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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여름 May 31. 2023

10년만에 공항에서 만났습니다.

'테리우스'를 사랑한 그 시절 캔디들에게 

       

기억을 더듬어 보면 국민학교 6학년인가 중학교 1학년 때였다. ( MBC에서 1983년 4월 3일부터 1984년 5월 27일까지 방영했다고 한다) 들장미소녀 캔디라는 만화영화를 이렇게나 정확하게 기억하는 걸 보니 꽤 진심이다. 첫 방송은 1977년 9월 19일부터 1979년 2월 2일 방영이니 내가 봤던 건 재방영이었다.


어느 집이나 그랬듯 그 시절 우리 집도 아버지가 TV 시청권을 독점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늦잠을 주무시는 날이면 숨도 쉬지 않고 TV 앞에 앉아서 봤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가 뉴스를 본다고 하면 그때부터 난 신을 신는다. 최대한 죽지 않을 만큼의 속도로 그 언덕배기 친구 우정이 집으로 달린다. 재방송이 있길 했나, 그렇다고 인터넷이 있나. 라이브 방송에 죽고, 살던 시절. 우정이가 내 친구여서 감사하다.

그 시절 제일 부러웠던 지구인은 K였다. 마음대로 TV를 보고, 혼자만의 방이 있던 그녀. 어른이 되어 K를 다시 만났다. 그것도 방콕의 공항에서. 만날 사람은 만난다더니 정말 그랬다. 우정이는 참 어른답게 잘 살아 있었다. 멋있다. K!! 한 번도 싫은 내색 없이 사탕을 보러 간 나를 박대하지 않았고 주말의 명화를 보러 가도 함께 봐줬던.


"그때 너 참 멋있었데이. 시쳇말로 쿨하고.. 나이브한“

 2010년 가족이 태국으로 여행을 갔다. 10살이던 아들은 아파서 칭얼거리고 공항의 밤은 북적이며 시끄러웠다. 호텔의 수영장에 반해서 아침, 저녁 가리지 않고 수영을 했다. 더운 나라의 수영장은 더운 목욕탕처럼 사람을 나른하게 했다. 달구어진 몸으로 호텔 방의 차가운 에어컨 바람을 차례로 맞았다. 아들의 예상된 감기였다. ‘짜뚜짝 금요일 야시장’을 쇼핑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계획과 기운을 썼던가! 야시장을 도는 내내 칭얼댔다. 속된 말로 ‘주먹이 운다’라는 말이 있다. 내 기분이 그랬다. 왜 아이들은 집 나가면 왕이 되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여행을 마치면서 마사지를 받고, 태국의 시내에서 로컬 푸드를 먹었다. 그 외에는 무엇을 했는지…. 무언가를 하기는 한 것 같지만 덥고 습했고 아이가 아팠다는 기억만이 선명하다.     




 ‘아! 망했다’ 결국 남편이 아이를 등에 업었다. 자리도 없었고 연착된 비행기로 공항 대기실은 거의 피난민 수용소 같았다. 지금은 덩치가 크고 우람한 청년이지만 어릴 적엔 호리호리하고 작았던 터라 업고 다니기에도 견딜 만했다. 그러던 차에 그녀를 만났다. 우리가 연락되지 않는지 10년도 넘었다. 처음엔 긴가민가했다. 그녀는 마스카라가 지워져 눈 근처가 시커멓게 되어 있었다. 뭐랄까 ‘판다’ 같았다.      

 마스카라를 보다가 K 결혼식이 생각났다. K의 결혼식에 늦잠을 잤다. 화장하지 않은 채 어른들 틈에 끼여 관광버스를 타고 강원도 태백으로 갔다. 지금 생각하면 메이크업하지 않고 예식장을 가느니 핑계를 대고 가지 않았을 거다. 그때가 여름이었는지 겨울이었는지도 모르겠고 K의 화장이 엄청 촌스러웠다는 기억만 있다. 생각하면 할수록 웃긴다. 뭐랄까? 오래된 드라마에서 나오는 초록색이 살짝씩 보이는 강렬한 색들의 매치. 그날이 있고 그 뒤로 몇 번 더 보고 우리는 연락이 끊어졌다. 아마 그땐 전화번호를 바꾸고 통신사를 바꾸면 혜택을 많이 주던 시대라 이러저러하다가 연락이 되지 않게 되었다.

