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노래 한 곡 책 한 권> 코너에서는 어떤 신입 교사의 사연을 다뤘다. 작년에 처음 초등학교 교사가 된 청취자였는데 6학년 담임을 맡아 1년 내내 너무너무 힘들었다고 한다. 교사 일에 적응하기도 힘든데 졸업 관련 서류 작업도 많아서 가정통신문을 빼먹은 적도 있다고, 학부모들의 항의도 받았었고 선배 교사들에게 꾸중도 많이 들었다고, 1년을 그렇게 보내고 나니 교사 일이 적성에 맞는지조차 모르겠고 내년에 맡은 아이들과는 또 어떻게 생활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토로하는 내용이었다. 코너지기인 사적인서점 정지혜 대표님은 <매일매일 좋은 날>이라는 에세이를 ‘책처방’ 해주셨다.
방송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남편과 이 사연에 대해 대화를 나누던 중,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 남편의 첫 직장은 은행이었는데, 그가 신입사원이던 시절 지점에서 근무하다 겪은 일이다. 어떤 고객으로부터 항의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단다. 어리바리한 신입사원의 응대가 성에 안 찬 고객은 감정이 격해져서는 이렇게 소리쳤다. “야! 다 필요없고, 당장 지점장 바꿔!” 이 말을 들은 내 남편은.... 진짜로 지점장에게 전화를 돌렸다. “지점장님, 고객님 전화입니다~”
예를 들면, 어떤 시청자가 MBC로비에서 “사장 나와!”라고 소리쳤는데 안내데스크 직원이 사장실에 연락을 한 셈이다. “사장님, 손님오셨습니다. 잠시 내려와보시죠”라고. 남편의 전화를 넘겨받은 지점장은 통화를 마치고 분노보다는 황당함에 남편을 불러 물었다고 한다. “야, 너 전화 왜 돌린거냐?” 뭐 이런 또라이가 들어왔나 싶었을 거라고, 남편은 말했다.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해주다니, 나는 깔깔 웃으며 남편에게 그동안 왜 말 안했냐고 물었다. “쪽팔려서 누구한테 말을 못 하겠더라고. 내가 그 때 왜 그랬는지, 나도 진짜 모르겠거든.”
나도 마찬가지이다. 신입사원 시절의 수치스러운 흑역사로는 어디 가도 안 질 것이다. 그런데 정말, 왜 그랬을까? 나와 남편을 비롯한 이 땅의 수많은 신입사원들은 줄기차게 ‘이상한 짓’을 하고, 선배들은 해마다 ‘올 해 신입사원들은 좀 문제가 있다’거나 ‘또라이가 한 명 들어왔다’거나 ‘요즘 애들은 우리 때랑 많이 다른 것 같다’고 말한다. 뇌과학 서적 매니아인 남편 말로는, 인간의 뇌가 원래 그렇다고 한다. 낯선 환경에서 지능은 제대로 발휘되지 않는다고. 직장생활 12년차 평범한 과장님인 내 남편도, 그럭저럭 10년 째 PD일을 하고 있는 나도 신입사원일 땐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주변을 아연하게 했다. 그 시절은 그런 시기인 것 같다. 일에서 실수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힘들고, 내가 이렇게까지 멍청한 인간이었는지 매일 새롭게 깨달으며 과연 내가 이 조직의 일원으로 기능할 수 있을지 의심하는.
그날 남편과 대화의 결론은 이렇게 내렸다. 우리는, 신입사원들에게 관대해야 한다. 이상한 실수를 하더라도 그게 그의 본모습이 아닐 수 있고, 최대치는 더더욱 아닐 테니까. 낯선 환경에 뚝 떨어진 인간이 보이는 이상행동이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그렇지만 쉽진 않다. ‘올 해 신입 중에 미친놈 하나 있다던데?’라고 말하는 게 훨씬 재미있어서, ‘그 친구가 신입이라서 실수한 걸 거야’라는 간지러운 말은 입 밖으로 잘 안 나온다.
연예인들의 세계에서도 신인은 쉽지 않다. 방송은 신인에게 참 가혹하다.일단 기회 자체를 잘 주지 않고, 한두 번의 모습으로 ‘될만한지 아닌지’ 판단하기 일쑤다. 직장에서 신입사원이 그렇듯, 신인 연예인들도 ‘내 판’이 아닌 낯선 방송 환경에서 평소 자신의 매력을 다 보여주기란 어렵다. 웃기려는 욕심에 이상한 말이 나가고, 준비한 개인기는 미쳐 해보지도 못한다. ‘신인초대석’같은 코너는 재미있기가 힘들다. 나 역시 신인들은 잘 섭외하지 않는다. 크게 도움받은, 혹은 도움받을 일이 있는 매니저가 부탁할 때 겨우 약간의 시간을 내 준다. 어쩔 수 없다. 청취자들은 누군지도 모를 신인의 썰렁한 농담을 들을 이유가 없으니까. 요즘 청취자들은 생뚱맞게 신인 가수가 출연하면 ‘이 피디가 청탁이라도 받은 건가?’라고 노골적으로 문자를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재미있는 방송 만드는 것’이 PD의 책무인만큼, 신인에게 기회를 주는 것도 꼭 해야 할 일이다. 어찌 보면 ‘검증된 연예인’으로만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게으른 것일 수도 있다. 검증된 연예인을 섭외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게으른 일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몇 년 전 저녁 프로그램을 연출할 때 방탄소년단이 게스트로 출연했던 적이 있다. 나는 신인을 자주 부르는 PD는 아닌데 (신인을 데리고 재미있게 프로그램을 만들 능력이 아직 부족하다... 정진해야지.) 가끔씩 신인이 나올 일이 있을 때, 그리고 여지없이 방송을 망치고 갈 때, 몇 년 전의 방탄소년단을 생각한다. BTS도 신인이었지. 그리고 그 나이 어린 신인 아이돌이 오늘 집에 가면서 얼마나 자책할지 상상하면, 마음이 좀 너그러워지는 듯도 하다. 나도 신입사원이었어. 나 신입 때보다 저들은 더 어리고, 더 뛰어난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