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고부갈등을 주제로 적은 글에 이런 댓글이 달렸습니다. 당신도 이런 얘기를 들어본 기억이 있으신가요?
내년 총선이 오면 국민의힘이나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여러분 곁에서 소통하는 OOO이 되겠습니다”하고 외칠 겁니다. 이런 예상은 빚나간 적이 없습니다.
회사에선 ‘MZ세대’와 ‘소통’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7년간 몸 담았던 군대에서도 ‘마음의 편지’ ‘지휘관과의 시간’ 등 소통은 익숙합니다.
범위를 개인으로 좁히면 어떨까요? 남녀 관계에서 소통의 부재는 이별이나 이혼으로 이어집니다. 친구 사이라면 손절하겠고, 가족이라도 소통의 부재는 치명적입니다. 반대로 모든 SNS와 마케팅은 소통을 부추기는 쪽으로 이뤄집니다. ‘좋아요와 댓글, 알림 설정’이 대표적입니다.
말 그대로 ‘소통에 미친 세상’입니다. 온라인에 글을 쓰는 입장에서 저도 그런 사람 중 하나입니다. 굳이 미치지 않았더라도 ‘소통의 부재’가 치명적일 수 있다는 말에 이견(異見)은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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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소통할 疏, 통할 通) : 막히지 아니하고 잘 통함.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음. (출처: 표준국어대사전)
소통은 그런 의미입니다. 의미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다만 제대로 하느냐는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소통의 부재가 갈등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정확히는 ‘타인과의 갈등’이죠. 만약 당신이 “내 삶에 갈등이란 없는데요”라고 할 정도라면 소통은 무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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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이 필요하신 분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대로 소통하고 있다’는 어떤 상태를 말할까요?
구체적으로는 ▲직장 상사에게 필요한 걸 요청하면 즉시 받을 수 있는 상황 ▲남편/아내가 필요한 걸 그 때 그 때 해주는 상황 ▲친구에게 원할 때 언제든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상황 ▲직접 말하지 않아도 상대방이 눈치껏 알아채는 상황 등이 있습니다.
공통점은 갈등이 없다는 겁니다. 싸우거나, 의심하거나, 미워하거나, 재고 따질 필요가 없고, 손절할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이 ‘상대방에게 무언가 말했을 때 거절당하지 않는 상황’이거나 ‘거절 당해도 괜찮은 상황’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요컨데 괜찮다는 말입니다. ‘굳이 소통하지 않아도’ 말이죠. 소통이 잘 되고 있으니까요. 반대로 소통을 고민하고 있다면, 소통이 안 되는 ‘불통(不通)인 상태’라고 봐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소통을 외치는 세상에 ‘제대로 된 소통이 있는지’는 고민해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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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소통이 안 된다’는 어떨 때 쓰는 말일까요?
▲상사에게 말해도 소용없을 때 ▲남편/아내에게 말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을때 ▲내가 이 말을 하면 친구가 날 떠날 것 같을 때 ▲눈치를 줘도 모르고 말해도 공감하지 못할 때 등이 있겠습니다.
정리하면 ‘말해도 소용없거나 말하기 싫을 때’입니다. 말해도 소용 없으니 말하지 않고, 말하라고 해도 묵묵부답(默默不答)입니다. 불통이 되는 순간입니다.
불통이 갈등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금방입니다. 서로 말하지 않으니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할 여지도 없습니다. 그 과정에서 관계가 끊겼다면 갈등이 일어날 일 없을 겁니다.
문제는 ‘불통인 상황에서 관계를 이어가야 하는 경우’입니다.
회사, 연인(부부), 친구 사이에서 불통이 치명적인 문제가 되는 이유입니다. 소통이 안 돼도 회사에는 나가야 합니다. 부부, 연인, 친구는 손절하기도 합니다. 다만 누가 시켜서 시작한 관계가 아니라면 손절이 목적은 아니었을 겁니다.
