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아(AOA)
그를 처음 본 건 3학년 여름 주말 오후 3시 스타벅스에서였다. 큰 키에 훤칠한 얼굴, 하얀 셔츠에 검정 슬랙스. 그리고 짙은 남자 스킨 향이 났다. 어떤 여자가 그에게 눈을 뗄 수 있을까.
그가 노트북과 씨름하는 모습을 잠시 지켜보고 있으니 친구 지혜가 왔다. 1시간이나 늦어서 미안하단다. 괜찮다고 했다. 벌써 그렇게나 흘렀는지 몰랐으니까.
그에게 말을 걸면 어떻게 될까를 고민하고 있는데, 지혜가 나가자고 했다. 좀 더 있고 싶었지만 지혜를 뿌리칠 명분이 내게는 없다. 그리고 그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그를 다시 본 건 3주 후 학교의 도서관에서였다. 그는 사회과학 코너에서 책을 고르고 있었다. 나는 그를 알지만 그는 나를 모른다. 아니, 나도 그를 모른다. 아직은.
10분쯤 망설였을까. 그가 책을 다 골랐는지 발걸음을 옮긴다. 다음이 또 있을까? 도서관에 오면 종종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동안 못 봤는데 또 못 보면 어떡하지? 아니, 애초에 그는 나와 아무 관계도 아니잖아.
“저기요.”
“네?”
그의 짧은 대답은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줬다. 그에게는 짙은 남자 스킨 향이 났다.
그는 책을 많이 읽었다. 도서관을 좋아하고, 서점을 좋아했다. 새로 나온 심리학책이 얼마나 대단한 지 1시간 동안 떠들기도 했다. 프로이트가 무슨 얘기를 했고, 아들러가 왜 대단한 학자인지 따위를 쉬지 않고 얘기했다.
관심은 없었지만 1시간이고 2시간이고 얘기를 들어줬다. 그가 프로이트 얘기를 할 때면 늘 아이 같은 표정을 지었으니까.
그는 치킨과 피자를 좋아했고, 가끔은 나를 위해서라며 파스타를 먹기도 했다. 튀긴 음식과 밀가루 음식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일주일에 세 번씩 만났고, 두 번씩 만났고, 격주에 한 번씩 보게 됐다.
그를 기다리는 2주가 자연스러워졌을 무렵 그는 내게 말했다.
고맙다는 그 말 잘 못하는 사람. 미안할 땐 괜히 더 화내는 사람. 통화하다 먼저 끊는 사람. 미리 해 둔 약속 잘 어기고 했던 얘기를 또 물어보는 사람. 괜찮다고 걱정 말라 하면 그 말 믿는 사람. 그게 나라고.
그는 내게 말했다. 사람을 떠나게 만드는 그 이유를 다 갖춘 사람. 그게 나라고.
그는 나에 대해 몰랐지만, 그는 내게 설명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를 기다리지 않는 시간이 익숙해질 때쯤 지혜가 말했다. 그 사람, 참 별로였다고.
나보다 더 화내주는 지혜를 달래며 그를 떠올려 본다.
말 안 해도 내 맘 아는 사람. 약속에 늦어도 웃어주던 사람. 작은 선물 뜻 없이 건네도 좋아하던 사람. 그게 그였다.
그냥 서툴렀을 뿐이다. 그도 나도.
카페 문이 열리면서 익숙한 냄새가 난다.
이제는 아무래도 좋을 그 냄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