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수연 Jan 11. 2018

아이를 때린 적이 있나요?

체벌과 학대 사이- 김희경 <이상한 정상가족>을 읽고

읽는 것 자체가 고통인 기사들이 있다. 알아가는 과정만으로도 마음이 힘들어지는 끔찍한 뉴스들. 친아버지와 그 내연녀의 장기간에 걸친 폭행 끝에 숨진 다섯 살 소녀의 이야기라든가, 간장에 밥을 비벼 먹어야 할 만큼 가난했던 세 남매가 불에 타 죽어가는 동안 이들을 구하지 못한 엄마의 비탄이라든가, 어린이집 원장과 교사가 아이를 몸으로 누르고 억지로 음식을 먹인 이야기, 군 복무 대신 산업기능요원으로 근무했던 청년이 사장에 의해 가혹하게 폭행당한 이야기들. 어디 먼 곳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처럼, 듣지 않으려 해도 이번 겨울 내내 눈과 귀를 비집고 들어오는 뉴스들이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지, 누구의 잘못인지, 어떻게 해야 우리 사회에 짙게 드리운 이 폭력의 그림자를 걷어낼 수 있는지, 기사는 쏟아지는데 그 원인도 대책도 방법도 알수가 없어 슬프고 답답했다. 그 즈음 만난 책이 <이상한 정상가족>이다. 


저자는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일해 온 김희경 씨. 그는 말한다. 아동학대를 근절할 근본적인 대책은 체벌금지법 제정이라고. 아동학대 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 만연해 있는 폭력에 무감한 분위기를 반전시킬 방법은 ‘어떤 경우에도 체벌은 안 된다’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라고. ‘비정상 가정’에서 벌어지는 학대와 ‘정상가정’에서 훈육을 위해 행하는 체벌은 별개의 상황이 아니며, 체벌의 연장선에 학대가 있는 거라고 저자는 많은 연구 결과와 경험을 들어 설파한다. 2016년 국가인권위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절반 가까이가 ‘체벌을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사랑한다면, 아이를 위해서는, 교육의 목적이라면 때려도 된다는 생각, 이걸 바꿔내지 않으면 답은 없다고 책은 말한다. 어떤 이유라도, 부모를 포함한 그 누구라도, 사람이 사람을 때려서는 안 된다고 확고히 선언해야 한다.


최근 시작한 팟캐스트  <쓰리맘쇼>에서 이 문제를 다뤄보기로 했다. 방송을 준비하며  리포터에게 의뢰해 광화문에서 시민들을 만나 미리 의견을 청취했다. “때리면 안 된다는 건 아는데, 체벌은 안 된다고 생각은 하는데, 가끔씩 울컥해서 손이 올라갈 때가 있어요. 엉덩이를 찰싹 때리거나 머리를 쥐어박거나..” 이런 이야기를 하는 부모들이 많았다. 팟캐스트를 녹음하는 동안, 장하나 씨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그는 세 살박이 아이의 발바닥을 때리고는 일주일 동안 괴로웠다고 한다. 시민운동을 하고, 동물보호를 위한 활동을 하고, 환경단체에서 일하는 내가, 개도 때리면 안 된다고 주장하고 다니는 내가, 이 작은 아이를 때렸구나 하는 자괴감을 고백하는데, 그의 깊은 슬픔과 괴로움이 그대로 전해졌다. 이 고백에 공감하지 않는 부모는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그랬다. 밖에서는 그렇게 잘난척하고 다니면서 내 눈앞의 약자,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내 자식에게 폭력을 휘둘렀던 이중성과 모순에 스스로 참 괴로웠다. 


유계영 시인이 ‘실패한 얼굴의 12월 사람들’이라고 쓴 문장을 보았다. (월간 채널예스 제30호 <유계영의 빌려온 시> 중) 연말마다 마주하는 실패한 나의 1년. 내 오답들. 그러나 그 실패한 얼굴을 마주하려 거울을 들여다보는 끈질김만이 우리를 추하지 않게 늙게하는 마음이 아닐까 생각했다. 한 살 더 나이들어야 하는 시간을 앞두고 내 실패를 응시하는 괴로운 12월의 사람들만이 진짜 1월을 맞이할 자격을 갖는 것 아닌지.

 

아이를 때리면 안 된다. 체벌은 금지돼야 한다. 성인끼리의 폭력이 범죄라면, 더 약한 아이에 대한 폭력도 당연히 범죄이고 더 강하게 처벌받아야 한다. 뉴스에 등장하는 잔인한 아동 학대 가해자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다. 그 아동학대 범죄자가 얼마나 이상한 사람인지, 얼마나 악한 사람인지를 묘사하는 기사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아 보인다. 왜 이런 일이 가능했는지에 대한 철저한 역학조사를 바탕으로 빈 구멍을 찾아내 메워내는 게 정부가 할 일이고, 나부터 내 아이를 때리지 않고 동료 부모들과 체벌에 대한 공감대를 넓혀가는 게 내가 할 일이다. 아동학대 범죄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런 걸 요구하는 기사가 좀 나왔으면 좋겠다. 사건도 끔찍한데 대책도 안 보이는 절망까지 맛봐야 하는 건 우리 모두에게 너무 잔인하니까.


* 팟캐스트 <쓰리맘쇼>는 

'나와 내 아이가 더 행복한 세상을 꿈꾸는 엄마들의 수다'라는 모토로

정치하는 엄마들의 장하나 대표, 경향신문 임아영 기자, 그리고 제가 함께 진행하는 팟캐스트입니다. 

엄마들이 함께 고민해야 하는 주제들을 가지고, 적당히 유쾌하게, 적당히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눕니다. 

 [팟빵] 쓰리맘쇼

http://m.podbbang.com/ch/15597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은 어떻게 엄마가 되었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