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부갈등 시리즈 3번째 편입니다. 앞서 1~2편에선 남편이 고부갈등을 중재하지 않는 이유와 원인을 살펴봤습니다. 남편은 나름 이성적인 판단으로 고부갈등을 중재하지 않고, 아내가 준 사랑 덕분에 시어머니를 더욱 사랑하는 효자(孝子)가 됐었죠. 남편을 ‘남 편’으로 만든 건 당신이 준 사랑이라고도 말했습니다.
나름 그럴듯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거기서 끝내 버린다면 의미가 없습니다. 시어머니 좋은 일만 하고 끝났으니까요. 우리는 해피엔딩을 향해 달려가야 합니다. 이미 효자가 된 아들을 불효자로 만들라는 얘기는 아니니 찬찬히 들어보십시오.
누군가가 길을 걷고 인내하기로 각오했다면 문제가 생각보다 쉽게 풀릴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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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라고 말했으니 ‘참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고 싶은 걸 참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니 하기 싫은 걸 참아야 하는 겁니다. 또 참는다고 말했으니 참으면 무언가 결과가 나온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참았는데 결과가 없다면 포기하는 게 나으니까요. 문제는 선택입니다.
‘참는다’를 선택하기 위해선 내가 참아야 하는 이유가 명확해야 합니다. 그러니 교통정리를 하겠습니다.
고부갈등이 있었고 남편은 ‘남 편’이 됐습니다. 남편에게 뭐라고 하지만 알아듣지 못합니다. 화를 내거나 시댁과 거리를 두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이해하지 못하고, 시댁과 손절하고 싶은 건 아닙니다. “답이 없습니다.” 우리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답이 없는 상황에서 답을 찾는 과정을 우리가 ‘고민’이라고 하는 게 아닙니까. 이제 고민해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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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이 없는 상황에서 출발해야 하고 ‘인내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면 그냥 이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라는 말일까요? 누군가 제게 그런 말을 한다면 “미친 소리 하지 마세요”라고 할 겁니다. 안 그래도 열받는데 말 같지도 않은 소리니까요.
좀 더 상황을 관찰하겠습니다. 우리 목적은 남편을 ‘남 편’에서 ‘내 편’으로 되찾는 일입니다. 내가 준 사랑 덕분에 시어머니를 ‘더’ 챙기게 된 시어머니 아들을 뺏어오는 거죠. 아니, 시어머니가 키웠지만, 내가 사람 만들었으니 나도 지분이 있습니다. 따라서 소유권을 넘겨받는다는 개념일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회사가 다른 회사를 인수할 때, 그러니까 소유권을 받아올 때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 줄 아십니까? 회사 핵심인력이 빠져나가지 않게 하는 겁니다. 회사를 샀는데, 정작 주요 기술진이 열받아서 빠져나가면 빈 껍데기만 사는 꼴이거든요.
특히 사람이 중요한 회사일수록 그럽니다. 만약 애플을 인수했는데, 스티브 잡스와 핵심인력들이 모두 퇴사해 회사를 새로 차렸다면 내가 산 회사는 가치가 있는 겁니까? 그래서 핵심인력이 회사에 남도록 어르고 달래서 함께 가야 하는 겁니다. 내 목적은 회사를 사서 키우는 거지 빈 껍데기를 사 오는 게 아니니까요.
남편의 소유권을 이전받는다는 것도 그런 개념입니다. 남편의 마음도 남편의 일부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남편만 받아올 수 없다는 말입니다. 시어머니를 사랑하는 남편도 세트라는 말이죠.
우리가 인내해야 하는 이유가 조금 더 명확해졌습니다. 남편이 시어머니를 사랑하는 마음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시어머니를 사랑하면서 내 편을 들어줬으면 하지만 남편은 아직 그 정도의 고수가 아닙니다. 먼 훗날 고수가 된다면 시어머니를 살피면서 내 심기를 건드리지 않을 때가 오겠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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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남편 마음을 거스르는 길’ 즉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기’와 ‘남편 마음을 존중하는 길’입니다.
전자를 먼저 보겠습니다. 남편에게 ‘쿠사리’를 주는 겁니다. 내 편 좀 돼달라고 하는 거죠. 눈치 챙기라고 하는 겁니다. 시댁에 다녀와서 남편에게 잔소리하는 겁니다. 10번 정도 하면 남편이 알아들을 수도 있습니다. (10번까지 안 가길 바랍니다. 다만 제 아버지는 아직도 이해를 못 하십니다.)
이 방법을 택했을 때는 리스크가 있습니다. 남편이 역으로 “당신은 나이 먹은 우리 엄마한테 그 정도도 못하냐”는 말을 할 수 있으니까요. 우리 남편이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고 눈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쿠사리를 주는 방법은 나름 괜찮을 겁니다.
아닌 경우 다른 방식이 있습니다. 문제의 근원인 시댁과 물리적으로 거리를 두는 겁니다. 시댁 식구들과 자주 접하거나 만나지 않는 식입니다. 그래도 명절에는 잠깐 들르니 아예 손절하는 건 아닙니다.
