칡넝쿨과 등나무가 얽히니

by 장석규

프랑스 길 17일 차 / 9월 24일(일), 맑음

만시야 데 라스 물라스 ~ 레온 / 18.8km, 누적 거리 457km


만시야 데 라스 물라스에서 레온으로 향하는 길. 전날까지 나를 괴롭히던 오른쪽 무릎 통증이 거짓말처럼 가벼워졌다. 멘소래담 마사지의 효험일까. 발바닥도 견딜 만했다. 몸이 가벼워지자 거짓말처럼 마음도 함께 날아갈 듯해졌다. 맑게 갠 하늘 아래,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오전 7시 25분, 나는 다시 길 위에 섰다.


가벼워진 발걸음과는 별개로,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무거운 짐이 있었다. 림프종으로 투병 중인 친구 아들의 소식이었다. 내 자식의 문제처럼 마음 졸이며 기도해온 시간들. 조혈 모세포 이식이라는 큰 산을 넘기 위해 항암 치료와 공여자 연결이 절실한 상황. 모든 것이 기적에 가까운 과정들이었다. '걱정하고 염려하는 시간에 기도하라'는 오래된 말씀이 귓가를 맴돌았다. 길 위에서 더욱 간절히 기도를 올려야 마땅했지만, 레온으로 가까워질수록 도시는 번잡해졌고 마음은 산란해졌다. 사방으로 뻗은 도로, 시끄러운 자동차 소리, 시야를 가리는 거대한 창고 건물들. 오로지 걷는 행위 자체에만 집중하며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부르고스를 지나 레온에 다다랐을 때, 길가에 서 있는 순례길 표지판들이 나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Camino de Santiago' 입간판들, 그 위에는 분명 'Castilla y León'이라고 적혀 있었을 테지만, 'Castilla'라는 글자는 페인트로 지워져 있거나 보기 흉한 가위표로 덧칠되어 있었다. 어떤 곳에는 'León sin Castilla'(카스티야 없는 레온), 'León solo'(오직 레온)라는 낙서까지 선명했다. 1970년대, 스페인 당국이 카스티야와 레온을 통합하여 하나의 자치주로 묶어버린 행정 개편에 대한 레온 사람들의 노골적인 반감이었다. 독자적인 정체성과 자부심이 강한 그들에게 통합은 자신들의 목소리와 문화를 무시당한 처사였으리라. 훼손된 채 방치된 표지판들을 보며 씁쓸함이 밀려왔다. '인간 사회 어디를 가든,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고 포용하는 일은 왜 이리도 어려운 것일까.' 길 위에서 마주한 도시의 흔적은 나에게 씁쓸한 질문을 던졌다.


레온의 중심가에 위치한 알베르게에 여장을 풀고, 잠시 숨을 돌린 뒤 대성당으로 향했다. 레온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특히 그 거대한 장미창은 아름다움의 극치였다. 색색의 빛이 성당 내부로 쏟아져 들어올 때, 세속의 번잡함은 잠시 잊혀졌다. 아쉽게도 가우디의 '카사 보티네스'는 외관만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알베르게로 돌아와 잠시 쉬다가 지친 발을 돌보기 위해 정원으로 나섰다. 벤치에 앉아 물집 잡힌 부위에 소독약을 바르는데, 옆에 세워진 자전거와 그 옆에 덩그러니 놓인 신발 한 짝이 눈에 띄었다. 별생각 없이 발을 치료하고 있는데, 한 순례자가 다가왔다. 그의 걸음걸이가 예사롭지 않았다. 힐끗 보니 그는 의족을 하고 있었다. 아, 자전거의 주인이었구나. 그가 나의 발을 보더니 물집에 좋은 패치가 있다며 가져다주겠다고 했다. 잠시 후, 그는 2층에서 내려와 패치 두 개를 내 손에 쥐여주었다. 그의 따뜻한 마음 씀씀이에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꼈다. "¿Muchas Gracias!" 스페인어로 감사 인사를 전하자, 그는 비로소 자신을 소개했다. 이스라엘 일라리오, 49세. 페루 장애인 사이클 국가대표 선수라고 했다. 스마트폰으로 보여주는 그의 방송 영상과 사진들 속에는 인간 승리의 역사가 담겨 있었다. 생장에서 출발하여 피레네 산맥을 넘어왔고, 오늘은 카리온에서 레온까지 무려 100km를 달렸다는 그의 말에 나는 절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당신이야말로 인간 승리의 표본입니다!" 나의 말에 그는 고맙다고 답했다. 오히려 내가 더 큰 감동과 고마움을 느꼈기에, 서로에게 '부엔 카미노!'를 외치며 우리는 짧지만 강렬했던 만남을 마무리했다. 그가 준 패치 덕분에 며칠간 편안하게 걸을 수 있었다. 길 위에서 만난 이름 모를 천사의 친절은, 복잡하게 얽힌 세상 속에서도 여전히 따뜻함과 연대가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증명하는 듯했다. 칡넝쿨과 등나무가 서로 얽혀 지탱하듯, 길 위의 순례자들은 그렇게 서로에게 기대어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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