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숙함에 대해(39)
가끔 군대 울타리 안으로 돌아가는 꿈을 꾼다. 부사관으로 근무했기에 재입사라는 표현이 맞겠다. 그 시절의 나는 지금보다 어렸고 의욕이 넘쳤다. 급여를 생각해도 그 안으로 다시 들어가는 게 마냥 나빠 보이진 않는다. 미숙했던 그때를 아름답게 포장한 걸까.
고등학교 3학년을 졸업하자마자 하사 계급장을 받았다. 내 동기들은 다 그랬다. 150명이 입학해 11명이 자퇴하고 139명이 부사관의 길에 발을 들였다. 전액 장학금에 매달 용돈까지 받으면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동기들은 다 머리가 좋은 편이었고, 나도 그런 줄 알았다. 다만 훈련소에서 교육받고 본격적으로 출근할 자대로 배치받게 되면서 아니라는 건 금방 알게 됐다.
가끔 사무실 키를 가지고 퇴근한다든가, 입 다물고 있으면 될 일을 공지해 고참에게 쌍욕을 먹는다든가, 다른 사무실에 가서 반장님 도장은 두고 온다든가 하는 식이다.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은 사고도 많이 친다’는 말로 스스로 위로했지만 익숙해지니 알겠더라. 그런 실수를 하는 게 나밖에 없다는 걸.
그때는 잘 몰랐다. 눈은 몸 밖의 상황만 볼 수 있으니까. 월 130 받는 하사의 물건을 달라고 조르는 20년 차 중사가 있었고, 짜증 난다며 일하다 말고 여군 휴게소에 숨어버리는 5살 많은 후임도 있었다. 실전과 이론은 다르다는 말을 참 싫어한다. 치졸하고 졸렬에서 이론에는 쓰기 민망한 일들이 많다는 의미니까.
당시는 그게 ‘남들도 다 그렇게 산다’는 개념이었다. 이제 보니 아니지만 그 울타리 안에 있으면 그게 당연해진다. 모두가 각자의 당연한 길을 걷는 것처럼, 그 길을 걸었다. 그러다 비상대기실에서 4시간을 내리 쿠키런을 하고 있던 45세 고참과 지내보니 알겠더라. 그 길이 걷고 싶지 않다는 걸.
7년하고 1개월 후 제대했다. 요가 강사를 하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엄마는 미쳤다고 했고, 선임들은 나갈 사람에게는 말을 아끼는 편이다. 엄마는 현실을 꽤 잘 보고, 엄마 말은 보통 맞다. 그 후로 집사를 만나기까지 요가를 포기했고, 헬스를 포기했고, 기자가 됐다.
10년 차 잡지사 기자였던 집사는 여느 고참과는 달랐다. 한없이 해이하고 여유롭다. 내가 일하는 날에도 쉬고, 쉬는 날에도 같이 쉰다. 마감은 언제 하나 싶지만 생각보다 사내 입지는 누구보다 탄탄했다. 이상했다. 대표 딸도 아닌 게 이럴 수 있나. 현실을 말하는 엄마와 달리 집사는 이리저리 떠도는 유목민 같았고, 팍팍한 산업부 기자 생활에 지친 나는 그 해이하고 여유로운 울타리 안에 들어가기로 했다.
울타리 안에 사람이 늘면서 가끔은 구멍이 나고 비가 샜다. 군에서 배운 원칙과 절차는 DNA에 새겨져 있었고, 한껏 해이했던 울타리를 입맛대로 손봤다. 집사는 외세의 침략과 신문물을 받아주면서도 유연하게 늘어났고, 5년이 지난 지금은 원칙과 절차를 지키면서도 해이한 사람이 됐다. 그 울타리 안에서 나도 변하긴 했다. 신문사를 그만두고 글 쓰고 요가를 하는 걸 보니.
언젠가 집사가 계란을 찌며 그랬다. 유정란을 27도에서 대략 21일 동안 품어주면 병아리가 된다고. 만약 그 전에 깨진다면 계란도 병아리도 아닌,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어중간한 것을 마주하게 된다. ‘미숙(未熟)하다’는 한자 그대로 ‘완전히 익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표현이다.
계란 찌면서 뭐 그런 입맛 떨어지는 얘기를 하냐고 했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나를 21일보단 길게 품어줄 수 있는 집사가 한 말이니 맞겠지.
기록이 길이 된다면 나는 그 길을 따라가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