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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버스는 15분 후에 와요
08화
다음 버스는 15분 후에 와요 (8/10)
by
장수댁 고양이
Dec 16. 2023
8장
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잤습니다. 아침에 거울을 보니 눈 밑이 거뭇거뭇합니다. 눈두덩이를 비벼도 여전합니다.세수를 해도 소용없습니다. 그가 분명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부장에게 전화해 휴가라도 쓸까 고민했지만, 오늘은 나연이를 만나야 합니다.
정류장으로 향하면서 평소보다 주위를 살폈습니다. 모르는 사람들뿐입니다. 그는 보이지 않습니다.
버스가 왔고 일단 올랐습니다. 생각해보니 저는 그의 이름을 모릅니다. 번호도 모릅니다. 아는 거라곤 뭐 하는 사람인지와 사연이 있다는 것 정도입니다.
-
점심을 먹고 나연이에게 운을 띄웠습니다. “사실…”까지만 말했는데 나연이는 이미 간파했습니다. 원래도 크고 예쁜 눈이 유달리 반짝입니다. 초등학생이 포르노를 처음 접하면 이런 눈이 될까요?
어제 있었던 일을 얘기하니 나연이가 진지해졌습니다. 나연이가 추궁하기 시작하면 감추기 어렵습니다. 이럴 땐 꼭 언니 같습니다.
“선배. 아니, 언니. 그 남자 어떻게 생각해요?”
“모르겠는데. 이름도 모르고 번호도 없고.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고.”
“아니, 그건 알겠는데, 어떻게 생각하냐고요.”
“모르는데 뭘 어떻게 생각해. 그냥 모르는 사람이지.”
“답답하네. 그럼 모르는 사람 얘기를 왜 했어요?”
“아니, 그냥 그런 일이 있었다고.”
“자꾸 정신 승리할래요? 관심 있으니까 얘기한 거잖아요. 애초에 표정도 못 숨기면서 아닌 척은. 언니 이제 서른 중반이에요. 그러면 안 돼요.”
“나 좋다는 사람 널렸거든?”
“그 말이 아니잖아요. 관심 있는 남자한테 관심 있다는 말도 못 하면서.”
“몰라, 갈 거야.”
“언니 팔랑귀인 거 다 알아요. 저녁에 그 남자 만나면 번호부터 따고 이름 꼭 물어봐요. 어떤 사람인지도 알아 오고.”
“싫거든, 알아서 할거거든.”
-
오후 6시 퇴근길 버스에 올랐는데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립니다. 나연이가 문자를 보냈습니다. ‘물어봐야 할 목록’입니다.
자리에 앉아 목록을 찬찬히 살펴봅니다. 1번 ‘이름 물어보기’, 2번 ‘번호 따기’, 3번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가족관계, 모아둔 돈’입니다. 3번은 필요에 따라 다음으로 미뤄도 된답니다. 두 번 세 번 읽어봅니다.
창밖을 보니 먹구름이 잔뜩 끼었습니다. 빗방울이 곧 떨어질 겁니다. 우산은 없지만 괜찮습니다. 지금은 그런 기분입니다. 그를 만나려면 2시간은 기다려야합니다. 기다리면서 비 내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즐거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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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댁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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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마켓에서 매주 일요일 글쓰기 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INTP입니다.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집사가 벌어다 준 돈으로 흥청망청 사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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