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가장 잘 어울리는 음식.
한 때 ‘팝콘’에 목숨을 걸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자른 버터 한 덩이에 팝콘 옥수수를 반 컵, 그리고 시즈닝을 3 티스푼 뿌려줍니다. 중불로 데우다가 파파팝 소리가 나면 약불로 줄이고 프라이팬을 열심히 흔들어 줍니다.
지금은 팬 안에 찬 증기를 빼면 더 맛있다는 걸 알지만 그때는 조금 눅눅한 팝콘을 먹었죠. 팝콘은 초등학교 4학년도 꽤 능숙하게 할 수 있는 요리로 꽤 괜찮습니다.
팝콘이 익숙해질 무렵에는 ‘감자튀김’을 만드는 법을 배웠습니다. 감자는 대충 썰면 됐고, 튀김기가 있어 감자튀김을 만드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길게 썬 감자에 전분을 묻혀 튀기면 생각보다 그럴듯한 감자튀김을 만들 수 있죠.
혼자서 먹는 감자튀김도 꽤 괜찮았고, 저는 그 이상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날 때부터 집돌이인 점도 그렇고, 내가 먹고 싶을 때 바로 만들어 먹을 수 있다는 게 좋았거든요. 혼자서 팝콘이나 감자튀김을 먹으며 영화를 보고 있으면 어느새 저녁시간이 되곤 했습니다.
무엇보다 어머니는 늘 팝콘과 감자, 식용유를 충분히 사다 두셨죠.
팝콘과 감자튀김을 좋아했지만 고등학생 때부터는 끊어야 했습니다. 진주 산골짜기에 있는 기숙사 딸린 고등학교에 가게 됐거든요. 학교에선 아침과 점심, 저녁이 모두 나왔고, 메뉴를 고민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렇게 건강해지는 건가 싶었죠. 하지만 다행히도 우리는 ‘배달의 민족’이었습니다. 기숙사 사감은 배고픈 고등학생들을 그냥 방치하지 않았습니다. 선택할 기회를 줬죠. 그냥 잘지 아니면 ‘치킨’을 먹을지 말입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밤에 기숙사에 방송이 나옵니다. “치킨을 먹고 싶은 사람은 조용히 사감실로”라고 말이죠. 그럼 치킨파티 대표 십 수명이 사감실로 갑니다. 그리고 치킨을 어디서 시킬지 정하고 돈을 걷죠. 1시간 정도를 기다리면 치킨을 먹을 수 있습니다.
사감은 큰걸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쿠폰을 가져가는 데 만족했죠. 밤마다 치킨을 먹겠다고 달려드는 사람이 못해도 40명은 넘었으니 사감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은 거래였을 겁니다.
학교가 외진 곳에 있어 인근에 배달이 가능한 곳이 몇 군데 없었고 저는 케첩맛이 강렬한 ‘또래오래 양념’을 좋아했죠.
스물다섯이 되고 본가에서 일을 하게 된 후로는 혼자 먹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물론 점심은 사무실에서 먹지만 ‘제대로 된 식사’라고 할 수 있는 저녁은 보통 혼자 먹었죠.
회식은 불편해서 최대한 멀리했습니다. 사람들은 회식에 나오지 않는 사람을 싫어했지만, 저는 그게 회식보다 나았습니다. 회식 때 매번 같은 얘기를 듣는 건 곤욕이었고, 처음에는 잘 되던 표정관리도 어려워졌거든요. 스무 살부터 시작한 군생활이 5년 차가 됐을 때는 아주 이골이 났죠.
덕분에 혼자서 이것저것 먹었습니다. 맛집을 찾아다니기도 했지만 결국은 집에서 혼자 치킨을 시켜 먹게 되더라고요. 그때도 늘 또래오래 양념을 시켜 먹었습니다. 고등학교 때만큼 맛은 없었지만 그 만한 게 없었거든요.
그리고 치킨을 시켜 먹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치킨은 맛있지만 몸에는 좋지 않습니다. 저는 주에 1번 이상은 치킨을 먹었고, 그 생활이 계속됐습니다. 몸이 불었고 결국 디스크를 눌렀죠. 운동을 많이 해서 괜찮을 줄 알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한 달을 누워있었습니다. 팝콘도 감자튀김도 치킨도 먹지 않는 시간이 흘렀죠. 어머니는 얘기하셨습니다. “이제 같이 밥 먹자”라고 말이죠. 그리고 저도 그 뒤로는 집에서 밥을 먹었습니다. 어머니는 할 줄 아시는 요리는 많지 않지만 제가 뭘 좋아하는지는 알고 계셨거든요. 또 제가 뭘 하고 다니는지 관심도 많으셨죠.
요즘엔 ‘원팬 파스타’를 즐겨합니다. 최근에 배우기도 했고, 프라이팬에 면이고 재료를 다 때려 넣으면 되거든요.
다진 마늘을 볶던 프라이팬에 우유와 물, 파스타 면을 넣고 12분간 졸여줍니다. 중간에 굴소스 한 스푼을 넣고, 고춧가루를 반 숟가락 정도 넣어도 괜찮죠. 당연히 고기는 들어갑니다.
요리가 다 될 때쯤에는 집사를 호출에 수저와 앞접시를 세팅하게 합니다. 냉장고에 차갑게 식혀둔 맥콜도 꺼내라고도 시키죠. 그리고 식탁에 마주 앉아 유튜브를 켜둡니다. 요즘엔 ‘스토브리그’를 보죠.
원팬 파스타는 꽤 괜찮은 요리입니다. 특히 꾸덕한 까르보나라를 한 젓가락 입에 넣고 굴릴 때면 팝콘이나 감자튀김 같은 건 생각도 나지 않거든요.
다만 집사는 면요리를 자주 하면 싫어할 겁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원팬 요리는 꽤 다양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