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날 Nov 24. 2023

절대 할 수 없을 것 같던 일

맨손으로 변기 닦기



사람에게는 누구나 자신이 정한 틀이 있다. 우리는 그 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큰일이 생기는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당신은 고정된 나만의 틀을 깨기 위해 스스로 노력해 본 적이 있는가?






나는 비위가 매우 약한 편이다. 신혼 초에는 설거지 후 배수통에 쌓인 음식물 쓰레기 처리를 하지 못했다. '아이를 낳으면 그 똥을 어떻게 치우나'라는 생각을 하며, 그때는 있지도 않은 아이의 똥 치울 걱정을 할 정도였다. 화장실 청소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구토가 나왔다. 나와 내 가족이 사용하는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더럽게 느껴졌고, 청소하기가 귀찮았다. 화장실 청소를 미룰 수 있을 때까지 최대한 미루며, 외면하고 살았다. 싫어하지만 평생 하지 않을 수는 없기에, 어쩌다 한 번 간단하게 끝내는 청소를 했다. 고무장갑을 낀 후, 커다랗고 두꺼운 변기 솔을 이용해서 청소를 대충 했다. 


몇 년 전, 3M 크리스틱을 알게 되어, 처음으로 사용했을 때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길쭉한 막대 끝에 달린 수세미가 마음에 쏙 들었다. 세정제가 포함된 펄프 타입의 수세미는 일회용으로 한 번 사용하고 버리면 되니 직접 손을 대서 깨끗하게 닦아 놓을 필요도 없었다. 위생적으로 괜찮다 싶어 대량으로 구매해 친정엄마께도 나눠 드렸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어떤 블로그의 글을 보았다. 화장실 청소를 맨 손으로 한다는 포스팅이었다. 일본의 한 기업 회장은 매일 아침 직원이 모두 사용하는 화장실 청소를 직접 한다는 이야기도 담겨 있었다. 자기 집도 아니고, 여러 사람이 사용하는 회사의 변기를 맨손으로 닦는다는 글을 읽으며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의아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어떻게 맨 손으로 변기를 닦지? 신선한 충격이었다. 고정관념에 갇혀 사는 나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내 마음속에 어떤 울림이 있었다. '언젠가 한 번쯤, 나도 도전해 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문득 드는 게 아닌가? 변기 옆에 물건이라도 떨어지면 변기 가까이 얼굴 대는 게 싫어서 숨을 참고 얼른 줍던 내가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게 대견하기까지 했다. 






2020년 6월부터 나는 맨손으로 변기를 닦고 있다. '맨손으로 변기를 닦겠다'는 생각의 시작은 미니멀 라이프였다. 사용하던 물건과 짐을 줄이고 싶은데, 매번 구입해야 하는 변기 솔의 비용과 보관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한 번 불편하다고 생각하면 그것만 보이고, 머릿속에 계속 맴돌게 된다. 마음은 미니멀 라이프인데, 행동은 맥시멀 라이프였던 나는 '청소도구라도 줄여보자'라고 생각했다.


그 당시 5살이던 아이는 손을 씻으러 욕실에 들어갈 때, 욕실 바닥을 맨날로 다녔다. 욕실화를 신고 벗는 게 불편했던 모양이다. 위생상 좋지 않은 것 같아 바닥 전체에 욕실 매트를 깔아 두었다. 아이는 그게 마음에 들었는지, 욕실 바닥에 드러누워 놀기도 했다. 


아이가 배변 훈련을 시작하면서 스스로 변기에 앉기 시작했다. 호기심이 많은 아이는 변기에 앉아서 이것저것 다 만졌다. 아이가 변기에 앉아도, 변기를 만져도 위생상으로 문제가 없도록 청소를 해야 했다. '내가 맨손으로 변기를 닦을 수 있을 정도면 아이가 앉아도 괜찮지 않을까'. 이때 결심했다. 맨손으로 변기 닦기를 해 보자! 






처음으로 변기 솔을 사용하지 않고, 일회용 수세미를 이용하여 맨손으로 변기를 닦은 날, 나는 희열을 느꼈다. 내 안에 절대 깨지지 않을 것 같던 편견이 유리 파편처럼 파사삭 깨졌다. 변기에 손을 넣기 전까지는 더러워서 미칠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손을 집어넣고 쓱쓱 문지르자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별 거 아니잖아. 접시를 닦는 것과 다를 바 없네!'


생각을 바꾸면 보이는 게 다르다. 그동안 나는 절대 못 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 잡혀 살았는데, 생각을 바꾸는 게 그리 힘든 일은 아니었구나 싶었다. 맨손으로 변기를 닦을수록 만족감과 성취감이 높아졌고, 복잡했던 머릿속이 정리되는 기분이 들었다.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용기가 생겼다. 






나는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맨손으로 변기를 닦는다. 샤워 전에 뜨거운 물로 욕실 전체를 소독한 후 맨손으로 변기를 닦는다. 우리 집에 놀러 오신 지인이 '욕실이 쾌적하고 향기롭다'라는 칭찬을 했다. 따로 방향제를 사용하지 않는데도 청결하니 향기가 나는 것처럼 느껴지나 보다. 


그동안에는 화장실 청소하기가 싫어서 보이는 부분만 대충 청소하고 말았다. 그런데 맨손으로 화장실 청소를 시작한 이후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깔끔하게 청소하는 나를 발견했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여 그것을 중심으로 살았던 나는 내 만족을 위해 사는 삶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됐다.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와야 하듯, 사람도 틀을 깨는 과정을 통해 조금씩 성장할 수 있다. 절대 할 수 없을 것 같던 일을 하나씩 해내고 있는 나도 성장하는 중이다. 틀을 깨겠다고 생각하고 노력한 내가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이전 21화 아내와 엄마의 역할에 매몰되지 않기 위한 실천 방법 3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