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커피예술로스터스>에서 원두를 주문했습니다. 서로이웃추가를 하셨길래 어떤 곳인지 궁금해서 시켰습니다.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아라차, 시그니처블랜드 지음(知音), 스페셜 블랜드 쥬시 펀치를 각각 250g씩 주문했고, 35,000원 나왔습니다.
집에 오니 핑크색 박스가 있어 무신사에서 주문한 후드집업이 온 줄 알았습니다. 뜯어보니 커피더라고요. 핑크색 박스는 처음이었습니다. 집사는 박스가 예뻐서 좋아합니다.
주문한 원두 외에도 샘플 원두가 들어 있었습니다. ‘에티오피아 구지모모라 G1 내추럴’입니다. 이름이 어렵지만 정리하면, 에티오피아에 있는 구지모모라 농장에서 만든 G1 등급의 원두라는 의미입니다. 내추럴이라고 했으니 과육을 벗기고 물로 씻지 않고 말렸다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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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커피가 오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있습니다. 집사에게 자랑하기입니다. 집사는 커피를 잘 모릅니다. 저는 커피에 대해 집사에게 설명합니다. 집사는 ‘아 그렇구나’하고 넘깁니다.
자랑이 다 끝나면 그다음은 커피를 내립니다. 원두 20g과 90도로 끓인 물, 홀츠클로츠 핸드 그라인더, 하리오 v60 드리퍼와 다이소에서 산 필터, 비커처럼 생긴 서버, 드립포트(주전자), 커피 저울이 필요합니다.
순서는 이렇습니다. 물을 커피포트에 올려놓고, 원두를 20g 계량하고 핸드 그라인더로 갑니다. 굵기는 깨 정도입니다. 그라인더는 80번 정도 생각 없이 돌려야 합니다. 집사에게 원두를 가려고 부탁하면 뒤도 안 보고 도망갑니다.
원두가 갈고 나면 물이 70도쯤 끓습니다. 저울 위에 서버, 드리퍼, 필터를 놓고 분쇄한 원두가루를 넣습니다. 원두가 평평하도록 드리퍼를 가볍게 톡톡 쳐 줍니다.
물이 90도가 되면 얼른 포트 전원을 끕니다. 뜨거운 물을 드립포트로 옮깁니다. 그리고 드립포트로 원두를 적셔줍니다. 60ml를 넣고 30초 쉬고를 5번 반복합니다. 물은 300ml, 시간은 2분 30초 걸립니다. 저울이 있으니 안심입니다. 커피 저울에는 초 시계가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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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가 나왔습니다. 그다음 할 일은 종지를 찾는 일입니다. 맛을 보는 건 집사 몫입니다. 전 커피를 좋아하지만 맛은 잘 모릅니다.
“기미~”라고 외치면 기미 상궁이 옵니다. 아니, 제가 종지를 들고 상궁을 찾아갑니다. 그리곤 “사약을 받아라” 하면 상궁이 종지에 담긴 커피를 마십니다.
집사는 “꽃향기가 난다” “입안에서 팡팡 터진다” “혀를 감싸는 맛이다” “과일 주스 마시는 것 같다”고 합니다. 저는 “거짓말하지 마”라고 합니다. 어찌 커피에서 과일 주스 맛이 나겠습니까. 저를 능멸하려는 게 틀림없습니다.
집사가 맛을 보고 나면 남은 커피는 제가 마십니다. 아, 이게 과일 주스 마시는 커피구나 하고 말이죠. 제가 마실 때쯤이면 커피가 식어 마시기 좋은 온도가 됩니다.
제가 커피를 좋아하는 이유였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