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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연 Feb 02. 2018

루틴 만들기

- <베스트 베이비> '장PD의 엄마를 말하다' 2화 

(육아잡지 <베스트 베이비> 2월호 '장PD의 엄마를 말하다' 입니다.)


해가 바뀌고, 나도 아이들도 한 살씩 더 나이를 먹었다. 윤종신의 노래 <나이>의 첫 가사가 생각난다. 


안 되는 걸 알고, 되는 걸 아는 거 / 그 이별이 왜 그랬는지 아는 거

세월한테 배우는 거 / 결국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거


‘안 되는 것과 되는 것을 알 만한 나이’라고 생각했던 나이가 됐건만, 일터와 아이들 사이에서 그걸 알아내는 건 여전히 어렵다. 뭐가 되고 뭐가 안 되는지,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고 어떤 걸 포기해야 하는지, 열심히 고민해 봐도 내 결정은 자주 오답이다. 작년을 돌아 봐도 그렇다. 나는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냈어야 했다. 더 자주 이야기를 나누고, 더 많은 노래를 같이 부르고, 더 오래 같이 걸었어야 했는데, 연말이 되어서야 ‘덜 중요한 것’을 선택했던 몇몇 실수들이 보인다. 1년 단위로 돌아보면 이렇게 선명하게 정답과 오답이 보이는데 왜 하루하루로 들어가면 그게 그렇게 헷갈릴까.


그래도 또 계획을 세운다. 올해는 좀 더 나아져야지, 마음먹으며 2018년 달력을 넘겨본다. 아이들 생일과 결혼기념일, 유치원 입학일과 여름휴가 날짜를 가늠하면서 뭘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올 해 내 계획은 ‘루틴 만들기’이다. 

루틴 만들기. 얼마 전까지 나와 프로그램을 같이 했던 에픽하이의 래퍼 미쓰라 씨에게 들었던 이야기 때문에 하게 된 생각이다. 에픽하이는 새 앨범 준비를 시작할 때 멤버들이 함께 서점에 가서 열 권 쯤 각자 책을 산다고 한다. 각자 고른 책들을 녹음실에 쌓아두는 것, 이게 새 앨범을 준비하는 이들의 의식 같은 거란다. 에픽하이는 정규 앨범만 9집을 낸, 저작권협회에 등록된 곡 수가 200곡이 넘는 그룹이다. 물론 거의 모든 곡의 가사는 두 래퍼인 타블로와 미쓰라가 썼다. 오래도록 치열하게 한 길을 걸어온 이들에 대한 새삼스런 감동 혹은 존중의 마음과 함께, 이 ‘의식’ 이야기가 인상 깊게 들렸다. 


우리 가족에게도 ‘루틴’이 있다. 스튜디오에서 아이의 돌 사진을 찍던 날, 남편과 “매년 아이 생일 날 셀프스튜디오에서 가족사진을 찍자”고 얘기했었다. 아이가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가족사진을 한 장씩 붙여간다면 재미있는 행사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둘째가 태어난지라 누구 한 명의 생일을 ‘행사날’로 하면 다른 아이가 서운할까 염려되어, 결혼기념일로 바꿀까 생각 중이다.


큰 아이가 이제 일곱 살이다. 내가 일곱 살 때 어땠는지 비교적 선명히 기억나는 걸로 보아, 이 아이도 이제부터의 기억은 상당 부분 어른이 될 때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 내 아이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에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 회사 일로 바빠 하루에 고작 두 세 시간 함께 있는 엄마지만, 그래도 그 욕심을 버릴 수가 없다. 궁여지책으로 생각해낸 게 ‘루틴’이다. 우리만의 규칙을 몇 개 만들어 둔다면 ‘생일 때 뭘 하곤 했지’, ‘비가 오면 엄마랑 이랬었지’, 이런 연상 작용으로라도 아이의 추억 속에 내가 끼어들 수 있지 않을까.  


1. 눈이나 비가 오는 날은 걸어서 등원하기

2. 부부 결혼기념일에 가족사진 찍기 

3.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입학식 전 주에 아빠와 단 둘이 여행 다녀오기

4. 생일인 사람에게 편지 써 주기

5. 12월31일에 함께 ‘우리 가족 10대 뉴스’ 뽑아 보기. 


이 정도가 내가 생각해 둔 루틴이다. 우리 가족에게 습관 혹은 문화가 될 때까지 지속해 나가고 싶다. 지금은 이렇게 의기충천하지만 연말이면 또 후회하며 자책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별 수 있나. 결심과 후회를 반복하며 조금이라도 더 아이와 함께하기 위해 매년, 매달, 매일 안간힘을 쓰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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