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카일백축을 골랐습니다. 35g 키압에 틱클릭 방식이라 자판을 두드릴 때마다 틱틱거리는 소리가 납니다. 회사에선 전혀 쓰지 못할 겁니다. 집사는 카페에서도 민폐라며 집에서만 쓰라고 했습니다. 누군가에게 보여줄 기회가 없어 아쉽습니다.
커스텀 키보드가 ‘고객이 직접 조립해야 하는 키보드’라는 걸 안 건 제품을 받고 난 후입니다. 옵션에서 스위치와 키캡까지 골랐기에 조립해서 보내주는 줄 알았거든요. 정말 부품만 왔습니다.
단순히 제자리에 꽂기만 하면 되는 거라 어렵진 않았지만 낯설었습니다. 힘을 줘야 ‘빡’ 하는 소리와 함께 꽂히는 데 부서지는 줄 알았거든요. 제가 큰 소리에 예민한 부분도 한몫했을 겁니다. 집사는 자기도 재밌다며 스위치를 같이 꽂아줬습니다.
스위치를 다 꽂고, 제대로 연결됐는지 노트북을 통해 확인했습니다. 3개가 잘못 꽂혀 있어 뽑고 다시 꼈습니다. 여분 스위치가 없었다면 울 뻔했습니다. 스위치에 키캡을 꽂았습니다. 텐키리스 키보드라 키캡을 89개 꽂아야 합니다. 열심히 꽂아줍니다.
그렇게 커스텀 기계식 키보드가 완성됐습니다. LED가 잘 보이도록 하단이 투명한 키캡을 골랐고 기대감이 고조됐습니다. 하지만 커다란 문제가 있었습니다. 방금 전까지 잘만 들어오던 LED가 들어오지 않는 겁니다. 설명서대로 ‘fn+f6’을 아무리 눌러도 되지 않았습니다. 조립식이라 환불도 어렵습니다.
차라리 완성형으로 나왔던 걸 샀어야 했던 걸까요? 어떤 키를 눌러도 반응하지 않았고, 노트북이 맥북이라 그런지도 구글링 했습니다. 제품명을 검색해도 자료가 별로 없었고, 아무리 찾아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거의 포기하기 전이었습니다.
울상을 짓고 있으니 집사가 다가왔습니다. “이거 키캡 잘못 꽂은 거 아니에요?” 집사는 키보드 사진을 보여줬고, 전 ‘fn’ 키와 ‘menu’ 키 위치가 바뀌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키캡 위치를 바꾸고 다시 단축키를 눌러보니 제대로 작동합니다.
집사가 끝까지 제 조립을 지켜봐 주지 않았다면 아마 키보드를 울며 중고로 팔았을 겁니다. ‘내 인생에 다시 기계식 키보드는 없으리’라는 다짐과 함께요. 기대가 컸던 만큼 당황도 컸습니다. 삐뚤어질 뻔했다는 말입니다.
그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상대가 바라는 식으로 관심을 갖는 건 어렵습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함께 해줘야 한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도와주다가 중간에 빠질 수도 있지만 당사자가 도중에 찾았을 때 없으면 괜히 서운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과정에 개입하는 건 오히려 역효과가 날 겁니다. 귀찮잖아요. 집착한다고 생각할 겁니다. 우리는 모두 ‘내가 원할 때 도움을 받길’ 원하니까요.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주는 도움을 달가워하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훈수’ ‘꼰대’ 등이 이를 대변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집사는 올바른 방식으로 관심을 주는 방법을 압니다. 제가 필요할 때만 도와주죠. 필요하지 않다면 지켜봅니다.
여기서 ‘정말 좋은 짝을 만나셨군요’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만 전 “그게 아닙니다”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집사가 날 때부터 그런 사람이었다면 진즉에 누가 채갔을 겁니다. 요점은 ‘방법을 알면 그런 사람으로 변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