제 어머니께선 이 방법을 택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시댁에서 연락이 오면 “죄송해요 이번에는 바빠서 못 갈 것 같아요”를 달고 사셨습니다. 어머니는 주기적으로 아버지와 입을 맞췄습니다. 시댁 파워가 너무 세고 남편이 시댁에 많이 의존한다면 이 방법도 합리적일 수 있습니다. 시댁에 다녀올 때마다 싸우는 것보다는 이 방법이 낫습니다. 어린 제가 볼 땐 그랬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다만 단점이 있습니다. 갈등을 덮었을 뿐이지 사라진 건 아니라는 점입니다. 시어머니는 상관없습니다. 시어머니 아들이 문제죠. 나에겐 시어머니지만 남편에겐 어머니기 때문입니다. 엄마와 아들을 갈라놓는 꼴이 되는 겁니다.
엄마와 아들을 갈라놓으면 어떻게 될까요? 이제 드라마가 시작되는 겁니다. 장르는 ‘아침 드라마’입니다. 찜질방에서 아침 드라마를 보시던 할머니들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 찰진 욕설이 난무합니다. 할머니들은 드라마를 보며 “천하의 개썅년”이라고 하곤 다 같이 웃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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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당신은 천하의 개썅년이 아닙니다. 그냥 남편이 내 편이 됐으면 하는 거죠. 이를 위해 결혼한 거니까요. 이젠 선택의 시간입니다.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입니다. ‘남편의 마음을 존중하기’입니다.
중요한 포인트는 어설퍼선 안 된다는 겁니다. ‘모 아니면 도’입니다. 남편 마음을 존중하기로 했으니 제대로 존중해줘야 합니다. 연기였다면 별로 고맙지 않으니까요.
먼저 남편이 원하는 걸 보겠습니다. 시어머니 챙기기입니다. 남편 본인이 직접 나서서 챙긴다면 관심을 갖고 도와주십시오. 같이 의논하고 해 달라는 걸 해줍니다. 내가 고민해서 뭘 할 필요는 없습니다. 토 달지 말고, 얘기 한 걸 같이 의논하면 됩니다.
자기는 챙기지도 않으면서 당신 보고 챙기라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남편 인성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지만 이미 결혼했고 그전까지 몰랐다면 당신이 안고 가야 하는 부분입니다. 남편이 하자는 데로 하되, 반드시 남편이 같이 하도록 하시면 됩니다. 자기가 직접 챙기지 않고 입으로만 나불대는 사람이라면 이 과정에서 알아서 거리를 둘 겁니다. 문제 해결입니다.
걱정이 되는 부분이 있을 겁니다. 남편과 시댁을 챙기다 보니 남편이 오해를 하게 되는 겁니다. ‘아 아내가 시댁을 사랑하는구나, 차라리 같이 사는 게 어떨까?’ 이런 미친 생각을 하는 인간이 있다면 따귀를 때려줘야겠지만, 그런 사람은 멀리 있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아버지가 떠오르네요. (어머니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허허허)
충분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남편의 마음을 존중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게 있습니다. 남편이 나를 존중하도록 내 마음을 남편에게 말하는 겁니다. 솔직하게요. 목적은 남편이 내 마음이 어떻다는 걸 인식하는 겁니다.
내가 남편의 마음을 제대로 존중해 줬다면, 남편이 내 마음을 받아주는 건 부당거래가 아닙니다. 당신이 고른 남편이니 그 정도는 들어줄 겁니다.
모순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남편을 따라 시댁을 챙기면서도 남편에게 시댁보다 나를 챙겨달라고 하는 게 말이죠. 시댁에 가자고 할 때 한 번도 토 달지 않고 적극적으로 가지만 남편에게 가는 횟수를 줄이자고 말하는 겁니다.
남편에게 “당신이 시어머니를 사랑하겠지만 그것보다 나를 더 사랑해줬으면 한다”라고 말하는 겁니다. “당신을 사랑하니까 시댁에 얼마든 갈 수 있지만, 내가 사랑하는 건 당신이지 시댁 식구들이 아니야”라고 “당신이 내가 시댁에 잘 적응하길 바라는 마음을 알기에 노력하고 있지만, 난 그것보단 우리 둘이서 시간을 보내는 게 더 좋아”라고 하는 거죠.
당신의 요구가 부당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볼 땐 지극히 정상적입니다. 반대로 남편이 시어머니 편을 드는 게 부당하다고 보이시나요? 그렇게 말하기도 애매할 겁니다.
필요한 건 남편 마음을 존중하기와 남편이 내 마음을 존중할 때까지 수고를 들이면서 인내하는 겁니다. 듣기만 해도 손이 많이 가고 피곤해 보이지 않습니까? 대체 시댁에 몇 번이나 가야 하는 걸까요?
그건 모릅니다. 남편이 괜찮아질 때까지겠죠. 이런 결정은 선택입니다. 누가 이런 가시밭 길을 강요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생각해 보셔도 괜찮을 겁니다. 내가 그 길을 걷기로 결심했을 경우 내게 돌아오는 게 무엇인지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