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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연 Dec 28. 2017

당신은 어떻게 엄마가 되었나요?

<베스트 베이비> '장PD의 엄마를 말하다' 1화 

(<베스트 베이비>라는 육아전문지에 기고를 하게 되었습니다. 

2018년 1월호부터 '장PD의 엄마를 말하다'라는 코너가 생겼는데요, 

여기에 쓴 글을 브런치에도 공유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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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엄마는 아니었어>라는 책을 내고, 새로운 경험들을 계속 하고 있다. 난생 처음 육아 전문지에 칼럼을 쓰게 됐고, 라디오 프로그램과 팟캐스트 방송에 출연도 했다. 북콘서트도 예정돼 있어서 ‘내 이야기’를 할 일이 점점 는다. 이렇게 내가 노출되는 상황이 조금은 당황스럽다. 처음 브런치에 글을 올릴 때는 일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다. 요즘 나는 낯선 땅에 도착한 탐험가가 된 기분이다. 설레면서도 두렵다. 


내가 도착한 땅이 생각보다 더 척박한 곳 같아 긴장이 된다. 얼마 전 MBC 표준FM 프로그램인 <라디오 북클럽>에 출연했을 때 ‘저는 흡연자여서 임신기와 수유기 때 담배를 참는 게 좀 힘들었어요’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방송이 나간 다음 날, 청취자들이 보내온 문자 메시지를 볼 수 있는 제작진 전용 사이트를 열었더니 이런 메시지들이 와 있었다. “정말 이기적이네요. 그런 게 하고 싶으면 엄마 되길 포기해야지. 그만한 희생정신도 없으면서….” “임신 수유 중에 무슨 담배야, 정신머리 없이…” 내 출연 분량은 17분 정도였지만 사람들은 유독 그 부분에 대해 언급했다. 며칠 뒤, 어느 언론사와 진행한 인터뷰 기사가 포털 메인을 장식한 날도 비슷했다. 기사 제목이 <아이보다 내가 먼저, 이런 엄마는 비정상인가요?>였는데, ‘네, 비정상입니다~’라는 식의 댓글이 꽤나 많이 달렸다.    


일련의 반응들을 보며 깨달았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엄마의 모습’에 대해 정형화된 이미지를 갖고 있으며, 거기서 벗어나는 이야기에 불편해 한다는 사실을. 나는 아이를 갖기 전까지 한 번도 엄마가 되는 삶을 상상한 적이 없고, 심지어 임신을 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 ‘엄마 되기’를 피하고 싶었다. 임신기와 수유기에는 이따금씩 시원한 맥주 한 잔과 담배 한 모금이 고파 참기 힘들었으며, 그건 아이를 향한 사랑의 감정과는 전혀 별개의 욕구였다. 나는 얼렁뚱땅, 어영부영 엄마가 되었다. 이렇게 엄마가 되는 사람도 있다. 물론 오랫동안 엄마 되기를 꿈꿔 온 사람도 있고, 어렵게 노력해서 아이를 가진 사람도 있을 것이다. 100명의 엄마가 있다면, 엄마가 되기까지의 100가지 다른 이야기들이 있는 게 당연하다. 


‘엄마라면 이래야지’라는 강고한 편견은 엄마 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를 옥죈다. 아직 아이가 없는 여성을 겁먹게 하고, 엄마들에게는 죄책감이 들게 한다. 임신기에 담배를 피웠다는 것도 아니고, 참느라 힘들었다고 말한 것에도 비난을 가하는 분위기, 이는 엄마에게 '욕망이 없기'를 요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니 결국 엄마들이 욕망을 말하지 않는 수밖에. 이건 자기들의 기대하는 이야기가 아니면 하지 말라고 입을 막는 것에 다름 아니다. 


‘어떻게 엄마가 그럴 수가 있느냐’는 비난의 글들을 마주했을 때 움찔했던 게 사실이다. 이런 손가락질까지 받으며 내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을까, 이제 그만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위축된 마음에 고요히 울렸던 질문은 이거였다. ‘내가 그래도 좀 괜찮은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언제였더라?’ 


어떨 때 나 스스로가 어제보다 나아졌다고 느끼는지 생각해 보았다. 나는 내 성격을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 흥분을 잘 하고 말이 많아서 말실수가 잦다. 그래서 무심코 했던 어떤 행동들 때문에 ‘오, 나 좀 괜찮은데?’ 생각한 적은 거의 없다. 오히려 후회한 적이 훨씬 많다. 내가 스스로에게 높은 점수를 줄 때는 주로 하기 힘든 일에 용기를 내서 한 발짝 나갔을 때다. 내가 내 멱살 잡고 스스로를 끌고 한 걸음 전진했을 때, 많은 말과 가벼운 태도로 인한 일상의 잦은 실수들이 조금이나마 만회되는 기분이 든다. 바로 지금이, 그렇게 억지로라도 내 발을 옮겨 ‘말하는 자리’로 나가야 할 때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어떻게 엄마가 되었는지, 나로 하여금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에 그렇게까지 겁먹게 한 우리 사회의 모습은 무엇인지, 실제로 키우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두려워도 이야기하려고 한다. 리베카 솔닛도 말했다.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어 발언할 권리는 우리의 생존과 존엄과 자유에 기본이 되는 조건이다>라고. 


당신에게서도 듣고 싶다. 어떤 시간을 지나 당신의 아이와 만났는지, 엄마가 된 지금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우리, 좀 더 크게 우리의 이야기를 세상에 꺼내어 보자. 우리의 아이들은 좀 더 편안하게 ‘엄마됨’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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