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 복날(나를 충전시켜 주는 것들)
싱크대 하부장에서 파스타 통을 꺼내면 요리가 시작됩니다.
냉장고에서 마늘 5알과 파마산 가루, 버터 40g과 불닭소스, 케첩, 치즈 1장, 두유 1팩을, 냉동고에선 소분해 둔 대패삼겹살 120g을 꺼냅니다.
먼저 파스타쿠커에 링귀니면 80g, 소금 2티스푼을 넣고, 물을 1인분 선까지 담습니다. 전자레인지는 이제 8분 동안 일을 할 겁니다.
마늘은 꼭지를 잘라주고 편 모양으로 썰어줍니다. 바닥이 둥글기 때문에 처음 한 번은 그냥 자르고, 그다음 평평한 면을 바닥으로 해서 썰면 위험하지 않습니다.
다 썰었다면 얼마 전에 산 무코팅 알루미늄팬에 버터를 올리고 중불로 예열합니다. 버터 40g은 양이 꽤 많습니다. 기다립니다. 덩어리가 사라지고 누런 버터액이 프라이팬 바닥에 미끄러질 때까지. 집 안에는 버터 향이 그득합니다.
이제 약불로 줄이고 팬에 마늘을 넣고 튀기듯 굽고, 중불로 바꿔 대패삼겹살도 익혀줍니다. 삼겹살에 갈색빛이 올라왔다면 두유 1팩과 불닭소스 2스푼, 케첩 1스푼, 치즈 1장을 넣고 약불로 끓입니다.
전자레인지가 자기 일을 다했다고 벨을 울립니다. 행주를 활용해 쿠커를 프라이팬 옆으로 옮깁니다. 링귀니면은 쉽게 끊어지지 않으니 마음껏 집어 불닭소스와 두유, 치즈가 어우러지고 있는 팬으로 옮겨줍니다.
그리고 실리콘 주걱으로 열심히 저어줍니다. 소스를 졸일 때는 약불로 줄여야 팬이 타지 않습니다. 팬이 버터로 코팅된 덕분에 실리콘 주걱이 훑고 간 옆면은 깨끗해집니다. 눌어붙은 소스가 깨끗해지고 다시 눌어붙기를 반복합니다.
알루미늄팬의 가장 좋은 점은 매우 가볍다는 겁니다. 가끔 기분도 낼 겸 손목 스냅을 활용해 면을 뒤집어 줍니다. 이탈리아어로 ‘만테까레’라고 하는데 공기와 소스가 섞여 맛이 더 풍부하고 부드러워진답니다.
주걱으로 소스를 떴을 때 아래로 몇 방울씩 뚝뚝 떨어지고 있다면 불을 끄고 파마산 가루를 뿌려줍니다.
사이드 메뉴로는 양파 절임이 제격입니다. 채칼로 얇게 저민 양파 절임은 소스가 잘 베어 들어 아삭하면서도 산뜻한 식감이 일품입니다.
파스타가 완성되면 집사가 앞접시와 젓가락을 들고 제 앞으로 옵니다. 분명 저녁 생각 없다고 했지만 눈에는 무언가 결연한 의지가 보입니다. 그렇게 한 젓가락, 두 젓가락, 세 젓가락을 빼앗겼습니다.
집사는 파스타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해서 연애 때는 그 흔한 파스타집을 한 번도 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영원한 건 좀처럼 없는 법입니다.
여기서 쉬면 좋겠지만 요리는 설거지까지가 한 세트입니다.
볼에 물을 크게 한 컵 정도 받고 세제를 몇 번 펌핑해줍니다. 그리고 제 몫을 다한 숟가락, 포크, 주걱과 접시, 프라이팬에 뜨거운 물세례를 허락합니다. 물론 기름기가 흥건한 프라이팬은 가장 나중입니다.
뜨거운 물로 헹군 그릇을 중간중간 건조대로 옮기기 때문에 설거지가 끝날 때쯤이면 물기가 대부분 말라 있습니다. 그럼 남은 물기를 닦고 제자리에 둡니다.
다 끝났다면 이제 집사에게 다시 깨끗해진 주방을 자랑하고, 볼록해진 배를 두드리며 누워있으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