불통은 말해도 소용없거나 말하기 싫은 상황이라고 했습니다. 불통인 상사를 만나면 어떻게 될까요? 제가 우울증에 걸린 이유기도 합니다. 고구마 100개, 발암 등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브런치에 이혼 관련 컨텐츠나, 오래된 친구를 그만 만나겠다는 다짐이 종종 보이는 것도 불통에서 자유롭긴 힘들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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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불통을 논할 때 등장하는 말이 더 있습니다. ‘나와 맞지 않는다’입니다. 서로 다르기 때문에 맞추는 데 한계가 있다는 말입니다. 맞지 않는 사람이 다른 길을 가는 건 어찌보면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합리적인 경우라면 그렇게 하시면 됩니다. 저는 합리적이지 않은 경우를 다루겠습니다.
많은 사례가 있겠지만 관계 중 가장 깊은 관계인 ‘부부’를 다루겠습니다. 즉 ‘이혼’입니다.
결혼을 했다면, 일단 결혼을 결심한 겁니다. 상대방을 법적으로 구속하겠다는 거죠. 구태여 의무까지 생기는 데 말이죠. 그리고 결혼에 불통을 섞으면 나오는 게 이혼입니다. 소통이 잘 되는 데 이혼하는 부부는 없습니다. (위장 이혼은 논외입니다.)
소통이 잘 되면 ‘말이 잘 통하는 사람’ 즉 최고의 이상형입니다. 반대로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 이혼 상대가 되는 거죠. ‘전 남편/처’가 되는 겁니다. 영어로는 ‘X-husband/wife’라고 합니다.
남편/아내와 불통이라면 그만큼 끔찍한 결혼생활도 없을 겁니다. 말해도 소용없거나 말하기 싫다니요. 앞으로 어떻하면 좋습니까? 이혼하는 게 나을 겁니다. 이혼은 이런 식으로 이어지집니다.
원인은 ‘나와 맞지 않는다’ 혹은 ‘이런 사람과는 함께할 수 없어’라는 겁니다. 맞을 거라 생각해서 결혼까지 생각했는데 맞지 않는다는 거죠. “어머님,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하고 따질 수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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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불통은 케이스마다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말도 맞는 말입니다. 이혼 사유는 저마다 다르니까요. 바람, 도박, 마약, 술, 폭력 등은 제외하겠습니다. 선은 지켜야죠.
말이 안 통하거나 말하기 싫어서 이혼하는 경우 입니다. 정서적으로 ‘남 편’이 됐다고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남 편’이 다시 ‘내 편’이 되지 않고 장기간 이어진 상태입니다. 그리고 나는 그 상황을 견딜 수 없는 거죠. 대화를 시도해도 관계가 개선되지 않습니다. 소통이 안 되는 불통인 상황입니다. 이혼을 결심하기엔 충분해 보입니다. “나와 맞지 않으니까요.”
‘맞지 않는 이유’를 ‘불통의 원인’으로 봐도 무방할 겁니다. 반대로 ‘맞춰가는 법’을 알면 불통을 해결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소통이 되게 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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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두 사람은 처음부터 맞지 않았을까요? 그렇다면 결혼하지 않았을 겁니다. 처음엔 맞았거나 맞는 줄 알았다고 봐야 합니다. 인생의 반쪽을 만났으니 주변의 만류를 무릅쓰고 도장을 찍은 게 아니겠습니까?
“대화 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혼 도장까지 찍었다면 대화가 답은 아니었을 겁니다. ‘서로의 다름’만 확인하는 계기가 됐을 겁니다. 핵심은 ‘어떤 대화를 했느냐’ 하는 겁니다. 정확히는 ‘대화를 통해 원하는 바를 얻어냈느냐’가 되겠습니다. 우리는 이를 ‘협상’이라고 합니다.
대화를 통해 원하는 걸 얻어냈다면 이혼까지 가지 않았을 겁니다. 혹 원하는 걸 얻어냈는데 이혼했다고 하면 ‘내가 뭘 원하는지 잘 몰랐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여러분 그거 아십니까. ‘내가 뭘 원하는지 정확하게 말 할 수 있는 사람’은 흔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