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Paris] Inspired By The Organics
작년부터 시작된 코로나는 우리의 삶을 정말 많이 바꿔놓았지.
전 세계적으로 무인, 자동화 관련 기술들이 더 앞당겨졌고 그건 아날로그적인 분위기가 강한 프랑스에서도 마찬가지였어. 하지만 동시에 내면을 조금 더 성찰하게 되는 계기였다고도 생각해.
저번 편지에서 말했듯이 나는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외부활동이 줄어들면서 평소 먹는 것, 몸에 쓰는 제품 등에 대해 세심하게 생각해보게 되었어. 그래서 요즘 들어 유기농 제품들에 새로운 관심이 생기더라고.
사실 그렇잖아. 삼십년을 이렇게 잘 살아왔는데 뭐하러 더 비싼 돈 주고 유기농 관련, 오가닉 제품들을 써야 하는지에 대한 의심이 생기기 마련이지. 나 역시 다르지 않았고, 그저 가끔 세련된 디자인으로 포장된 그러한 제품들을 보면서 미적으로만 감탄했을 뿐 한 번도 직접 사서 써보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
다른 유럽 국가도 비슷하겠지만 프랑스는 이러한 유기농, 즉 비오(Bio) 제품에 대한 관심도가 한국에 비해 훨씬 오래전부터 굉장히 크게 활성화되어 있어. 동네마다 자연친화적인 식료품점들이 로컬 주민의 발길들로 끊이지 않고, 건강하게 구매하고 생활하자는 주의가 넓게 대중화되어 있지.
점점 관련 시장과 관심도가 넓어지고 있는 오늘날, 막연히 사치품이라고 치부하며 무시하기에는 너무 흥미로운 산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이 유기농 제품을 둘러싼 문화현상에 대해서 얘기해보려고 해.
우선 나는 "정말 화학비료 없이 자연친화적으로 먹고 사용하면 몸에 좋은가?"라는 논점에서는 벗어나려고 해. 논란이 많은 이 주제보다는 유기농 제품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의미를 짚어보는 게 더 흥미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프랑스 같은 경우 우리나라와 달리 재료를 가지고 볶고, 데치고, 굽는 과정보다는 재료 본연의 맛을 살려 그 하나하나의 조화를 잡는 식으로 요리 문화가 발달되어 있어. 프랑스 학생들이 가장 흔하게 먹는 샌드위치가 대표적이지. 사실 이건 요리라고 볼 수는 없잖아? 치즈나 샐러드, 육류 등을 빵에 넣고 먹는 게 전부이니까. 그만큼 프랑스인들에게는 결과로써의 요리보다 과정으로서의 재료에 더 중점을 둘 수밖에 없고, 재료의 퀄리티나 품종, 원산지에 관심을 갖게 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일 거야. 우리는 대량 생산된 체인마트의 획일화된 재료의 맛에 익숙해져 있지만, 마치 백화점에서의 일관된 제품군보다는 동네 감각 있는 편집샵에서의 쇼핑을 선호하듯, 소규모 생산자의 개성 있는 식제품들을 찾는 소비들이 늘어나고 있어. 가령 우리가 옷을 구매할 때 단순히 디자인과 가격만 보고 결정할 때도 많지만, 그 브랜드의 철학과 행보, 또는 디자이너의 신념 같은 거에 관심을 갖고 구매할 때도 있잖아? 유기농 식재료를 구매하는 소비자의 성향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해. 결국은 소비의 디테일로 이어지는 거지.
파리의 유기농 제품 관련 매장들을 둘러보고 그곳 사람들과 얘기해보며 느낀 것은 우리는 너무 ‘유기농’이라는 단어에 갇혀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사실 유기농 제품에 대한 관심은 « 우리가 구매하고 소비하는 제품의 퀄리티와 소재, 이것이 환경에 주는 영향 등에 대해서 조금 더 세심하게 고민해보자. »라는 것에 있다고 생각해.
자연친화적인 재료니까 몸에 좋을 거야! 라며 좁게 생각한다면 그 포인트를 놓치게 돼. 우리는 사실 대형 체인 플랫폼에 의해 많은 생각과 고민을 거치지 않고 소비를 하는 경우가 많잖아. 오늘 했던 너의 구매행동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생각해봤어? 와 같은 질문이 이 문화의 근본가치라고 생각해. 그리고 저 질문에는 과연 내 몸에게 좋은지, 환경에 좋은지에 대한 질문으로 뻗어 나가겠지. 이러한 성숙한 질문과 의미를 통해 생산되는 제품들이라고 생각하니, 일반 제품보다 그렇게 가격이 비싼 게 또 나름 납득은 되더라고.
얼마 전부터 이 내추럴 와인이 힙스터들 사이에서 크게 관심을 끌고 있지. 나도 처음에는 개념이 많이 헷갈리더라고, 유기농 (Bio) 와인은 들어봤지만 내추럴 와인은 또 뭐야?
이 정의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지만, 대충 내가 이해한 바로는 유기농 와인에 비해 아무런 인공 화학적, 기계적 과정을 거치지 않은 그야말로 « 생 » 자연 와인이라고 볼 수 있어. 하지만 그 이면에는 더 중요한 의미가 존재해.
우리나라에 한때 수제 맥주 열풍이 불었던 것처럼 프랑스에서도 와인 소비량이 많이 줄어들고 젊은 층들은 목 넘김이 상쾌하고 제품마다 비교적 개성이 뚜렷한 맥주 소비를 더 선호하고 있어. 자세히는 모르지만 아무래도 와인의 너무 디테일하고 학구적인 특징들이 선호도에 장벽을 만든 게 아닐까 싶어. 이런 상황에서 대안처럼 찾게 된 내추럴 와인은 앞서 말한 규칙 속에서 정말 생산자의 개성과 철학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는 와인이야. 정말 독특한 공법과 제조 과정으로 생 날 것의 맛을 즐기고 와인마다 느껴지는 독특한 차이가 마시는 즐거움을 주게 되지.
결국 유기농이나 내추럴 와인 같은 제품들은 이 제품의 제조방식과 성분들이 과연 효과가 있느냐 없냐의 좁은 논박을 떠나서 우리가 구매하고 소비하는 제품들의 스토리와 그 의미에 조금 더 관심을 갖고, 질적인 특별함을 전해주려는 생산자와 소통하려는 욕구에 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천편일률적인 대량생산품에서 벗어나 내가 구매하는 행위에 직접 참여하고 주인의식을 갖으려는 정신. 그게 유기농 문화의 가장 큰 특징이고, 이러한 행동들이 소비/생산 시장에 큰 변화를 불러일으킬 거야.
한국에서의 유기농 문화는 어떤 모습을 띄고 있어?
2021.05.18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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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p3DGOj6y1ds&t=341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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