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의 다른 이름은 ‘사랑의 시작’입니다.

by 장수댁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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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사니로 가득해 몸 가눌 곳도 없는 집에 가본 기억이 있으십니까?


문을 열자마자 쌓여있는 박스들과 어디서 왔는지 모를 하얗고 검은 봉지들, 반쯤 뜯은 포장의 휴지와 김, 생수통까지. 그 안에는 뭐가 있을지 외면하고 싶어지는 그런 집말입니다.


오늘 그런 집에 다녀왔습니다. 70대 노신사가 계신 곳입니다. 제 지인은 아니었고, 집사의 지인이었습니다. 저는 최대한 예의를 갖춰야 했습니다.


그 집에서 오랜 시간 머물진 않았습니다. 다만 원래 일정보다 빠르게 나왔습니다.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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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에 있으니 할머니가 떠올랐습니다. 할머니는 옛날분이십니다. 여기저기서 이 물건 저 물건을 챙겨 오시곤 합니다. 그리고 물건을 내놓는 법이 없으셨습니다. 당신 몸이 더는 이를 허락지 않을 때까지 할머니는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아니 멈출 수 없었습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 삼촌과 사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자수성가하셔서 집이 크셨습니다.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3층집 마당에서 갈비를 손수 구워주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훤합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한평생을 넓은 집에 사셨지만, 초등학생이던 제가 이를 깨닫는 건 십수 년 후입니다. 분명 할아버지댁은 넓었지만 몸을 가눌 곳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할머니께선 물건을 쉽게 들이는 분이셨습니다. 저도 단순히 그렇게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댁이 부동산으로 보일 시점의 저는 할머니가 단순히 물건을 들이는 수준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할아버지댁이 지하실과 1층, 2층, 3층까지 4층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나 생활공간은 1층이 유일했습니다. 나머지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할머니는 물건을 들이셨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평생을 할머니 물건 버리는데 쓰셨습니다. 하지만 물건은 오히려 늘어났습니다. 지하실을 채우고, 장롱을 채우고, 2층을 채웠습니다. 할머니가 웅크려야만 겨우 잘 수 있을 때까지 말입니다. 지하실에 있는 물건은 꺼낼 수 없었습니다. 지하실에 들어가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을 정도로 물건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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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께서 마음의 병을 앓으셨다는 건 머리가 굵어지고 나서 알게 됐습니다. 어머니는 말하셨습니다. "할머니도 참 딱하신 분"이라고 말입니다.


할머니는 나름 대단하신 분입니다. 6.25 전쟁이 끝났을 무렵 이화여대를 졸업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유아교육학과를. 나름 1등 신붓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1등 신붓감이라는 칭호는 할머니에게 족쇄가 됐어요. 할머니의 시어머니 때문입니다.


증조할머니는 학교 문턱도 밟아보지 못하고 한평생을 가정에 헌신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할머니를 며느리로 들이셨을 때 아주 좋아하셨다고 합니다. 며느리가 대학까지 나왔으니 경사라고 생각하셨던 겁니다.


하지만 둘의 갈등은 결혼생활 내내 이어졌습니다. 할머니는 살림을 잘 못하셨습니다. 밥이 눌거나, 간이 안 맞는 일이 많았습니다. 증조할머니는 이를 못 마땅해하셨습니다. 대학씩이나 졸업했는데 이거 하나를 못한다며 구박하셨습니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구박은 도를 넘어 괴롭힘이 됐고, 할머니를 없는 사람 취급하는 수준까지 이르렀습니다.


할머니는 그때부터 물건을 들이기 시작하셨다고 합니다. 들였다는 표현보다는 감추셨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습니다. 한 번은 떡을 이불 아래 몰래 감춰두셨다가 깜빡해서 다 버리기도 하셨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도 할머니께서 가끔 상한 음식을 주셨는데 저는 그 이유를 몰랐습니다.


할머니의 물건 들이기는 증조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도 계속됐습니다. 한 번은 영하 20도까지 내려가던 겨울날씨에 수도관이 터져 지하실이 물바다가 됐습니다. 물건이 젖어 썩은 내가 진동을 했고, 모두 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할아버지는 1톤 트럭으로 2 트럭이 나왔다며 할머니를 나무라기도 했습니다. 지하실을 다시 채우는 데는 몇 달 걸리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지금은 할머니께선 물건을 들이지 못하십니다. 거동이 불편해지셨기 때문입니다. 할아버지가 먼저 떠나신 집에는 할머니와 삼촌이 남았습니다. 많은 물건들과 함께 말입니다. 삼촌도 물건들을 쉽사리 버리지는 못하십니다. 할머니의 슬픈 눈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삶의 일부를 잃은 것 같은 그런 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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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노신사의 집을 보고 할머니가 떠올랐습니다. 무엇이 이런 비극을 낳았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려옵니다. 모두가 행복했을 방법은 정말 없는 겁니까?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만약 사랑이 있었다면 할머니가 어땠을지 말입니다.


전 사랑을 글로 배웠습니다. 공감능력도 부족하고 머리로 이해되지 않으면 가볍게 넘겨버리기도 합니다. 애착유형을 공부하면서 할머니께 사랑이 필요했다고 느낍니다.


애착유형에서 '사랑이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읽어본 기억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사랑을 충분히 받으면 '안정형', 간헐적으로 받으면 '저항형', 소외된 경험이 많으면 '회피형'으로 변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사랑을 충분히 받았다'는 말은 참 잔인한 말입니다. 자녀를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드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방식은 부모의 수만큼이나 다양합니다. 아이가 달라는 걸 다 주는 부모가 있습니다. 또 적당한 훈육이 필요하다는 부모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폭력도 사랑이라 말하는 부모도 있습니다.


무엇이 사랑을 주는 겁니까? 누군가는 공감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떤 공감을 말하는 겁니까. 아이 입장에서 생각해야 하는 겁니까. 어른이 아이 입장에서 생각하는 게 가능한 겁니까. 나는 공감이라고 생각해서 했는데 아니었다면 그건 누구 잘못입니까. 그런 물음을 하다 보면 결국 끝이 없습니다.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 등 모든 미디어는 갈등을 다룹니다. 다른 말로는 사랑이죠. 혹은 사랑이 없는 상황을 다룹니다. 제가 할머니의 일로 고민하는 것도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전 결론을 내려야만 했습니다. 적어도 전 제 주변에서 할머니 같은 사람을 만들기 싫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할머니에게 무엇이 필요했는지 지금의 제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지금의 할머니는 말을 하지 못하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간단하다고 생각합니다. 할머니가 필요한 걸 할머니가 말하지 못해도 알 수 있는 방법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게 '관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켜보는 겁니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필요한 건 없는지. 내가 어떤 타이밍에 줘야 할지 말입니다. 시행착오가 있을 순 있지만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다면 '어떻게든' 됐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늦었다는 게 아쉽습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실천으로 옮기기보다는 관심을 두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켜보면서 고민하는 겁니다. 물론 관심으로만 끝난다면 큰 의미는 없습니다. 다만 관심을 두고 지켜본다면 사랑하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단순노출효과'가 이를 증명하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봤다면 올바른 사랑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그런 내용들을 나누려고 합니다.


제 글에 담기는 공감과 댓글은 언제나 큰 힘이 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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