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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댁 고양이 Jul 28. 2024

책상을 치우면 깨끗해지는 건 책상뿐입니다.

주제 : 내 책상을 소개합니다.



‘깨끗한 책상’에 집착하기 시작한 건 미니멀라이프를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빈 책상에선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다’는 캐치프레이즈가 좋았습니다. 공감능력 부족으로 인생이 꼬여 뭐라도 붙잡을 게 필요했던 때, 아무것도 없는 책상이 정말로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게 해줄 것 같았습니다.


‘책상에 아무것도 두지 말자’고 마음먹은 지 이제 7년쯤 지났습니다. 문자 그대로 아무것도 없지는 않지만 나름 절충안을 찾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책상에도 그런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 


사진은 결혼할 때 산 원목 식탁입니다. 가로 160cm, 세로 70cm라 혼자서 쓰기에 엄청 넓진 않지만 아무것도 없다면 꽤 광활하게 느껴집니다. 또 상판도 다리도 꽤 두터워서 흔들림도 없습니다.


책상에는 노트북 모니터와 키보드, 매직 트랙패드가 있습니다. 또 가끔은 가방이나 잡동사니를 올려두기도 합니다.


가끔은 조그마한 화분을 올려둘까 생각도 하지만, 그렇게 하면 결국 너저분해질 것입니다. 현재 상태가 가장 적당한 것 같습니다.


 • 


누군가는 책상을 비워 인생이 잘 풀렸냐 묻습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깔끔해진 책상을 보면 답답함이 느껴지진 않지만 그렇다고 제가 갑자기 ‘쿨한 사람’이 된 것은 아니니까요.


책상을 처음으로 비운 건 원주 고향집에서였습니다. 스탠드를 제외하고 책상 위를 다 치웠죠. 안 나오는 펜과 문구류, 어디서 샀는지도 모를 기념품까지.


뿌듯했습니다. 책상 치우는 게 뭐 대단하냐 싶기도 하지만, 제 의지로 그렇게 완벽하게 컨트롤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으니까요. 아무것도 없는 책상은 아무것도 없기에 어질러질 여지도 없습니다. 앞으로 그 상태를 유지하는 건 어렵지 않았고요.


세상도 깔끔한 책상처럼 정리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깔끔해진 건 책상이었지 제가 아니었습니다.


 • 


책상을 치웠다는 만족감은 생각보다 작지 않습니다. 그 정복감을 설명하자면 ‘인생도 내 손 안에 있다’는 기분이죠.


그래서였을까요?


오히려 자신감에 차서 일을 그르쳤습니다. 주장이 강하고 고집이 세며, 남의 말을 듣지 않는 성격이 더욱 두드러졌습니다.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다고 합니다. 바로 제가 그랬습니다. 세상에 큰 피해를 주진 않았지만, 제 인생 하나를 망치기엔 충분했습니다. 많은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다행이라면 책상은 여전히 깨끗했습니다.


 • 


‘작은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고 하죠.


시간이 지나면서 저도 책상 위에 다른 물건을 허락하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가방이, 모니터가, 키보드가 올라왔죠. 그 전에는 모두 트롤리나 서랍장에 뒀습니다.


무언가가 늘어나는 책상처럼 저도 다른 이들을 인생에 들이는 법을 배우게 됐습니다. 따뜻하지만 표현에 인색한 사람들도 인생에 들이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미니멀’을 지향하고 있습니다만 지금은 7년 전과는 조금 다른 느낌입니다. 그 느낌이 어떤 것인지 설명하려면 고민을 더 해야겠네요.


그래도 하나 말할 수 있는 게 있을 것 같습니다.


가끔은, 아주 가끔은 시간이 해결해 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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