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괜찮은 사람은 조건이 필요없다.
“알고 보면 괜찮은 사람”이라는 표현은 종종 우리가 누군가를 변호하거나 그 사람의 문제를 무마하려 할 때 사용된다. 특히 악명 높은 사람에 대해 말할 때, 이 표현은 마치 마법의 주문처럼 등장해 그의 행동을 합리화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하지만 이 말에는 묘한 모순과 불편함이 숨어 있다. 정말로 괜찮은 사람이란 무엇인가? '알고 보면'이라는 전제가 붙어야만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면, 그 사람의 행동은 왜 그다지도 많은 오해와 비판을 불러일으켰을까?
많은 경우, “알고 보면 괜찮은 사람”이라는 변명은 특정 인물의 명백한 악행이나 결점을 무시하려는 도구로 사용된다. 그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무례하게 굴거나, 사회적 기준을 어긴 행동을 했을 때, 이 말은 그저 그 모든 것을 덮어버리려는 얄팍한 시도처럼 들린다. 예를 들어, 어떤 상사가 직원들을 무례하게 대하면서도 사람들은 그를 두둔하며 "알고 보면 정말 잘 챙겨주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잘 챙겨주는 마음이 왜 굳이 몰래 숨어 있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겉으로 드러난 무례함은 많은 이들에게 상처를 주었고, 그 상처를 단지 "알고 보면"이라는 말로 위로할 수 있을까?
이 표현은 사실상 개인의 사적 관계나 특정한 맥락만으로 그 사람을 재평가하려는 시도다. 이런 접근은 공적인 영역에서 그가 저지른 문제들을 개인적인 '따뜻함'으로 치환하려는 위험을 안고 있다. 이는 마치 커다란 얼룩이 있는 옷을 가리기 위해 작은 브로치를 달아 놓고 "그래도 이 부분은 예쁘잖아"라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공적 영역에서의 책임은 사적인 인상보다 우선시되어야 하며, '알고 보면'이라는 말로 가벼이 넘길 수 없는 것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정말로 괜찮은 사람이라면, 굳이 '알고 보면'이라는 조건이 필요하지 않다. 사람들은 그의 행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그 사람의 진가를 알게 되고, 그 내면의 따뜻함을 느끼게 된다. 반면에 '알고 보면'이라는 말이 사용되는 상황에서는 대부분 그 사람이 남들에게 준 부정적인 인상을 무마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그러므로 '알고 보면 괜찮은 사람'이라는 말은 결국 누군가의 잘못을 정당화하거나 변명하려는 방식으로 사용되기 쉽다.
진정한 괜찮음은 숨겨져 있어야 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행동 속에서, 타인에게 주는 말과 태도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만약 누군가를 두고 "알고 보면 괜찮다"고 말해야 한다면, 어쩌면 그 사람이 진정으로 괜찮은 사람이 아니라, 단지 우리가 그를 더 용인하고 싶은 마음을 반영한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 진정한 평가란 그 사람의 전체적인 모습을 고려하는 것이며, '알고 보면'이라는 변명은 그 진실을 흐리게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