 바빴다. 그녀를 보지 않은 10년 동안 매우 바빴다. 마음은 바빴고 무기력했으며 아이를 키우느라 지쳤다. 동생의 아이를 함께 키우다 보니, 몸은 지치고 머리는 허했다. 공항에서 K를 보는데 놀랐고 반가웠다. 반면 어색함도 없지 않았다. 아마 회사 사람들이랑 단체로 왔던 모양이다. K는 나중에 보자며 전화번호를 주고 난처한 듯 그 자리를 떠났다.   

   



 몇 년 전 K를 만났다. 코로나가 오기 직전이었나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참 멋진 어른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아들 이야기를 하다가


“난 잔소리 안 해. 나보다 훨씬 나아. 난 그 나이에 그렇게 어른스럽지도 않았고 성실하지도 않았거든. 내보다 낫더라. 키워보니….”     

머리에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키워보니 나보다 낫더라. 그렇지. 그 나이에 우리도 그랬지. 아마

“맞아. 그러고 보니 그 말이 맞네. 나도 완벽하지 않은데. 내 말이 맞다며 야단만 치는게 맞는 일일까?” 나 자신이 얼마만큼 자신이 있단 말인가! 그 후로 많은 생각을 했다. 맴돌았던 K의 한마디는 강렬했다.


 여하튼 사연많은 그 캔디를 만화전집으로 샀다. 구했다. 싸게... 흑백을 사고 싶었지만 함께 구매했던 지인은 컬러가 낫단다. 그래 흑백은 추억에 젖게 하며 등등 이유가 많지만 잘 안보인다는 결론을 내며 컬러를 샀다.

난 지금 너무 기쁘다. 몇 해 전 구입한 '굿바이 미스터 블랙'에 이어 또 한 번의 기쁨. 




『캔디(우리나라에선 들장미소녀 캔디)』는 원작자 나기타 케이코와 만화를 그린 이가라시 유미코 사이에 저작권 권리 귀속을 둘러싼 법적 분쟁이 발생해 2001년부터 원작 만화와 TV 애니메이션을 공개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지금의 청소년들이 봤다면 진짜 엄청난 돌풍이 일어나 거라고 확신한다. 테리우스 감당할 자 있을까?     

캔디는 1차 세계대전 전후의 영국과 미국을배경으로 한 순정만화다. 스토리는 나기타 케이코(名木田恵子) 작화는 이가라시 유미코(いがらしゆみこ)가 담당했다. 원제는 중간에 하트가 들어간 '캔디♥캔디'. 잘 알려진'들장미 소녀 캔디'는 한국 TV판 제목인데 이게 의외로 잘 맞는다. 요즘 애니와는 달리 고전 애니가 여타 그렇듯 원작보다 더빙으로 다 본 경우가 많아서 후자의 제목이 대한민국에선 전자보다 매우 익숙하다. 다만 한국 판본 중에 원제가 캔디♥캔디인 해적판 단행본도 존재한다고 한다.

만화판은 1975년부터 1979년까지코단샤의 <나카요시>에서 연재된 바 있으며, 초판은 KC나카요시 레이블로 나왔다가 1991년 2권짜리 애장판, 1992년 5권짜리 특장판으로 각각 다시 나왔고, 1995년 중앙 공론사를 통해 총 6권짜리 문고판을 냈다.    




TV 애니메이션의 오프닝 주제곡은 '타케오 아타나베(Watanabe Takeo)가 곡을 쓰고 나기타 케이코가 가사를 담당했다. 당시 19세의 가수 '호리에 미츠코(Mitsuko Horie)가 노래를 불러 음악이 만들어졌다. 우리나라에선 그대로 방영을 할 수가 없어서 재더빙을 하고 들장미 소년 캔디 노래 오프닝은 가수 혜은이 씨가 불렀다.

   

            



들장미 소녀 캔디 노래 오프닝 가사




괴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

웃으면서 달려보자 푸른 들을

푸른 하늘 바라보며 노래하자

내 이름은 내 이름은 내 이름은 캔디

나 혼자 있으면 어쩐지 쓸쓸해 지지만

그럴 땐 얘기를 나누자. 거울 속의 나하고

웃어라 웃어라 웃어라 캔디야

울면은 바보다 캔디 캔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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