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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댁 고양이 Nov 23. 2023

‘스핑크스’가 있다면 소통이 어려울 겁니다.

당신의 소통은 어떻습니까? (2/2)

‘소통(疏通)에 미친 세상’에서 소통을 논하는 두 번째 글입니다.

 

소통이 필요한 이유는 ‘불통(不通)’인 타인과 관계를 이어가기 위함이고, 나와 맞지 않아 ‘손절’을 고민하고 있다면 무작정 대화할 게 아니라 ‘원하는 바를 얻어냈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불통의 유형으로 관계 중 가장 깊은 ‘부부’가 다시 남이 되는 과정 ‘이혼’을 다뤘죠. 바람, 폭력, 술, 마약 등이 아닌 이유로 부부가 서로 맞지 않았고, 대화를 통해 다름만 확인한 경우 말입니다. 이 과정에서 ‘내가 원하는 바를 제대로 말했는가’도 고민할 일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정리하면 ‘소통을 협상의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제 다시 출발하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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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協商). 어떤 목적에 부합되는 결정을 하기 위하여 여럿이 서로 의논함. (출처: 표준국어대사전)


협상, 의논, 교섭, 타협 등. 다 비슷한 표현입니다. 의미를 좀 더 풀면 ‘필요한 무언가를 받아내기 위해 내가 해야 하는 일을 알아가고 이행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영어로는 ‘Give and Take’라고도 합니다. 주는 만큼 받는 거죠.


만약 내가 받는 게 없다면 협상이 아닌 ‘봉사’ ‘헌신’이 되며, 단순히 받기만 하고 해야 할 게 없다면 ‘요청’ ‘부탁’ 등이 될 겁니다.


협상은 업무 상황이나 회사에서 쓰기 때문에 조금 딱딱하게 느껴집니다. 다만 엄마와 성적을 조건으로 용돈을 조율하거나, 제가 빨래를 하고 집사에게 분리수거를 시키는 것도 일종의 협상입니다.


집사가 분리수거하는 동안 저는 숨어 있고, 제가 빨래를 널고 개는 동안 집사는 <무인도의 디바>를 보죠. 전 집에 있는 걸 좋아하고 집사는 빨래하는 걸 싫어하니 서로 손해 볼 게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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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부부가 이혼하는 이유는 ‘서로에게 원하는 바를 얻지 못한 결과’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협상에 실패했고, 불통이 장기화한 거죠. 대화를 통해 개선의 여지를 발견하지 못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분명 소통이 필요하지만 ‘어떤 식의 소통’이었는지가 중요하다는 겁니다. 단순히 대화를 많이 나눈다고 해결될 문제였다면 이혼까지 가진 않았을 테니까요. 즉 대화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했다는 거죠.


이혼하는 부부에게 대화 말고 뭐가 더 필요할까요? 무엇을 바랐길래 어렵게 결심한 결혼을 끝내고 돌아선 걸까요? 다른 말로는 “‘남편’이 ‘그 인간’이 되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두가 답을 알고 있을 겁니다. ‘사람마다 다릅니다.’ 저와 집사도 이렇게 다른데 천생연분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저와 집사는 물론 어머니/아버지도 성격이 다르고, 장인/장모님도, 할아버지/할머니도 성격이 정말 다릅니다. 적어도 제 주변에서 서로 성격이 비슷해서 부부가 된 경우는 찾기 어렵군요. 만약 당신이 상대방과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면 이런 글은 필요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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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그때그때 달라요’라는 답은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겁니다. 해결책이 없다는 결론이 나면 고민하는 의미가 없으니 좀 더 생각해 보죠. 문제가 있으니 문제 안에 답이 있을 겁니다.


문제는 ‘서로에게 원하는 바를 얻지 못하고 있다’ 였습니다. 상대방이 내가 필요한 걸 해줬다면 이혼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또 원하는 걸 받았는데 마음이 돌아서고 있다면 내가 원하는 걸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한 거겠죠. 따라서 두 가지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하나씩 보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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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는 ‘내가 필요한 걸 제대로 요구할 수 있는 경우’입니다. “매일 나를 10분간 안아줘라” “용돈을 5만 원 올려줘라”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건 안 하고 싶다” “내가 외로움을 느끼지 않게 잘해라” 등이 있겠습니다. 부부라면 목에 칼이 들어오는 문제는 아닙니다. 해줘서 상대방이 괜찮아진다면 이혼보다 싸게 먹힙니다.


즉 이 경우라면 단순히 대화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겁니다. 내가 필요한 걸 요청하고 상대방이 수용하면 문제 될 게 없으니까요.


