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버스는 15분 후에 와요 (7/10)

by 장수댁 고양이

7장


그녀를 데리고 정류장 뒤편 주택가에 있는 작은 카페로 갔습니다. 카페 이름은 ‘도망친 끝에 다다른 낙원’입니다. 사장님은 중년의 위기를 이기지 못해 마흔 살에 회사를 그만뒀고, 카페를 차렸고 합니다. 장사는 안 되지만 단골은 몇 있다고 합니다. 이사 온 후 처음으로 간 카페가 여깁니다. 사장님이 우락부락하고 턱수염에 콧수염까지 기르셨지만 위트 있고, 매일 커피 볶는 냄새가 좋아 종종 갑니다.


카페에 들어서니 사장님이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봅니다. 그녀는 사장님을 보며 움찔했지만 이내 평정을 되찾았습니다. 라떼를 두 잔 시키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통영에 다녀온 얘기를 했습니다. 10층 상가를 짓는 공사였고, 공사 전반을 관리하는 게 제 역할입니다. 건물이 올라가는 부지가 해수욕장이 보이는 바닷가 근처라 지반이 무너지지 않을지 점검하고 기초 공사를 하는 데 3개월 걸렸습니다. 견습이라 다행이었습니다. 아니었다면 내 후년까지 거기 있을 뻔했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치지만 기분이 묘합니다. 얘기를 하면서 반응을 살피는데 정말 통영 얘기가 듣고 싶은지는 모르겠습니다. 분명히 제 얘기를 듣고 있기는 한데 무언가 허전합니다. 공사 얘기가 재미없어서일 겁니다.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그런데 통영은 어떤 일로 가세요?”


“아, 저요? 출장이에요.”


“어떤 출장을 통영으로 가요? 거기 시골이라 뭐가 없을 텐데.”


“아, 그, 갑자기 일이 생겼어요.”


더 물어보진 않았습니다. 말 못 할 이유가 있을 겁니다. 억지로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녀는 그 뒤로 한동안 우물쭈물했습니다. 라떼는 이미 식었고, 그녀는 한 입도 마시지 않았습니다. 라떼 위에 뿌린 코코아 가루 때문에 라떼가 얼룩덜룩해졌습니다. 그녀가 갑자기 물었습니다.


“그 때 왜 그런거예요? 처음 봤을 때 왜 그런 거냐고요.”


고개를 떨구고 커피잔 손잡이만 만지작거렸습니다. 서로 말이 없었고, 세상에서 가장 긴 1분이 흘렸습니다. 저는 이 여자를 모릅니다. 이름은 물론 뭐 하는 사람인지도 말입니다. 아는 건 30대 중반의 회사원이라는 게 다입니다. 이 여자가 절 구해준 건 맞지만 어디까지 얘기해야 하는 걸까요. 여자가 횡설수설하더니, 제게 말했습니다.


“죄송해요. 괜한 걸 물었네요.”


“아니에요. 구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침묵이 흘렀습니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겠다 싶었습니다.


“갑자기 물어보시면 대답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말이죠. 그게…….”


“아니에요. 괜한 걸 물었습니다. 대답 안 해주셔도 돼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죠.”


‘그럴만한 이유’는 대체 뭘까요. 그녀는 얼굴을 붉혔지만 차분했고, 단념한 표정이었습니다. 제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걸까요? 너무 차갑게 대한 건 아닌지 걱정됐습니다.


“지금은 그렇고 다음에 뵈면 말씀드릴게요.”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정말 괜찮아요.”


“아닙니다. 구해주시기도 했고, 저도 털어내고 싶어요.”


“네, 그러시다면.”


그녀는 말을 마치고 시계를 보더니 스마트폰을 확인했습니다. 시간은 어느덧 8시가 됐습니다.


“잔업 남은 걸 깜빡했네요. 가봐야 할 것 같아요. 급한 일이라 지금 가야 해요.”


“이 시간에요? 아, 네. 그럼.”


그녀 표정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다음은 없을 겁니다. 앞으로 볼 일도 없겠지요. 아니 아침마다 보니깐 말 섞을 일이 없다는 게 더 정확합니다. 그녀가 제 생각을 끊었습니다.


“내일 저녁 8시에 이 카페에서 다시 뵐 수 있을까요?”


“내일요? 비번이라 별 일 없을 겁니다.”


“그럼.”


그녀는 말을 마치자마자 도망치듯 카페를 나섰습니다. 내일 보자고 했으니 싫어서 도망친 건 아닐 겁니다. 정말 급한 일이 있었겠지요. 그녀는 라떼를 거의 마시지 않았습니다. 사장님은 절 보며 미소 짓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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