗어나 과달키비르 강을 건너면서는 각종 농작물을 재배하는 밭(감자밭)과 밀밭, 오렌지 농장과 올리브 농장 등을 지나는 길이었다. 한국에서 출발할 때는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날씨였는데 비해 여기서는 봄이 온 지 한참 지난 듯, 감자 싹이 곧 꽃을 피울 정도로 자랐는가 하면 푸르른 밀밭, 길가에는 노란 사랑초와 하얀 데이지가 꽃을 피워 장관을 이루었다. 기예 나를 5~6km 앞두고는 말과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목장이 있었다. 녀석들은 하얀 데이지와 노란 냉이 꽃밭에서 놀다가 풀과 꽃들을 뜯어먹다가 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이색적이었다.

오렌지 밭을 지나면서는 바닥에 떨어진 오렌지가 지천이어서 몇 개 주워서 먹었는데, 단맛이 꿀맛인 데다가 과즙도 줄줄 흐를 정도로 많아 갈증을 푸는 데 최고였다. 한국 마트에서 수입해다 파는 오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이 일품 맛이었다. 가을에만 두 차례 순례길을 걸었던 나는 이른 봄이라 길에서 얻어먹을 것을 기대하지 않았는데 맛있는 오렌지를 대하는 행운을 얻었다.


알베르게(Albergue Luz del Guillena)에 체크인을 했는데, 남자 직원이 자동차로 한참 떨어진 무니시팔(공립) 알베르게로 데려다준다. 무슨 경우인지 몰라 물어볼까 하다가 그냥 넘어갔다. 말도 잘 안 통하는 데다가 자꾸 따지려 들면 괜히 내 감정만 상할 것 같아 무슨 이유나 사정이 있겠지 하고 그냥 넘기기로 한 것이다.

자는 데만 15유로씩이나 받으면서 시설 치고는 아무리 무니시팔 알베르게라 해도 이 정도로 형편없는 곳이 없었다. 해당 지자체에서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와이파이도 없고, 부엌 설비도 빈약하고, 수도꼭지가 망가진 채 방치되어 있는 상태였다.


오는 길에 코스타리카 인 3명을 세비야 이사벨 다리를 통과며 수인사를 나누고, 다리를 건너자마자 그들은 아침식사를 하려는지 발으로 들어가고 나는 직행했다. 혼자서 15km를 걷는 동안 앞뒤로 순례자 가 한 명도 없이 혼자서 호젓하게 걸었다. 16km 지점 올리브 농장을 지날 즈음 뒤따라 오는 순례자가 보여 걸음을 늦추다가 만나 수인사를 나누고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걸어왔다. 이탈리아에서 온 로리아노 LORIANO( 62살)와 함께 알베르게 인근 레스토랑에서 '메누 델 디아'를 8.5유로에 점심식사를 한 뒤 슈퍼마켓에서 저녁과 내일 아침거리 장을 봤다. 바게트 빵 0.82유로, 이베리코 하몽과 치즈, 딸기 500g 등 총 13.5유로


이탈리아인 LORIANO는 구찌 숙녀화를 만들던 장인으로서 2년 전에 퇴직했다며 자기가 만든 작품들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LORIANO가 현역 시절 만든 작품 중 하나(핸드폰에서 캡처)

알베르게에서 만난 친구들과 저녁 식사를 같이 했다. 스위스에서 온 Klemens는 60살로 엔지니어 출신으로서 공식으로는 은퇴했으나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다고 자기소개를 했다. 보네이르 Bonaire에서 온 LOUIS는 60살로 키가 크고(190cm) 머리카락이 없어 빛났다. 네덜란드 령 보네이르 섬은 카리브해에 있는데,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라 몇 번이나 물어봐서 겨우 알게 되었다. 인구가 13,000명가량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에게 내가 몰라서 잘 알아듣지 못해 미안하다는 마음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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