다만 상대방이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면 문제가 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차치하고, 이혼보다 중요하지 않다면 들어줬을 겁니다. 반대로 상대방이 거절했다면 ‘내 요구는 수용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말이 됩니다. 돌아봐야 한다는 겁니다.


당신이 상대방에게 “서울에 30평형의 아파트를 갖고 싶어”라고 했고, 상대방이 이를 감당할 능력이 되지 않는다면 서로 다른 길을 가는 게 나을 겁니다. 대화한다고 해결되지 않겠죠.


다만 “주말엔 어디 가지 않고 나와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어”라고 했을 때, 거부 반응이 나왔다면 고민해야 합니다. 상식적으로 수용 가능한 범위니까요. 즉 상식 수준에서 요구를 했는데 상대방이 수용하지 않았다는 건 상대방이 ‘들어주기 싫어한다’고 볼 수 있다는 겁니다.


원래라면 들어줘도 하등 상관없지만 삐뚤어진 겁니다. 원인은 당신에게 있겠지요. 상대방이 당신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 거니까요. 정리하면 ‘내가 한 어떤 행동이 상대로 하여금 내 정당한 요구를 거절하게 했는가’를 알면 협상이 가능하다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를 알아내기만 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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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행동이 상대방의 거절을 불러왔다면 먼저는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반성하고 고민하라는 거죠. 다만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고민해도 해결책은 나오지 않는다’는 겁니다.


상대방에게 적정 수준의 요구를 헷갈리지 않게 설명했는데 상대방이 거절했다면, 상대방이 거절할지 몰랐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알고도 물어봤다면 변태입니다. 즉 문제 원인을 모르고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모르는 걸 백날 고민해도 답은 안 나옵니다. 미적분 문제를 고민만 한다고 답이 나오겠습니까?


가장 빠르고 간편한 해결책은 상대방에게 물어보는 겁니다. 이때 “자기 요즘 왜 그래? 내가 뭐 잘못한 거 있어?”라고 물으시면 안 됩니다. 무섭잖아요. 친절하고 상냥하게 물어보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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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마음먹고 상냥하게 물어봤다면 다음 스텝입니다.


상대방이 자기가 바라는 바를 제대로 얘기할 수 있다면 문제는 없습니다. 내가 이를 듣고 이행하면 되니까요. 다만 문제는 상대방이 말을 제대로 못 하는 경우입니다. 무서워서 못 하든, 기대를 안 해서 안 하든 말하지 않는 경우 말입니다.


처음부터 말을 잘 안 했다면 그런 성격을 알고도 결혼했으니 감당해야 하고, 당신을 만나고 변했다면 문제 원인은 당신일 겁니다.


여기서 문제 원인을 내가 아닌 다른 곳에서 찾으면 오류가 발생합니다. 회사 등 다른 일이 힘들어서 관계가 틀어졌다고 생각하는 경우입니다. 일이 힘들어서 이혼할 수도 있으나 일이 힘들면 일을 그만두거나 이직하면 됩니다. 계속 일을 다니더라도 이혼보다 나은 선택지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해결책으로 이혼을 택했다면 원인이 불통이라는 건 변함없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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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바라는 건 잘잘못이나 따지는 게 아닙니다. 일을 해결하는 거죠. 상대방이 원하는 바를 말하게 하고, 내가 이를 이행하는 겁니다. 이를 통해서 상대방도 내가 원하는 바를 이행하게 만드는 겁니다. 협상을 성사시키는 거죠. 내 손으로 해피 엔딩을 만드는 겁니다.


상대방이 원하는 바를 말할 수 있다면 이를 이행하기만 하면 되니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는 상대방이 원하는 바를 말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혹은 말했지만 잘못 말한 겁니다.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추리하시겠습니까? 점을 보시겠습니까? 유명한 명언이 있습니다. 당신도 들어봤을 겁니다.


“오빠, 내가 왜 화났는지 아직도 모르겠어?”


네. 때려 죽여도 모릅니다. 앞으로도 모를 겁니다. 크흠. 수수께끼는 그리스신화 속 스핑크스 하나면 족합니다. 당신의 상대방이 스핑크스가 아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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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예시를 들겠습니다. 우리가 자주 쓰는 말입니다. 당신도 썼을 겁니다. ‘아무거나’라고 합니다.


집사에게 “뭐 먹을래?”라고 물으면, 보통 집사는 “아무거나”라고 합니다. 그래서 저희 집은  열에 여덟은 BHC 뿌링클을 시켜 먹습니다. 제가 주문을 하면 집사는 눈치를 줍니다. “아무거나”라고 해서 정말 아무거나 시켰는데 제가 잘못한 겁니까? 억울합니다. 말 그대로 웃픈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한 발자국 떨어져서 상황을 봐야 합니다. 아무거나 말한 사람이나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들은 사람이나 둘 다 잘한 게 없으니까요. 못한 것도 없죠. 목적은 소통이 되게 하는 거니 그 관점에서만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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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길어지지만 결론을 내는 게 정신건강에 이로울 것 같습니다. 계속 가보죠.


