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감을 표현해 보자.
민애가 눈을 떴을 때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기시감. 말로는 형용하기 어려운 기분이다.
그 기시감은 출근을 하면서 더 확실해졌다. 5년 간 눈도 마주치지 않았던 1층 아주머니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을 때다. 내가 머쓱하게 고개를 숙이자. 아주머니는 미소를 짓더니 다시 자기 갈 길을 가셨다.
버스를 타면서 뭔가 달라졌다는 기시감이 더 확실해졌다. 버스가 바로 출발하지 않고 나를 기다려줬던 것. 그것도 15초나. 멀리서 내가 오는 모습을 봤던 걸까? 버스 기사 아저씨에게 “감사합니다”라고 했더니 “사는 게 다 그런 거죠. 저도 늦을 때 있었어요. 숨 좀 고르고 조심히 앉으세요.”라고.
출근했을 때는 더 가관이었다. 사람들이 출근하면서 눈에 보이는 작은 쓰레기를 주워 가는 게 아닌가. 그게 뭐 대단하냐 싶냐마는 일반적이지 않다. 그러고 보니 출근길에 클락션을 울리는 차량도 없었다.
문제 될 건 하나도 없지만 이상했다. 뉴스를 보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화해했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도 평화 협정을 체결했다는 뉴스가 나온다. 중국이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고 협력 관계가 되기로 했다는 소식과 함께.
세상이 미친 걸까, 아니면 내가 미친 걸까.
사무실 옆 책상에 앉은 김 부장은 커피를 마시며 오늘 처리할 업무리스트를 정리하고 있다.
김 부장이 민애를 쳐다본다. “민애씨, 왜 그렇게 놀라. 무슨 일 있어? 중요한 일 있으면 좀 쉬면서 해. 너무 일만 하는 것도 몸에 해로워. 사유는 내가 적당히 외근이라고 둘러댈게”
민애가 놀라서 김 부장을 쳐다본다. “부장님, 왜 그러세요. 아니, 내가 이상해진건가? 세상이 평화롭고 갈등이 없어진 것 같아서요. 아니, 부장님은 저한테 왜 그러세요. 왜 쉬라고 해요?”
김 부장이 민애에게 맥심 골드모카 1 봉지를 건넨다. “무언가 심경에 변화가 있었나? 난 어제랑 비슷한 것 같은데? 세상이야 원래 그랬잖아. 그리고 힘들면 쉴 수도 있지 놀라기는.”
민애는 어제 일을 곱씹어 본다. 분명 중국이 대만을 삼키겠다고 항공모함까지 동원하는 대대적인 군사훈련을 펼쳤고, 러시아는 노인까지 전쟁에 동원하겠다고 으름장을 놨었다. 불과 어제까지.
하지만 오늘은 아니다. ‘죽어도 회사에서 죽으라’ 던 김 부장이 쉬라고 한다. 무단결근 처리해 자르려는 속셈일까? 하지만 그의 얼굴은 누구보다 온화하다. 적어도 그의 미간에 평소의 주름은 보이지 않는다.
부장이 준 커피 마시며 옥상에서 바람 쐬는 민애. 풍경은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저 기시감만 들뿐이다. 부장은 그동안 열심히 한 거 아니까 조금은 여유를 가지라고 했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부장은 그렇게 말했다.
멀리서 바람이 분다. 적당한 냉기와 습기 그리고 물방울이 어우러진. 물방울이 떨어진다. 하늘은 맑다.
민애는 얼굴로 떨어지는 물방울을 닦으며 잠에서 깼다. 기시감은 없었다. 시계를 보니 오전 3시 20분. 민애는 창문을 닫고 다시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