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 한 자루와 노트
2020년 2월 이승희 작가의 『기록의 쓸모』를 읽은 적이 있다. “기록을 통해 경험을 찾고, 경험을 통해 나만의 쓸모를 만들어 갑니다” 조금 긴 듯한 광고 문구 문구를 보면서 문득 생각했다. 어쩌면 나의 기록도 글이 될 수가 있겠구나. 기억에는 그렇다. 그리고 22년 2월 다시 읽었다고 책 표지 맨 앞에 연필로 대충 씌어있다. 그리고는 그 아래엔 '공부는 결심으로 하는 게 아니라 System으로 합니다’라고 써놨다. 아마 한 번씩 아무 데고 쓰는 습관이라 이상하지도 않지만 피식 웃어본다.
난 ‘장하영’이면서 카카오스토리 작가로는 ‘장여름’이고 일로 표현할 때는 ‘출판사 지점장 (엄밀하게 말하자면 학습지와 학습교재를 찍어내는 회사라는 표현이 더 강하지만)’이며 ‘기록하는 사람’으로, 또는 부끄럽지만 책을 펴낸 ‘글 작가’다.
사람이 살다 보면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기록의 쓸모를 읽다가 저자와 내가 20년 나이 차이(아니면 15년)가 나지만 문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취향이 비슷하구나 싶다. 아! 물론 온전히 취향의 문제로만. 기록의 진화 편에 있는 '기록의 물품'들이 너무나 닮아서 놀랐다. 그러고 생각해 보니 이 시대에 살고 있는 기록 좀 한다 하는 사람들은 다 가지고 있는 것들인데 유난을 부렸다. 딱 하나... 몰스킨 노트며 아이패드의 사각사각 필름까지 다 맞았지만, 프라이탁 노트커버는 가지고 있지 않아서 그나마 색다른 걸 하나 건졌다고 위로했다.
프라이탁 노트 커버 (프라이탁 F241 SID) 프라이탁은 다이어리 노트 커버이다. 중고 트럭 방수포로 만든다. PVC 코팅된 폴리 에스터 직물이며, 중고라 더럽다. 깨끗하지 못한 대신 방수는 되며 커버의 디자인도 일정하지 않고, 제품마다 다르다. 손에 들고 다니기에 좋고 유니크한 면에는 뒤지지 않는다. 물에도 젖지 않고, 오염도를 감수하여만 하나 그것마저도 유니크로 몰아보자. 가격이 사악한 것이 흠이다. 많이 비싸다. 홍대 근처에 가면 로드숍이 있긴 하지만, 지방에 사는 나로서는 해외구매 대행이나 네이버를 통해 직구하는 수밖에 없다.
나는 버건디 색으로 구입했다. 네이버로 구매를 하는지라 이래저래 많이 알아보고 색도 어느 정도는 맞춰달라고 부탁을 했다. 버건디가 좋다. 한결같이
같은 색이 없다는 게 매력이고 동시에 정확한 색을 알 수 없다는 게 단점이다.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은 세상 하나밖에 없는 다이어리 커버. 비싸지만 구입했다.
‘컴포지션 노트’는 두꺼워서 만년필로 필기해도 뒤에 비치지 않는다. 윗줄과 아랫줄의 간격도 촘촘하지 않아서 성인들이 만년필로 필기할 때 안성맞춤이다. 몇 해 전 컴포지션 노트를 선물한 적이 있다. 2만 원이 넘는 노트를 선물하면서 나름대로 으쓱해야 하며 건넸지만 선물을 받는 사람의 표정에는 전혀 다른 반응이 있었다. 아마 얼룩소 모양의 얼룩덜룩한 모양과 시답지 않은 노트라 내키지 않았던 모양이다. 5천 원쯤 하려나? 하는 눈빛이다. ‘내가 잘못했다’ 내가 좋다고 좋은 게 아닌데 말이다. 노트와 펜을 좋아하는지라, ‘알겠지. 이 정도의 퀄리티면 알게야’ 아니다. 모른다. 이 퀄리티고 저 퀄리티도 사람들은 문구에 관심이 없다. 그 일후론 선물 목록에서 컴포지션 노트는 빠졌다.
‘BLACKWING’ 일본 연필인데 ‘전설의 연필’이라고 불린다. 특히 Creator과 Artist들이 많이 사용한 연필로 미국만화 영화 벅스바니(Bugs Bunny)를 블랙윙으로 그렸다고 해서 유명하다. 특히나 이 연필이 유명한 연필 끝에 지우개가 있는데 리필을 사서 바꿔 끼울 수가 있다. 처음에 그냥 빼면 되겠거니 했는데 그게 아니다. 가로 0.7cm, 세로 2cm의 작은 지우개를 알리미늄 싸개에 끼어 편리하게 빼낼 수 있게 만들었다. 기가 차다.
참 이렇게 귀여울 수 있을까? 지우개를 바꾸어 끼우려면 한다면 먼저 커버(알루미늄 재질) 벌린다. 긴 쪽으로 열려 디귿자가 되는데, 열리는 공간 쪽에 지우개 리필을 넣고 연필 끝부분에 있는 홈으로 끼워 넣으면 된다. 연필 바디색은 흰색, 검은색 그리고 분홍과 산호색 중간쯤 되는 여성스러운 색이 하나 더 있다. 연필을 종류별로 한가득 있는데 그래도 최애는 불행하게도 블랙윙이 아니다.
흑심에 오일 혹은 물 한 방울 섞은 듯한 ‘PRIMACOLOR’이 오늘도 최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