원하는 바를 제대로 말하는 사람을 만나면 편합니다. 헷갈리지 않으니까요. 문제는 자기가 바라는 바를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우유부단하다’고 합니다.


원하는 걸 얘기 못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한 번 떠올려 볼까요? 범위는 부부 관계입니다.


▲힘들지만 걱정할까 봐 힘들다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 ▲친구들을 만나고 싶지만 상대와 시간을 보내는 사람 ▲혼자 있기 싫지만 괜찮다고 보내주는 사람 ▲치킨·피자는 싫지만 상대방이 좋아하니 같이 먹어주는 사람 ▲백화점은 끔찍하지만 2시간씩 같이 다녀주는 사람 ▲음식물쓰레기는 싫지만 분리수거해주는 사람 등입니다. 이렇게 보니 단순히 ‘착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착한 사람이면 최고의 배우자가 아닙니까?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기 싫은 분리수거를 10년 동안 묵묵히 하고 결국 폭발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도 최고의 배우자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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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그거 아십니까. 제가 아무리 집사를 사랑해도 저는 BHC 뿌링클이 좋습니다. 반면 집사는 보리밥이 좋다고 합니다. 매번 치킨을 먹으면 집사가 슬퍼할 겁니다. 반대로 뿌링클을 못 먹게 하면 제가 슬플 겁니다. 그건 다른 겁니다.


물론 저와 집사는 닮은 점도 많습니다. 둘 다 저질 체력이라 외출 시간이 3시간 이상 걸리면 힘들고 짜증이 납니다. 자연스레 집 주변에서 노는 걸 좋아합니다. 사람 많은 곳도 둘 다 싫어하죠.


당신이 결혼을 했거나 상대방이 많이 좋다면 닮은 점도 많을 겁니다. 다만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저는 보리밥보단 뿌링클을 고를 겁니다. 그건 집사가 보리밥이 얼마나 맛있는지 설명해 줘도 변하지 않을 겁니다. 전 뿌링클이 좋으니까요.


하지만 괜찮습니다. 뿌링클을 먹기 위해 보리밥을 먹을 순 있습니다. 요컨대 양보할 수 있다는 거죠. 뿌링클을 3번 먹었다면 보리밥도 3번 먹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물론 가끔 뿌링클을 8번 먹고 보리밥을 안 먹어서 혼날 때도 있지만 괜찮습니다. 다음에는 보리밥을 먹을 테니까요. 이런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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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사랑으로 어디까지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관계 중 가장 깊은 관계를 결혼이라고 하는 이유가 사랑에 있기 때문입니다. 타인 중에 나를 엄마보다 나를 더 사랑해 줄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배우자 밖에 없습니다.


엄마와 배우자의 사랑 중 어느 게 더 크냐를 논하는 건 어리석은 질문입니다. 다만 배우자와의 사랑을 잘 키우면 엄마가 날 사랑하는 것만큼 사랑받을 수 있겠죠. 핵심은 사랑을 잘 키워야 한다는 겁니다. 엄마가 나를 낳으면서 나를 사랑하게 됐지만, 배우자는 아닙니다. 점 하나 찍으면 ‘남’이 됩니다. 소통이, 협상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아무거나 먹자고 해서 제가 뿌링클을 8번 시켰다면 집사는 분명 서운할 겁니다. 제가 눈치가 빨라서 이를 알아차렸다면 8번까지 가지도 않았겠죠. 하지만 전 눈치가 없습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평생 뿌링클이나 먹어라” 하고 토라지시겠습니까, 아니면 “이건 좀 선 넘었네, 이제 뿌링클은 그만 먹고 보리밥도 먹자”라고 하시겠습니까.


협상을 해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은 겁니다. 능동적으로 원하는 바를 표현하고 쟁취하시라는 겁니다. 그 과정에서 내가 싫어하는 뿌링클도 먹고 말입니다. Give and Take입니다.


주기만 하면 거덜 나고, 받기만 하면 부당 거래가 됩니다. 전 갑질하는 사람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만약 제가 원하는 바를 말하지 못해서 상대방이 받기만 하게 됐다면 그건 누구 잘못입니까?


소통이란 그런 겁니다. 보리밥은 싫지만 이혼보다는 나을 겁니다. 이런 방식이 무척 형식적으로 느껴질 여지도 다분합니다. 억지로 하는 거니까요. 하지만 여기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사람이 등장했으니까요.


그 얘기는 다음에 또 할 기회가 있을 겁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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